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재성의 철학자들/외부

다케타 히로나리, 김상운 역,『푸코의 미학』, 2018.

Ritournelle 2024. 1. 21. 16:54

서론

1) 이 책은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푸코의 사상을 미학의 관점에서 논한다. 푸코는 최근 인간의 삶[생명]과 그것들에 얽힌 다양한 권려고가의 관계를 문제로 삼는 이른바 '생명정치' 논의에서 참조되는 경우가 많고, [...] 다른 한편 그는말년에 "자기의 삶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한다"는 이념에서 출발해서 '실존의 미학'이라는 매우 중요한 개념을 제출하기도 했다. '실존의 미학'이 의미하는 것은 자기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삶의 방식이며, 자기에 대해 작동을 가함으로써 자기 자신이 변형으로 향해가는 삶이다. 이 개념은 '생명정치' 개념과 이른바 표리일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생명정치'에 있어서 주체에 작용하는 권력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관해 푸코 나름의 사유가 담겨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 이 개념은 생명정치에 있어서 어떤 주체의 양태가 가능한가에 관해 푸코가 제시하는 구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앞에서 말했던 '실존의 미학'과 '생명정치' 의 관계를 감안하면, 푸코에게서 미학이라는 테마는 그저 예술의 문제로만 시종일관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까지도 포함하는 넓게는 '사회적인 것'의 관건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점에 주목해서 '실존의 미학'라는 푸코 말년의 개념, 또 이것과 얽혀 있는 일종의 주체론에서 출발해서, 그의 사상 전체를 재파악하려고 시도한다(9~12쪽).

1. 이 책의 특징

2) 앞서 언급했듯이, 원래 푸코의 예술론은 활동의 전반기에 저술된 것이 많으며, 그동안 이것들은 기본적으로 후기의 주체론과 무관한 것으로 생각되는 일이 많았다. [...] 하지만 푸코 후기의 주체론의 전모가 어렴풋하게나마 보이게 된 지금, 내가 보기에 오히려 전기의 예술론은 그의 작업 전체의 위상에서든, 그의 사유와의 관련에서든, 새로운 중요성을 갖는 것 같다. 왜냐하면 거기서는 다양한 예술에 대한 사색의 형태를 취하면서도 나중의 주체론으로 발전되는 아이디어어의 싹이 있음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런 전망 아래에서 그의 사유를 다시 조감할 때, 특히 주목할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이 '실존의 미학'이라는 개념이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삶의 예술작품화'라는 구체적인 이념과 더불어, 주체와 예술의 결합을, 그 이미지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며, 또한 이것은 예술론의 관점에서 푸코의 사유 전체를 재파악하려는 우리의 의도에서 보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12~3쪽.)

3) 지금까지 푸코를 예술과 관련시켜 논한 선행 연구에서는, 주로 분석대상이 되는 푸코의 텍스트가 초기의 논고에 한정되는 경향이 있었다. […] 그에 반해 이 책의 특징은 말년의 '실존의 미학'을 둘러싼 주체론 안에 그의 미학적 테마가 지속되고 있음을 찾아내고, 그로부터 거꾸로 돌이켜서, 푸코의 사유 전체를 삶과 미학이라는 과점에서 재파악하는 데 있다. 이것은 푸코의 사유의 새로운 해석일 뿐만 아니라, '윤리적·정치적인 것'과의 결부를 점점 강하게 하고 있는 현대의 미학에 대한 공헌이라는 관점에서도 큰 의의를 지닌다고 생각된다. [...] 푸코는 철학 분야에서도, 예술 분야에서도 계속해서 커다란 참조점인데도, 지금까지 푸코에 대한 철학적 연구는 그의 미학적 사유에 주변적인 지위만을 주었을 뿐이고, 다른 한편으로 예술학적 연구에서는 그의 철학 자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이에 반해 이 책은 양자를 통합한 위에서 그 사상적 의의를 묻는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13~5쪽).

2. '바깥'이라는 경첩

4) 우선 첫째, 푸코 사유의 체게적인 재구축이다. 지금까지 그 전체상을 다뤘던 연구에서는 각 시기별 단절이라는 측면이 강조되는 경우가 많았던 푸코의 사유를, 일관성을 가진 것으로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푸코 저작에 특징적인 하나의 형상을 거론하고, 그것을 축으로 그의 사유 전체를 재구성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바깥'이라는 형상이다. 66년 블랑쇼론[<바깥의 사유>]에서 제시된 이 개념은 다분히 전기의 예술론과 관련된 개념으로, 일반적으로 이후의 푸코는 이를 뒤돌아보지 않았다고 간주된다. 이 개념은 들뢰즈가 그의 탁월한 푸코론에서 지적했듯이, 푸코 사유의 핵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 책은 '문제를 포함하고 있는' 이 개념을 거론하면서, 정설과는 반대로 후기 사유에서 이 개념이 지속되고 있음을 밝힌다. 푸코의 사유를 통일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관점을 확보하는 동시에, 거꾸로 이 개념 자체 속에서도 푸코에 입각한 형태로 새로운 함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15~6쪽).

5) 이상과 같은 모습으로 푸코의 사유를 미학의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재구축하는 한편, 우리는 이 작업의 핵심이 되는 '실존의 미학'이라는 개념에 관해서도 탐구한다. 이 책에서는 특히 '미학'이라는 단어의 함의에 주목하고, '실존의 미학'이라는 개념의 기본 양태에 관해 주로 말년의 강의록을 바탕으로 검토한다. 발겨히즌 것은 '윤리적인 것'과 '감성적인 것'사이에 자리매김되는 이 개념의 특이한 양상이다. 이렇게 이해된 '실존의 미학'의 구체 이미지를 동시기의 예술론 속에서 살필 것이다. 위의 과정을 통해 '삶'과 '예술' 사이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푸코에 대한 기존의 상을 쇄신하는 것이 이 책의 최종 목표이다. '실존의 미학'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해서 푸코의 사유 자체를 '윤리적인 것(삶)' 과 '감성적인 것(예술)' 사이에 위치하는 하나의 '미학'으로 제시할 것이다. 이 책의 목적은 두 개의 영역이 푸코의 사유에서 '바깥'이라는 개념을 축으로 서로 겹친다는 것을, 또 이 겹침에서 푸코의사유의 본질이 나타난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다(16~8쪽).

3. '미적인 것'과 '우리의 삶'

6) 이 책은 푸코의 사유를 통해 이른바 '미적인 것'에 대한 사유와 '우리의 삶'에 관한 사유의 교차점을 탐구한다. 이것에 주목하는 이유는? 우선 현대 미학에서의 '삶'이라는 토포스의 중요성과 관련된다. 미학자 마리오 페르니올라는 『현대의 미학』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현대를 "더할 나위 없이 미학적인 시대"라고 형언한다. [...] 20세기 이후의 미학은 단순히 미의 본질이나 예술에 관한 사유에 머물지 않고, 다른 철학 분야는 물론이고 그 밖의 학문 분야와도 결부된 형태로 문화 일반, 심지어 인간의 삶 자체로까지 고찰 대상을 넓혀 갔다는 것이다. [...] 그는 현대 미학을 몇 개의 핵심어(모양, 인식, 활동, 감각 등)와 더불어 독해한다. 그 중 1개의 장은 "삶의 미학"estetica della vita이라는 제목으로, 미학에서의 삶이라는 토포스의 의미에 초점이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삶의 의미를 긍정하든 부정하든, 이 물음이 자리매김되는 지평이 현대에서는 미학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일이 매우 종종 있었다.", "미학이 존재에 있어서 근본 문제를 제기했음"을 강조한다[Mario Perniola, L' esteti ca contempranea, Un parorama globale, Bologna, Il Mulino, <Le vie della civiltà>, 2011, 14.] 이 '삶의 미학'에 있어서 푸코 말년의 문제계, 특히 '실존의 미학'이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인식도 최근에는 미학의 영역에서 합의를 얻고 있는 것 같다(18~19쪽.)

