음악에서의 리토르넬로에 대하여
이진경, "음향과 배치: 리토르넬로에 대하여", <노마디즘>, 213~290.
1. 음악에서의 리토르넬로
1.1. 음악에서의 리토르넬로란 보통 바로크 시대 합주협주곡(concerto grosso)을 비롯한 기악곡을 구성하는 형식과 관련된 것. 예를 들어 바하의 <브란덴부르크협주곡>은 18세기 바로크 음악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리토르넬로'의 형태를 띠고 있다. 형태는 A-B-A'-C-A''.....A로 요약이 가능하다. 여기서 A의 계열들로서의 A', A''는은 A의 기본적인 테마를 가져오면서도 그것들이 상이한[다른/차이나는] 반복의 형태로 나타난다. 리토르넬로는 <차이나는 반복>이 변형된 개념이다. 여기서 반복되는 A의 계열들은 혼돈된 것에 어떤 하나의 질서, 통일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1.2. 우리는 어둠 속에서 헤매일 때나 두려움에 떨 때 휘파람을 불거나 노래를 불거나, 혹은 숫자를 세면서 혼돈 속에 놓인 자신을 다스리는 어떤 수단들을 확보함으로써, 자신만의 질서, 통일성을 부여한다. 이른바 <혼돈 속의 질서>['카오스모스Chaosmos]라는 것. 여기서 질서나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리듬>이다. 음악에서 어떤 선율이나 악기의 편성이 무수히 많이 달라짐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공통성이나 통일성, 질서를 부여해주는 것은 바로 <리듬>이다. 물론 <리듬>이 고정된 채로 존재하면서 <선율>이 반복되는 경우도 있고, <선율>을 고정시키면서 리듬이나 다른 요소를 변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1.3.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반복은 차이[변화/변주)아 함께 진행된다는 것이다. 중심적인 테마를 반복할 때 다른 요소를 변형시키고, 테마 자체를 변주시킬 때는 다른 반복의 요소를 남겨둔다는 것. 가령 라벨(M. Ravel)의 <볼레로(Bloéro)>같은 작품은 몇 십분 동안의 연주에도 동일한 선율, 리듬이 고정된 채로 계속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듣는 이들은 어떤 긴장감과 경외감을 갖으면서 음악을 듣게 되는데,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것은 수없이 많은 악기가 가진 음색과 음량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차이나는 반복> 때문이다.
1.4. 리토르넬로는 <차이생성하는 반복> 혹은 <차이나는 반복>이며, 니체, 들뢰즈-가타리가 말했듯이 "오직 차이나는 것만이[더 정확히 말해서 차이생성하는 것만이] 반복될 수 있다." 니체적 의미에서의 영원회귀. 우리가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일 때 두려움,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부르는 노래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반복한다. 반복되는 리듬. 그것은 반복되지만 동일한 형태를 띠지는 않는다. 언제나 차이나는 반복의 형태. 그리고 그건 무엇인가를 생성한다.
1.5. 들뢰즈-가타리는 리듬과 박자를 구분한다. 주지하듯이 음악에서의 박자는 특정하게 주어진 리듬을 주어진 시간으로 분절하는 형식이다. 3/4박자, 6/8박자 등은 시간, 척도, 형식 등에 연관다. 2박자는 강-약, 3박자는 강-약-약의 형태로. 3/4박자, 6/8박자는 같은 3박자의 계열이다[가령 6/8박자의 강-약-약-중간-약-약은 강-약-약의 형태로 약분 가능함]. 이렇듯 박자는 동일한 박자의 배열을 동일한 형태로 반복한다. 박자는 리듬에 대해 척도로 작용하면서 복수의 선율, 리듬을 하나의 텍스처로 통합하면서, 리듬적 진행에 단일한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해 도입된 척도다.
1.6. 따라서 리듬은 박자로 환원되지 않는다. 가령 군대의 행진곡은 박자는 있으나 리듬은 없다. 그 유명한 권터 그라스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슐렌도르프의 <양철북>은 파시즘의 군대의 열병식에 등장하는 군대 행진곡의 욕망의 기계적 배치와 오스카의 북소리의 리듬이 만들어내는 욕망의 기계적 배치의 상호뒤섞임이 어떤 다른 배치[무도회의 배치]를 만들어가는가를 잘 보여준다. 즉 오스카의 북소리는 기존의 배치에 균열을 일으키는 특이점의 역할을 한다. 이 특이점은 리토르넬로이자 하나의 <사건>[아니 오히려 사건 그 자체]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2. 리듬적 인물과 선율적 풍경
2.1. 어떤 곡의 리듬은 특정한 곡에 통일성[혹은 질서, 공통성]을 부여해주는 것이다. 가령 어떤 특정한 리듬만을 보고서도 우리는 그것이 바로크 음악인 줄을 알 수 있다. 들뢰즈-가타리는 이를 <영토성>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한다[가령 특정한 음악이 군대라는 영토에 영토화됨으로써 얻어지는 특질들. 군가는 군대라는 영토에서 특질화되는 어떤 리듬적 특징이 있지 않는가].
2.2. 그런데 이런 영토성은 단지 박자, 리듬뿐 아니라 주제[음악적 주제]를 변주해서[차이나게 해서] 만들어지는 선율적 텍스처[melodical texture]에 대해서도 말을 할 수 있다. 여기서 반복과 결부되는 것을 <영토적 모티프[동기: 동기는 특정한 선율에서 일정한 반복되는 주제의 동기를 지칭]>라고 부르고, 그 모티프에 대위[법]적인 선율을 붙여 나름의 표현적 형식을 구성하는 것을 <영토적 대위법>이라고 부른다. 반복의 요소는 다양한 차이와 변환에도 불구하고 이질적인 것들의 집합을 하나의 배치로 만드렁주는데, 리토르넬로란 "이질적인 요소들을 결합하여 하나의 배치로 만들어내는 반복적 성분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므로 "반복이 동일성의 반복이 아닌 차이의 반복으로 정의되는 것은, 이행이나 변환을 배치의 내적 성분으로 포함시키는데 매우 중요하다."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1991) T-1000(로버트 페트릭)은 어떻게 리듬적 인물이 다양한 차이나는 풍경으로서의 영화의 시퀀스마다 반복되는 형태를 띠면서, 즉 차이나는 반복의 형태로 나타나는지를 너무도 잘 보여준다].
2.3. <리듬적 인물>과 <선율적 풍경>이라는 두 가지 테마는 서로 섞이면서 다양한 장면이 만들어지는데, 선율적 풍경이 크게 바뀌면, 그 인물은 전혀 다른 배치로 넘어간다. 대표적인 예로 <터미네이터 2>에서의 갖가지 등장인물들이 특정한 배치와 그것의 수많은 변이형에서 차이나는 반복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를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결국 리토르넬로는 배치 안에서 반복과 차이를 사유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아니 오히려 정확히 반복과 차이를 통해 배치와 배치의 변환을 포착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그들은 환경(milieu)이나 영토적 배치가 어떻게 카오스에서 발생하는지, 하나의 환경이 어떻게 표현적 성격을 갖는 배치로 조직되는지, 나아가 하나의 영토를 떠나지 않고서도 하나의 배치에서 다른 배치로 이행하는지에 대해서 보여주기 위해서 이 개념을 사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