7) '우리의 삶'을 둘러싼 사유에서도 미학은 결정적인 존재가 되고 있다. 미학자 피에트로 몬타니는 미학이라는 범주를 이른바 '생명정치'의 관건이라고 제시한다. 두 영역을 매개하는 것은 '현대 기술의 문제'다. 몬타니는 아렌트의 사유에서 출발해서 생명정치 개념의 윤곽을 확정하려고 한다. 폴리스(공적 공간)와 오이코스(사적 공간)이라는 두 개념 사이의 '양립 불가능한 적대 관계'가 있으며, 전자는 인간의 인간성을 특징짓는 '활동적 삶'에, 후자는 인간의 동물성을 특징짓은 '생물학적 생명'에 각각 대응한다. 이러한 구분을 바탕으로 몬타니는 생명정치의 특징을 '활동적 삶'의 후퇴 및 '생물학적 생명'의 전경화로 이해한다. "통치의 활동 및 권력의 행사가 오이코스 영역의 부당한 확대로서, 또 폴리스의 공간에서의 ;노동하는 동물'animal laborans로만 이해된 인간의 능력의 부당한 확대로서 초래될 때, '정치적인 것' 자체는 후퇴하며 그 자리를 어떤 관리 형태에 내주게 된다. 그것은 원래 삶을 '보증하는' 것이었음에도, 최종적으로는 많든 적든 직접적으로 공포나 죽음과 관계를 맺게 되는 그런 관리형태이다. 이리하여 삶-정치는 죽음-정치로 반전된다[Pietro Montani, <Estetica technica e biopolitica>, Fata morgna: quadrimestrale di cinema e visioni, Anno 1, no°, sctr./dic. 2006, p, 27.]

생명정치가 '생물학적 생명'의 통치로 정의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생명정치가 죽음정치로 필연적으로 반전된다는 인식이 나타나 있다. 몬타니는 이런 생명정치가 전지구적 기술 <장치>와 결부되는 형태로 미학이라는 범주를 철저하게 도구화한다고 생각한다. 벤야민이 30년대 중반에 발견한 '정치의 미학화'Die Ästhetisierung der Politik라는 현상이다. 벤야민은 그것을 기술[이미지의 기술적 생산 가능성이라는 발상[과 전체주의의 문제와 연계시키고, 이것에 '예술의 정치화'Politisierung der Kunst 라는 대안을 대립시켰다. 그는 "미학화에 적합한 정치적인 것의 차원"을 전체주의뿐만 아니라 생명정치의 차원에서, 즉 "생명공학과 인간기술과학의 시대에서의 생명의 정치" 속에서 보고자 한다. 전체주의 국가가 적절한 자형태의 자기 재현, 이른바 체계예술을 필요로 한다면, "생명정치의 <장치>는 미학이라는 범주를 보다 내적으로, 구조적으로,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생리적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현대에서의 미학은 기술의 문제를 통해 생명정치의 관건이 된다. 감성은 "생명권력이나 그 기술적 하부구조의 가능성"으로 간주되고, "어떤 기획이라 하더라도 많든 적든 의도적인 기술적 조작의 대상이 된다[몬타니, 같은 글, 50.] 감성을 감축하는 기술은, '미적 판단의 정치적 판단으로의 전환'[이미지에 의한 합의 형성, 감정에 기초한 정치적 결정]으로서, 다른 한편으로 감성의 기술적 조작-관리'(현실의 시뮬레이션화-우연성의 프로그램화)로 나타난다. 페르니올리는 미학에서의 '삶'에 관한 사유의 존재감을, 구체적으로 윤리적-정치적 사유의 존재감을 역설한다. 반면 몬타니는 윤리적 정치적 사유에서 미학의 존재감을 역설한다. '미적인 것'에 관한 사유와 우리의 삶에 관한 사유의 교차는 미학의 관점에서도 다른 분야의 관점에서도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19~23쪽.]

4. 신체와 실천

푸코의 '실존 미학'은 '신체'와 '실천'을 주요한 구성요소로 한다. '실존의 미학'이 자리매김되는 더 넓은 맥락, 즉 '삶의 미학'에서도 양자['신체'와 '실천']는 자기 형성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다. 오늘날 '삶의 미학'을 둘러싼 논의에서 중요한 참조점 중 하나인 미국 철학자 리처드 슈스터만은 자신의 개념인 '신체미학'somaesthetics의 관점에서 푸코의 '실존의 미학'에 주목한다. 그는 존 듀이를 좇아, 예술을 하나의 '경험'으로 파악한다. 거기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예술이 포이에시스(제작)와만 결부됐던 상황이 비판되고, 프락시스(실천 행위)와의 연결이 요구된다. 전자는 제작의 행위나 행위 주체로부터 분리된 외적 대상의 제작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며, 거기서 행위 주체는 자신의 제작물로부터 영향을 기본적으로 받지 않는다. 반면, 후자는 행위 주체의 내적 속성에서 유래하며, 또한 거꾸로 그 형성을 돕는 것이다[Pragmatist Aesthethics: Living Beauty, Rethinking Art, Rowman and Littlefield, 2000, 53; 포이에시스와 프락시스의 구별은 아감벤의 다음을 참조. <Poiesis e praxis>, in L'uomo senza contenuto[Man without content], Macerala, Quodlibet, 2000, 114.]

이런 의미에서 프락시스로서의 예술이란 행위 주체와 그가 산출하는 것이 불가분한 생산과정으로 '신체 미학'은 듀이가 말하는 '경험으로서의 예술'이라는 발상의 연장선상에 자리매김된다.푸코는 84년의 콜레주드프랑스 강의에서 퀴니코스파에 의한 '올바른' 삶의 원리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논한다. "올바른 삶으로서의 철학적 삶bios philosophikos이란 인간 존재의 동물성입니다. 이 동물성은 도전으로서 제기되고, 행사로서 실천되고, 스캔들로서 타자의 면전에 던져지는 것입니다[CV, 245.] 슈스터만은 푸코의 이 말에 주목하고, 거기서 "깊은 사려를 수반해 단련되고, 신체에 중심을 둔 삶의 양식으로서의 철학의 비전", 즉 그가 제창하는 '신체미학'과 공통되는 것을 읽어내고 있다[Practicing Philosophy: Pragmatism and the Philosophical Life, Routheledge 1997, 176.] 신체미학이 다루는 것은 "그것을 통해 우리가 자기 인식이나 자기 창조를  [...] 추구할 수 있는 다양한 신체적 실천이다[같은 책, 177.] 또한 신체적인 실천을 이렇게 이해한다면, "경험은 철학의 실천에 속할 것이다"라고도 슈스터만은 말한다. 그는 자신이 제창하는 '신체미학'을 푸코가 논하는 에로스적인 신체 속에서 찾아낸다. 페르니올라나 슈스터만처럼 푸코의 '실존의 미학'에 주목한 선행 연구는 모두, 특히 『성의 역사』 3부작을 중심으로, 푸코가 섹슈얼리티에 관심을 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거기서는 푸코에게서의 '삶의 미학'의 의미를 특히 성적인 관계성을 기반으로 한 과잉과 일탈이라는 관점에서 독해하려는 경향이 강했던 것이다. 섹슈얼리티는 후기 푸코에게서의 주요 테마이지만, 그의 '실존의 미학'의 의미가 이것으로 다 소진되는 것은 아니다. 거기서 더 주목하고 싶은 것은, 푸코가 '실존의 미학'에 관련된 실천들을 성적인 것에 한정하지 않고서 더 일반적인 일상 행위 속에서도 찾아낸다는 점이다. 그에게서 '실존의 미학'이란 그런 일상 행위의 축적에 의해 자신의 삶을 소재로 작품으로서의 자기를 만들어나가는 삶의 방식이기도 했다[Guiilaume Le Blanc, La pensée Foucault, Paris, Ellipses Marketing <Philo>, 2006, 47~64; 또한 같은 저자의 <L'action, le style et la vie ordinaire>, in L'ordinaire et la politique, Claude Gautier et Sandra Laugier(dir,), Paris, PUF, 2006, 137~45.]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일상성의 미학'이라는 현대 미학의 동향이다. 프랑스 미학자 바르바라 포르미는 퍼포먼스 아트 등에 관한 고찰에서, 삶의 본질을 신체적 실천으로서 의 '몸짓'에서 확정함으로써 '일상적인 삶의 미학'을 구축하고자 한다[Barbara Fomis, Esthétique de la vie orinaire>, Paris, PUF, <Lignes d'art>, 2010.] 이런 '일상적인 삶의 미학'도 듀이의 '경험으로서의 예술'의 사유를 이어받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연구도 많이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일상 행위나 경험이라는 관점에서 '삶'과 '예술'의 문제에 접근한다는 것이 특징적이다[David Novitz, The Boundaries of Art: Philosophical Inquiry Into The Place of Art In Everyday Life(19920, 2001; Andrew Light And Jonathan M. Smith(Ed.), The Aesthetics of Everyday Life,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5.].

몬타니는 감성이 점점 더 정치의 관건이 되고 있는 현대의 상황을 지적했다. 이런 상황을 겪은 미술평론가 보리스 그로이스는 푸코와 아감벤은 참조해서 삶 자체가 권력의 개입 대상이 되는 현대에 어떤 예술이 가능한가라는 근본 물음을 제기한다[Boris Groys. "Art in The Age Of Biopolitics; From Artwork To Art Documentation", In Art Power, Cambridge, Ma, Mit Press, 2008.] 몬타니는 위에서 적은 상황에 현대의 기술의 문제가 관련되어 있다고 시사한다. 예술을 단순한 미적인 대상으로 파악하는 게 아니라, 그 어원(테크네)으로 돌아가 하나의 '테크놀로지'로 파악한 후, 그것이 어떻게 인간의 삶과 관계되는가에 주목하고 싶다. 삶을 둘러싼 사유 속에서 푸코가 씨름하는 논의는, 현대의 예술이 하나의 '기술'로서, 넓은 의미의 '정치적인 것'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과 정치라는 테마는 나름의 역사를 갖고 있고, 특히 19세기 이후에는 급속한 근대화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사회운동 과의 관계 속에서 예술의 의의가 문제였다. 그러나 거기서 문제였던 것은, 어디까지나 '활동적인 삶'(인간의 삶)과 관련된 정치였고, '생물학적 생명'(동물적인 생명)과 관련된 정치, 즉 '생명정치'가 아니었다.

5. 책의 구성

들뢰즈는 푸코의 '장치' 개념을 논한 소론에서 하나의 장치에 포함된 다양한 선분을 '역사[또는 문서고]'와 '현실적인 것'le actuel이라는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눈다. 전자는 "우리가 현재[당시에] 그러한 것[우리가 더 이상 이미 그렇지 않은 것]"을, 또한 '현실적인[현행적인] 것'이란 "우리가 지금 바로 그러한 것"을 가리킨다고 한다. [...] 이로부터 들뢰즈는 푸코의 저작들과 이렇게 구두의 '퍼포먼스'의 관계를 니체의 저작들과 이것들과 동시대에 쓰인 『유고』와의 관계를 비교하고 있다. 그리하여 시사되는 것은 (푸코와 니체 둘 다에게서) 두 종류의 텍스트의 상호보완성이며, 심지어 (자칫하면 전자에 비해 경시되기 쉬운) 후자가 연구에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들뢰즈의 혜안을 존중하면서 이 책에서는 푸코의  『말과 글』에 수록된 숱한 인터뷰나 대담이, 경우에 따라서는 저서나 논문과 맞먹을 정도로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확실히 그것들은 구두로 진행됭준비나 가다듬기를 공표서만큼의 치밀한 준비나 가다듬기를 공표된 것은 아니며, [...] 그렇지만 이 책에서 중심 문제가 되는 것이 푸코에게서 '주체'라는 토포스이며, 특히 그 현실성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런 접근법이 타당한 것 같다.

 

제1부 '바깥'의 예술론

1장 재현과 그 잔여: 전기의 예술론에서

푸코는 60년대를 통틀어 다양한 예술론을 썼다. 거기에는 하나의 중심적인 테마가 있다. '바깥'dehors이다. 이는 푸코가 66년에 발표한 블랑쇼론인 <바깥의 사유>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푸코는 현대의 문학이 이제 '내면화의 차원'에 속하기를 그만두고 '바깥'으로 이행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거기서 언어는 담론의 존재 양식을―즉 표상의 전제[재현의 왕국]을―벗어나며, 문학은 자기 자신에서 출발해 전개된다. '바깥'이란 언어가 더 이상 담론도 의미도 의사소통도 아니고 "날것 상태의 언어의 늘어놓기, 전개된 순수한 외면성/외부성"이 되는 공간을 가리킨다[푸코, 같은 글, 547. 여기서 내면성은 intériorité, 그에 대비되는 외면성은 extériorité의 번역이다.]

주체는 담론의 책임자라기보다는 하나의 '비존재'가, 그로부터 언어가 무제한으로 분출하는 '공백'이 될 것이다. 이 언어의 벌거벗음의 경험은 주체의 존재를 위험에 빠뜨린다. 언어 자체와 관해서도 말하는 유형의 현대 문학, 그것은 '말하는 주체'가 소멸되는 '바깥'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이다. 푸코는 모든 주체성의 바깥에 머물고, 그로부터 주체의 한계를 드러내는 사유를 '바깥의 사유'라고 부르게 된다.

푸코에 따르면 '바깥'이란 실정적인positive 형태로 ―실례를 동반한, 이른바 또 하나의 '내면성'으로서―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늘 부재로서, 하나의 공백으로서 드러날 뿐이다. "내면성이 자기의 외부hors로 끌어당겨지는 바로 그 순간, 바깥은 내면성이 자신의 습곡repli과 그 습곡의 가능성을 찾아내곤 하는 바로 그 장소에 구멍을 뚫는다."[푸코, 같은 글, 562.] 이처럼 바깥이란 내면성의 습곡[주름]으로서 발견된다. 어떤 '형태 이하의 것, '부정형의 익명인 같은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주체에게서 동일성을 빼앗고, 주체를 텅 비게 하며, 두 개의 형상―쌍둥이지만 합쳐놓을 수 없는 두 개의 형상 ―으로 분할하고, 주체가 <나>라고 말할 권리를 빼앗고, 주체의 담론에, 그것의 메아리인 동시에 부인할 수 있는 말을 대립시킨다. '

바깥의 경험'이란 자기 속에서 하나의 '사막'이 커가는 것을 느끼는 경험이며, 사막의 맞은편에는 "주체[주어]를 부여할 수 없는 언어가, 신 없는 법이, 인격 없는 인칭대명사가, 표정도 눈도 없는 얼굴이, 결국 같은même 다름autre이 반짝거리고 있는" 것이다[푸코, 같은 글, 562.] 또한 푸코는 이 '바깥'을 <나>라는 1인칭에 대한 <그>라는 3인칭 같은 것이라고 논한다. "그것은 얼굴도 시선도 없는 <그>이며, 그는 타자의 언어에 의해서만[사물을] 볼 수 있다. [...] 그리하여 그는 1인칭으로 말하는 <나>ㅇ게 가능한 한 가까이 접근하고, 그 말이나 문구를 무제한적 공백 속에서 되풀이하는 것이다."위와 같은 <바깥의 사유>의 서술을 통해 우리는 '바깥'이 다양한 방식으로 주체를 한계로 데려가고 마침내 소멸시켜버리는 비인칭적인 힘 같은 것으로 상정됨을 알 수 있다.

1. 재현의 문턱

1.1.1. 고전주의 시대를 특징짓는 것은 재현[표상]의 일원적인 지배였다. 거기서 재현은 언어, 개인, 자연, 욕구 등등의 존재 양태를 다루는 것으로서 군림했다. 이 시대에 재현 분석이 모든 경험의 영역에서 결정적 가치를 지녔던 것은 이 때문이다. "고전주의 시대의 질서 시스템 전체, 사물들을 그 동일성의 시스템에 의해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거대한 탁시노미아(분류법)의 전체는 재현이 자기를 재현할 때 자기의 내부에 여는 공간 속에서 전개되는 것이다"[MC, 221~22.] 푸코에 따르면, 이 고전주의 시대의 사유의 종언은 재현의 후퇴와, 혹은 언어의, 생물의, 욕구의 재현으로부터의 해방과 일치한다. 거기서는 '의지'나 '힘' 같은 것이 근대적인 경험으로서 출현하고, 고전주의 시대의 종언을, 그리고 또한 '재현의 왕국', '재현적 담론의 지배'의 종언을 알리는 것이다. 푸코가 '재현의 종언을 고하는 것'이라고 부르고 있는 언어, 생물, 욕구를 '바깥'의 요소로 파악한다면, 그가 '바깥의 사유'라고 부른 일련의 형상이 등장하는 것도 대략 이 시기 이후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1.1.2. 푸코가 '바깥의 사유'의 선구자로 간주한 사드는 바로 고전주의 시대와 근대 사이의 전환기에 걸맞는 문학적 양태를 그에게서 인식할 수 있다. 사드의 문학은 "욕망의 법률 없는 법률과  담론적 재현의 면밀한 질서 사이의 불안정한 균형"[MC, 222]을 표현한다. 사드적인 '방탕'의 원리를 체현하는 자, 즉 '방탕자'는 "욕망의 모든 판타지와 모든 격발을 따르는 동시에, 의도적으로 이용된 명석한 재현에 의해, 그 가장 미세한 움직임까지도 비춰주는" 자이다[MC, 222.] 어떤 의미에서 사드의 등장인물들은 이 돈키호테와 대응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르네상스의 막바지에 나타난 『돈키호테』 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유사에 대한 재현의 아이러니한 승리"인 반면, 고전주의 시대의 막바지에 나타난  『쥐시틴느』 와  『줄리엣』 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번에는 "재현의 한계를 거꾸러 뜨리는, 욕망의 어두운 반복적 폭력"이라는 셈이다. 줄리엣의 생애라는 커다란 이야기는 욕망, 폭력, 잔혹함, 죽음 같은 것을 따라, "재현의 번쩍이는 일람표"를 전개하는 것이다[MC, 223.] 사드는 욕망의 모든 가능성을 헐뜯지도 숨기지도 않고 노출시킴으로써, '재현하는 것'을, 즉 '거명하는 것'을 목표로하는 담론에 아직 속해 있지만 거기서는 이미 재현 아래에 폭력, 삶, 죽음, 욕망, 섹슈얼리티가, 이런 재현들로는 환원될 수 없는 다양한 것이 확실하게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고전주의 시대의 담론과 사유의 결실, 그 한계가 되고 있다. 사드의 에로티시즘은 욕망의 모든 가능성을 산술적인 전개에, 혹은 논리적 조합에 맡김으로써, 거기에서의 주체의 존립을 불가능하게 하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사드는 근대의 입구에 있으며, '바깥'의 도래를 알리는 표지로 자리매김된다. 거기서 '바깥'은 욕망을 중심으로 한 초재현적인 힘으로서 나타나며, 주체를 한계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사드에게서 싹을 인식할 수 있는 이러한 사유는 특히 20세기 문학에서 완전한 전개를 보여주게 될 것이다.

2. 언어의 무한증식 시뮬라크의 공간

1.2.1. '바깥의 사유'는 원래 블랑쇼론으로 저술되었다. '바깥'은 "말하는 <나>"의 부재에 의해, 근원적인 3인칭에 의해 표시된다. 푸코에 의하면, 블랑쇼는 다양한 작품이 "언어의 바깥 측면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또한 작품이 저자의 존재로 환원될 수 없는 "영원한 바깥의 흐름"에 다름없다는 것을 보여준 최초의 저자이다. 1.2.2. 또한 푸코는 그 글에서 클로소프스키에게 '바깥'의 경험이란 "분신, 시뮬라크르의 외면성, <자아>의 연극적 및 엄청난 증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클로소프스키론 <악테옹의 산문>에 따르면, 클로소프스키가 그의 언어에 의해 묘사하는, 움직이는 모든 형상은 시뮬라크르이다[푸코, <La propose d'Actéon>, n 21(1964), 357.] 시뮬라크르의 특징은 '기호'와는 달리, 하나의 의미를 정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클로소프스키에게 그것은 등장인물의 존재 양태로서 발견된다. 개별 동일성을 극한까지 감축된 <인간=시뮬라크르>가 제한 없이 증식을 계속하는 것이다. 클로소프스키 작품의 등장인물에서는 모든 것이 단편화되고 부서지고 한순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모든 형상-시뮬라크르는 그때그때의 장마다 모습을 바꾸고, 이런 순간적인 뒤틀림은 경험의 '변질장치'alternateur의 작용에 의해 산출된다. 클로소프스키가 어떤 내면성과도 무관한 고유한 언어에 의해 열어젖힌 것이 바로 이 시뮬라크르의 공간이며, 이리하여 문학이 관련되는 것은 인간의 기호도 아니고 분신의 공간, "시뮬라크르라는 텅 빔[공허]이다."[365.]  이로부터 주체의 동일성이 한없이 희박해지고, 무수한 익명의 목소리 속으로 흩어져가는 시뮬라크르의 공간의 '바깥의 공간'이라고 일컬어지게 된다. 한계와 위반1.2.3. 바타이유에게 '바깥'은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위반'에 의해 드러난다. 푸코에 따르면, 섹슈얼리티란 더 이상 모독해야 할 할 것이 아니게 된 세계(즉, 신이 없는 세계)에서 "대상 없는 신성 모독"을 가능케 하는 것이며, 푸코는 이런 "더 이상 성스러운 것에 긍정적인 의미가 인정되지 않는 세계에서의 신성모독"을 가리켜 '위반'이라고 부른다. 성스러운 것을 하나의 '공허한 형식'으로서 재구성하는 것이다. 위반과 한계는 서로 자신의 존재를 상대방에게 짊어지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위반이란 한계 없이는 의미를 갖지 않는 것이며, 반대로 한계도 위반이라는 몸짓이 없으면 실재할 수 없다. 바타이유적인 '에로티시즘'의 근저에서는 이 한계와 위반 사이의 상호작용을 인식할 수 있다. 그것은 위반에 의해 주체를 한계에까지 이르게 하는 경험, 일종의 신적 경험이다. 1.2.4. 바타이유에게 주체의 한계를 위반하는 '에로티시즘'의 경험이 이루어지는 것이 첫째로 언어 속에서라는 점이다[Préface a la transgression>, no 13(1963), 270.] [...] '철학적 주체성'의 붕괴, 언어의 내부로의 산산이 흩어짐, 그리고 증식. 푸코가 바타이유의 작품에서 간파하는 것은 바로 이런 '현대의 사유의 기본 구조'이다. 이 철학의 주체의 산산이 흩어짐 속으로 철학의 언어는 주체를 다시 발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계에 이르기까지 그 상실을 체험하기 위해 나아간다[같은 글, 271]. 거기서 언어가 체험하는 것은 "자기의 바깥으로 완전히 흩어지며 완전히 공허에 이르기까지 자기를 텅비게 하는" 주체이며, 또한 언어가 스스로 말하는 것은, 주체가 남긴 엄청난 공허 속, 즉 '바깥'에서인 것이다. 푸코는 '이미지'(클로소프스키), '언어'(바타이유)가, 그것을 통솔하는 주체를 갖지 못한 채 증식하는 꼴에서 '바깥'의 존재 양식을 찾아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시뮬라크르의 변전으로서, 다른 한편으로 한계와 위반의 상호작용으로서 각각 경험된다.

3. 회화 공간의 바깥 고전주의 시대의 재현

1.3.1. 푸코는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전반에 걸쳐, 상징적인 회화론 세 편을 발표한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관한 논고, 마네의 작품들을 둘러싼 강의, <이미지의 배반>[<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를 중심으로 한 마그리트론이다. 여기서 그가 세 개의 회화론을 통해서 다양한 각도에서 부각하고자 한 것은 '재현'의 체제로부터의 회화의 해방이라는 사태이다. 푸코는 <바깥의 사유>에서 "언어가 재현의 왕국을 벗어나고, 그것 자체로부터 출발해서 전개하는" 사태를 '바깥'이라고 했다. 회화론에서 이와 관련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회화가 만들어내는 재현 공간에 침입하고 이것에 균열을 가져오는 '바깥'의 요소이다. 1.3.2. <시녀들>의 분석에서 푸코는, 벨라스케스의 대표작 속에 "고전주의 시대의 재현"을 간파하고 있다. 타블로 안에는 "고전주의 시대의 재현이 여는 공간의 정의"가 있다고 푸코는 본다. 이 작품은 타블로Tableu의 전방에 있는 하나의 영역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타블로의 외부에 있기 때문에 절대로 접근 불가능하지만, 그러나 타블로를 구성하는 모든 선에 의해 규정되어 있는 장소"이다[MC, 29] 타블로의 외부에 있고 본질적인 비가시성 속에 틀어박혀 있는 한에서, 주위의 모든 재현을 질서 짓는 "구성의 진정한 중심"이라고 말한다[MC, 30] 이 중심이 상징적으로 '지고의 것'인 까닭은 그것이 타블로에 대해 차지하고 있는 세 가지 종류의 기능이기 때문이다. 모델과 관람자와 화가라는 세 개의 시선이 서로 포개지는 지점, 세 개의 '시선'의 기능이 서로 섞이는 지점이다. 1.3.3. 다른 한편으로, 관념적이고 실재적인 이 비가시의 중심은 세 개의 기능에 대응하는 세 개의 형상으로서, 타블로의 내부에 투영되어 있다. 우선 화면 왼쪽에 있는 화가, 회화 오른쪽 문 옆의 방문객(관람자), 중앙의 거울에 보이는 국왕 부부(모델)이다. 푸코는 중앙 거울, '모델'의 형상인 국왕 부부를 비추고 있는 거울에 대해 "무엇인가를 명시하는 것만큼, 그것 이상으로 숨기는" 효과를 갖는다고 지적한다[MC, 31.] 국왕 부부라는 '모델'이 자리 잡고 있는 장소는 화가의 관람 장소이다. 거울의 반사는 본래, 타블로에 내재적으로는 무관한 것, 즉 화가와 관람자의 시선을 내부에 가져오는 것이지만, 그들은 타블로의 공간 내부에 이미 현전했기에, 거울 속에는 깃들 수 없는 것이다.  거꾸로 거울 속에 깃든 모델은 타블로의 공간 내부에 현전할 수 없다. 1.3.4. 이런 방식으로 타블로가 보여주는 것은 "볼 수 있는 것의 깊의 비가시성이 보는 자의 비가시성과 관련되어 있다"고 하는 일종의 양립 불가능성이다. 재현하는 자와 재현되는 것의 관계, 이 '재현의 이중 관계'는 완전한 형태로는 현전하는 일은 결코 없다. 벨라스케스의 타블로는 모델, 관람자, 화가라는 세 개의 존재를 재현하고자 했지만, 한편으로 거기에서는 이러한 양립 불가능성에서 오는 '본질적인 공허'가 명시되어 있기도 하다. 『말과 사물』 에서  푸코는 고전주의 시대 이후―아마 현대까지―기호가, 스스로가 표시하는 것과, '유사'라는 유대, 이 르네상스적인 질서에 의해 연결되기를 그치고, 재현의 내부에서, '그것 자체와 놀아나는' 존재가 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회화의 물질성 시뮬라크르로서의 회화1.3.5. 푸코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마그리트론에서 그의 작품들을 '시뮬라크르'의 관점에서 논한다. '언어적 기호와 조형적 요소의 분리', '유사와 확언의 등가성'은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서양 회화를 지배했던 원리이다[CP, 27~30]. 마그리트의 혁신성은 유사와 확언[단정]의 연결을 분리하고, 회화에 속하는 것을 유지하면서 담론에 가까운 것을 배제한다는 점에 있다. 그것은 마그리트의 회화에서 "닮은 것이 한없이 계속되는 것을 가능한 한 추구하는 것, 다만 그것이 무엇을 닮았는지 말하려고 하는 모든 단정을 없애버리는 것"[같은 글, 41.]이라는 방법으로 나타난다. 마그리트의 회화는 "'~와 같은'에서 해방된 '<같은>'의 회화"가 될 것이다. 1.3.6. 푸코는 '유사'resemblance와 '상사'similitude라는 두 가지 개념을 구별하여 대립시킨다. 마그리트의 회화는 '상사'로 특화된 회화라고 특징짓는다. 유사한 '파롤'을, 즉 그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모사를 질서짓고, 위계화하는 바의, 원본의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이다. 상사는 시작도 끝도 없는 계열 속에서 발전하는 것이다. '유사'가 재현에 도움이 된다면, 상사는 '반복'에 도움이 되는 것이며, 유사가 모델을 따라 질서짓는 것이라면, 상사는 '시뮬라크르'를, 즉 "'닮은 것'의 '닮은 것'에 대한, 제한 없는 가역적인 관계"[CP, 42.]를 순환시키는 것이다. 1.3.7. 마그리트는 클로소프스키가 문학에서 했던 것을 회화의 영역에서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회화 재현이 여는 내적 공간 속에서, 시뮬라크르의 공간이라는 '바깥'의 공간을 전개해 보여준 것이다[Phillipe Sabot, <Foucault, Deleuze et les simulacres>, Conceptios, no.8, <Gilles Deleuze―Michel Foucault: Continuité et desparité>, Sils Maria éditions/Vrin, mars 2004, 3~21. 푸코에게서 시뮬라크르로 결실을 맺는 싹은 '이미지의 자율성'이라고 말해야 할 발상과 더불어, 54년에 발표된 <빈스방거의  『꿈과 실존』 에 부친 서문>에서  이미 제시되었다.]

4. 문서고로서의 바깥 도서관이라는 문서고

1.4.1. 60년대의 푸코에게 표지가 되는 몇 가지 문학론이나 회화론을 검토함으로써 푸코의 예술론에서 '바깥' 개념이 지닌 중요성과 윤곽을 부각시켰다[전반기의 푸코는 '가시적인 것'과 '언표 가능한 것', 각각의 '바깥'에 대해 논했다. 한편 그의 사유에서는 이 둘 사이에 뚜렷한 구별이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다(이에 대해서는 『말과 사물』, MC, 25를 참조.) 반면, 들뢰즈는 이 양자가 역설적인 방식으로 마주치는 것이 바로 '바깥'의 차원이다. "만일 보는 것과 말하는 것이 외부성의 형식이라면, 사유하는 것은 형식 없는 바깥으로 향하고 있다."[들뢰즈, 『푸코』 , 1986]. 이로부터 명확해진 것은 재현의 작용을 벗어나는 '바깥'의 양태이며, 재현을 관장하는 통일적 주체의 해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사태이다. 이 '재현의 외부'와 주체 사이의 관계는 푸코 속에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문서고로서의 바깥'이라는 관점을 통해서 살펴보자. 1.4.2. 푸코는 60년대 문학론에서 오늘날의 언어 공간은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에 의해 특징지어진다고 말한다. 거기서는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이미 말해지고, 지금까지 생각되고 상상된 모든 언어, 나아가 생각할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언어가 발견된다. 모든 것은,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한 것조차, 이미 [말로] 내뱉어지며, 그 결과 "아주 약간의 정합성을 지닌 형태"를 새롭게 발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져버렸다고 하는 셈이다. 분명해진 것은 이제 언어는 그 자체가 무한히 증식하고 <같음>의 이중화된 형상 속에 끝도 없이 반복된다는 것이다[<Le langage a l'infini>, n0 14. 1963, 288]. 문학이 시작되는 것은 책이 더 이상, 말이 어떤 형태를 취하게 되는 공간이 아니라 "모든 책이 모조리 정리해서 담겨지고 불태워지는 장소"가 될 때라고 간주된다. 그것은 장소 없는 장소이다. 왜냐하면 거기서는 과거의 모든 책이 이 불가능한 '한 권'에 수록되고, 이 한 권은 자신의 속삭임을 다른 많은 책들 사이에―다른 모든 책들 후에, 다른 모든 책들 앞에―정렬시키기 때문이다[<Le langage a l'infini>, n0 14. 1963, 288]. 1.4.3. 이 한 권에 '이미 쓰인 책'에서 발생한 언어의 요소들, 즉 '이미 말해진 적이 있는 반복'이 수록되어 있다. 이리하여 도서관은 새로운 공간으로 열려지고 분류정리되고 잘라내지고 반보고디고 조합되는 것이다<Postface a Flaubert>, no 20, 1964, 337.] 거기서 상징적인 것은 이미 말해진 말, 자질구레한 정보나 기념물의 집적, 복제의 복제 같은 것 속에 깃들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다양한 기호 사이에서, 책에서 책으로 반복되는 이야기와 주석의 문제 속에서 확대된다. 그것은 다양한 텍스트 사이에서 생겨나고 성장한다. 그것은 도서관의 현상이다. 문서고와 작품 1.4.4. 푸코에 따르면 블랑쇼가 말하는 '문학 공간'이란 바로 이 도서관이다. "블랑쇼는 <서양>의 모든 중요한 작품에서 어떤 것을,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호소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오늘날 말하는 언어의 일부를 이루는 것도 허용하는 어떤 것을 추출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말하는 언어 속에 횔덜린, 말라르메, 카프카가 전적으로 실존한다면 그것은 바로 블랑쇼 덕분입니다."[Foile, litérauture, sociéte>, no 82, 1970, 992.] 블랑쇼는 세계문학의 대작들이 철저하게 우리의 '바깥'에 있다는 것을, 즉 우리와 작품 사이의 '외부성'을 나타내기 위해 행해진다. 푸코는 블랑쇼를 '문학의 바깥'으로 정의하게 된다. 도서관이라는 형상은 '바깥의 문학'의 은유에 다름 아닌 것이다. 회화 분야에서 도서관의 형상에 대응하는 것이 '미술관'의 형상이다. 푸코는 마네와 미술관의 관계가 플로베르와 도서관의 관계와 상동적이라고 지적한다. 양자의 상동성은 이 두 사람이 모두 과거에 그려진, 혹은 써진 것에 대해 각각 근원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창작한다는 점에서 찾아낼 수 있다. 그들의 예술은 "문서고가 형성되는 곳"에서 마련될 것이다[<Postface a Flaubert>, no 20, 1964, 327.] 푸코에 따르면 그들이 명확히 한 것은 "우리 문화에서 본질적인 사항", 즉 "향후 각각의 타블로는 회화라는 거대한 바둑판무늬의 표면에 속하고, 각각의 문학작품은 써진 것이라는 무한한 속삭임에 속한다"는 것이다[같은 글]. 그물망으로서의 문학1.4.5. 다른 한편 푸코는 이 '도서관'으로서의 문학이 오늘날 소멸되고 있다는 것도 지적한다. 아직은 '역사의 단선적 발전'을 존재형식으로 삼고 있는 문학을 대신에, 이제 나타나고 있는 것은 "나중에 온다는 (새롭다는) 사실이 계기라는 직선접 버칙으로 전혀 환원되지 않는" 문학이다[<Distrance, aspect, origine>, no 17, 1963, 306.] 푸코가 "그물망réseau으로서의 문학"이라고 부는 이 문학은 작품 사이의 동시 발생적 관계를 특징으로 한다. '유사'(혹은 '모방', '영향']이라는 질서에도, '교대'('계기', '발전', '학파')라는 질서에도 속하지 않는 관계다. "작품들이 가까이서 그리고 떨어져서 서로 마주보면서 서로를 정의할 수 있는 관계, 작품들의 차이와 동시성에 기대고 있는 동시에, 특권도 정점도 없이 어떤 그물망의 확대를 정의하는 관계"이다[같은 글, 같은 쪽.] 1.4.6. 이 "말의 잎사귀"라고도 해야 할 그물망을 가리켜 '픽션'이라고 부른다[308]. 그 근원에 있는 것은 어떤 시원적인 언표도 존재하지 않는 철저한 '단편화'이며 '산란된 외부성'extériorité ésparse이다. "픽션의 언어는 이미 말해진 언어 속에, 결코 시작된 적이 없었던 속삭임[중얼거림[ 속에 기입된다."[같은 글, 309.] "이리하여 말하는 주체는 텍스트의 외부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텍스트에는 그저 항적航跡의 교차(<나>또는 <그>, <나>인 동시에 <그>)가, 언어의 다른 주름 사이의 문법상의 굴절이 남겨질 뿐이다[푸코, 같은 글, 312.] 이로부터는 푸코가 상정하는 '바깥'이 하나의 문서고로서, 그것도 단선적인 크노놀로지를 전제하지 않는, 혹은 "이미 서져 있는 것"이라는 형태로 저자의 외부에 늘 이미 존재하고, 시간적인 전후관계를 문제로 삼지 않는 어떤 '그물망'을 형성한다. 그때 저자의 창작활동은 이 문서고에 탈출해야 비로소 성립하는 것이게 되며, 또한 끊임없이 문서고로 돌려보내지게 될 것이다. 즉, 예술에서의 '바깥의 사유'란 문서고의 절대적인 선행성을 전제한다는 얘기다[푸코는 말년에 발표한 피에르 불레즈론에서 '역사에 대한 불레즈의 태도에 관해 말하는데, 거기서 논의되는 불레즈에게서의 '역사'도 이런 '문서고로서의 바깥'을 상기한다. [...] 푸코에 따르면, 불레즈가 역사에 주의를 기울일 때는 목적은, "현재도 과거도, 둘다 역사 속에서 고정된 상태에 머물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양자가 영속적인 상호작용의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한다(Pierre Bouleze, l'écran traversé>, no 305, 1982, 1040).

5. 저자의 분신

1.5.1. 푸코에 따르면, "우리는 더는 진리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담론들의 일관성 속에 있으며, 더는 미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형태들의 복합적인 관계 속에 있다[푸코, <Sur les façons d'écrite l'hitorie>, no 48, 1967, 624]. 푸코는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 어떤 개인이 다양한 요소로 분해되고 담론들의 일관성이나 형태들의 무한한 그물망으로 통합될 수 있느냐에 있다고 주장한다. 과거에는 뭔가를 쓰는 자에게 문제는 어떻게 익명성에서 벗어날 것인가였지만, 오늘날의 그것은 "자신의 고유명을 지우며, 서로 연결된 담론들의 이 거대한 익명적 속삭임 속에 자신의 목소리를 깃들게 하는 것"이다[같은 글, 624]. 1.5.2. "누가 말하든 상관없다, 누군가가 말했다, 누가 말하든 상관없다고 말이다. "[<Qu' importe qui parle?">] 이 강연에서 푸코는 이 베게트의 말에서, 그 '무관심'indifférence에서 "현대적 에크리튀르의 가장 근본 윤리 원칙 중 하나"를 인식하고 있다[Qu'est-ce qu' un auteur?>, no 69, 1969, 820.] 즉 거기에는 '표현'이라는 테마로부터 해방되고, "그것 자신밖에는 참조하는 것이 없는" 오늘날의 에크리튀르의 양태가 보인다고 하는 셈이다. 거기에서 에크리튀르는 이제 내면성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반대로 외부성의 전개와 일치하게 된다. 1.5.3. 이런 현대의 에크리튀르의 양태를 배경으로 했을 때, 그것을 산출하는 존재, 즉 '저자'란 어떤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푸코에 따르면, 저자란 이제 담론의 외부에 있으며, 그것을 산출한 현실의 개인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텍스트의 경계를 향해 내달리고, 그 윤곽들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그 능성을 따라 걸으며, 존재 양태를 현시하는, 혹은 적어도 그것을 특징짓는" 것이다[푸코, 같은 글, 826.] 푸코는 현대의 저자가 어떤 담론 집단과 그 특이한 존재 양태를 현시하는 '양태'로서 작동한다고 말한다. 그는 "한 사회의 내부에서의 몇몇 담론들의 실존양식, 순환양식, 기능양식에 특징적인 것"을 "기능으로서의 저자"라고 부른다[같은 글, 같은 쪽.] 기능으로서의 저자는 다음의 특징을 지닌다. "기능으로서의 저자는 담론의 세계를 옥죄고 결정하고 분절하는 법적-제도적 체계에 연결된다. 또한 그것은 모든 담론에 대해, 모든 시대에 있어서, 모든 문명 형태에 있어서 한결같이 그리고 똑같은 방식으로 행사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그것은 어떤 담론이 그 산출자에게 자연발생적으로 귀속됨으로써가 아니라 특정하고 복합적인 조작의 연속/계열série에 의해 정의된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실제젹[현실적] 개인을 순수하고 단순하게 가리키는 것[만]이 아니며, 이와 동시에 복수의 자아를, 복수의 위치-주체들―상이한 계급들의 개인들이 차지하게 될 수 있는―을 발생시킬 수 있다[같은 글, 831~2쪽.] 1.5.3. 저자는 현실의 개인과는 다른 존재로, 픽션을 모종의 방식으로 경계 획정하고 배제하고 선별하는 기능 원리로 재파악된다. 그것은 의미작용의 무한 원천이 아니라, 반대로 의미의 증식을 제한하는 것이다. 푸코는 18세기 이래 픽션의 조절자 역할을 맡아 왔던 '기능으로서의 저자'가 픽션을 둘러싼 새로운 상황을 겪고, 이제 변질되고 있다고 시사한다. 지금까지 봤던 언표의 문서고성이나 언표 주체의 익명성 같은 테마는 69년에 발표된 『지식의 고고학』에서 상세하게 논해지게 된다. 이런 테마는 63년에 발표된 『레이몽 루셀』이나 다른 루셀론에서 이미 선제적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제2장 '바깥'을 건드리기: 루셀과 '광기'의 언어

푸코는 『광기의 역사』 말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광기는 작품의 최종 순간으로서만 존재한다. [...] 작품이 존재하는 곳에 광기는 존재하지 않는다."[HF, 662.] 작품과 광기의 양립 불가능성이라는 테제의 의미는?  60년대의 푸코는 광기를 "위반인 동시에 이의제기인 경험"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의 행동에 한계를 부과하고, 모종의 행동을 배제하는 것이 '문화'의 기본 구조라고 했다. 그런 한계의 위반이나 '분할'에 대한 이의제기가 특히 결렬하게, 분명하게 나타나는 분야나 영역이 있다. 고전주의 시대에서의 이성/광기의 문제. 푸코는 현대에서 이 이성/광기의 문제가 그 한계, 이의제기, 위반의 작용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은 바로 언어의 영역이라고 지적한다[Débat sur la poésie>,  n0 23, 1963, 423.]푸코가 이 광기의 경험의 등장을 인식하는 것이 "자기의 내부에서 이중화되는[둘로 쪼개지는, 두 배가 되는] 언어"이다[La foile, l'absence d'œuvre>, n0 25, 1964, 444.] 이런 언어에서는 무어이 말해지고 있는가는, 즉 의미는 거의 중요하지 않으며, 오히려 언어의 내부에서의 말의 해방이 목표가 된다. 또한 이 "말의 관리 불가능한 도주"야말로 어떤 문화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말을 '위반적'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의미나 말의 소재가 아니라 그 작용을 가리킨다[같은 쪽, 444.] '이중 언어'로서의 광기의 경험은, 그것이 의미를 '유보'하고 중지시키고 한없는 의미가 거기서 나와서 머무르는 공허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엄밀한 의미에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언어", 즉 '비-언어'라고 할 수 있다.  푸코는 광기란 하나의 "작품의 부재"에 다름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푸코의 앞의 제사도 이러한 의미로  풀이되어야 할 것이다[푸코와 광기의 관계에 대해서는 Frédéric Gros, Foucault et la foile, Paris, PUF, <Philosophie>, 1997>.]

1. 루셀의 '방법'

2.1.1. 루셀은 사후 출판을 명한, '유서' 격인 저작 『나는 어떻게 어떤 종류의 책을 섰는가』에서 자신의 작품 중 몇 가지가 어떤 '방법'을 사용해 쓴 것임을 분명히 하고, 더욱이 방법의 내실을 소상히 밝혔다. 2.1.2.루셀은 우선 '거의 동일한 두 개의 단어를 고르고 [...] 그로부터 그것에 철자는 같으나 의미가 다른 몇 개의 단어를 덧붙이는" 것에서 시작된다[Russel, Comment jai écrit certains de mes livres, 1935, Paris. Jean-Jacques Pau vert, 1963, 11.] [...] "전자는 낡은 당구대의 쿠션에 적힌 초크의 문자"[Les lettres du blanc sur les bandes du vieux billard>라는 의미가 되며, 후자는 "늙은 강도 일당에게 보내는 백인의 편지"[Les lettres du blanc sur les bandes du vieux pillard>라는  의미가 된다. 주목할 만한 것은, 두 개의 문장에 이런 의미상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단순히 billard와 pillard라는 단어의 차이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 이외의 동일한 단어도 두 개의 글 사이에서 각각 다른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같은 철자로 된 말을 다른 의미로 취하는 것에서 영감을 얻은 방법은 루셀의 창작의 핵심이 된다. 2.1.3. 둘째, 루셀의 방법에는 또 다른 유형, 그가 '발견적 방법'이라고 자리매김한 것이 있다. 그것은 임의의 문장, 가사, 시를 거론하며 "그것을 찢어발겨서 그로부터 수수께끼 그림을 끄집어내듯이, 다양한 이미지를 끌어낸다"는 것이다[같은 책, 20쪽.] [...] 루셀의 방법이란 말의 작은 차이에 의해 언어 속에 열리는 공간을 어떤 말이나 글 속에 숨어 있는 다양한 차이, 그로부터 산출되는 풍부한 이미지에 메우려고 하는 것이다. [...] 거기서는 상상력이 현실의 세계를 참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능가하고 그것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에 이른다. 루셀은 피에르 자네(루셀의 신경증 진찰 담당의)가 증언하듯이, "작품은 현실적인 것은 아무것도, 즉 세계나 정신에 관한 어떤 관찰도 포함하고 있어서는 안 되며, 그저 완전히 상상적인 조합만을 푸함해야 한다"라는 문학적 신념을 품고 있었다."

2. 방법과 언어희소성/희박성

2.2.1. 푸코가 63년에 발표한 『레이몽 루셀』을 본격적으로 논한 선구적인 시도인 동시에, 이후 루셀에 관한 담론에도 큰 영향을 준 기념비적인 작업이다. 푸코는 훗날 이 책을 돌이켜보면서 이 책에 대한 애착을 이야기하면서도, 결국은 그것을 '개인적인 것', '자신의 작업 중에서도 예외적인 한 권'이라고 말한다. 이 저작이 그의 경력에서 어디까지나 일화적인 존재에 머문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푸코의 몇 가지 루셀론에서의 '방법'에 대한 주목을 자세히 보면, 그것은 말에 대한 시선이라는 점에서, 그가 『지식의 고고학』에서 전개했던 언어론과 명확하게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들뢰즈는 푸코의 루셀론이 『지식의 고고학』의 언표 이론의 선구가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들뢰즈, Pourparlers, 1990, Paris, Minut, 2003, 145.] 우선 『레이몽 루셀』에서 푸코는 루셀의 언어 공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언어는 사물의 미궁 속으로 무한하게 전진하지만, 그 본질적이고 놀라운 가난함이 언어에 변신의 힘을 부여함으로써 언어를 자기 자신으로 다시 데려간다."[RR, 124.] 여기서의 변신의 힘은 루셀의 방법의 원리, "같은 말로 다른 것을 말하고, 같은 말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것은 "언어의 본질적이고 놀라운 가난함"이다. "단어들의 동일성(지시되는 사물보다도 지시하는 말이 적다고 하는, 언어에 있어서 근본적인, 단순한 사실)은 [...] 단어 속에서, 세계의 형태들 속에서, 가장 동또어진 것들끼리의 예기치 못한 마주침의 장소를 드러내며, [...] 또한 하나의 단순한 핵에서 출발해서 스스로와 거리를 두면서, 끊임없이 다른 형상을 산출하는 언어의 이중화를 나타나낸다."[22~3.] 이러한 대목의 요점은 똑같은 단어로 다양한 사물을 지시할 수밖에 없는 언어의 근원적 '가난함'이 사물과 사물 사이에 풍부한 관계성을 산출하게 된다는 역설적 사실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2.2.2. 여기서 루셀의 방법의 요체로 간주되는 언어의 '가난함'은 푸코가  『지식의 고고학』의 '언표'énoncé의 세 가지 특징 중 하나로 들고 있는 '희소성/희박성'rareté이라는 요소와 유비적이다. 푸코는 이 책에서 '언표'를 "담론의 최소 단위"라고 규정한다[AS, 163.] 이 '언표'로부터 출발하는 담론 분석의 가능성을 살피고 있다. 기존의 담론 분석이 어떤 전체성을 전제하여 "유일하게 의미되는 것"에 대한 "의미하는 요소들의 과잉"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반면, 언표에서 출발하는 담론 분석은 "하나의 자연 언어 속에 언표될 수도 있을 것에 비해서, 또 언어학적 요소들의 무제한적인 조합에 비해서, 언표는 [..] 늘 수적으로 부족하다"라는 언표의 특징을 전제한다. 푸코는 이처럼 있을 수도 있는 가능적인 언표보다 실제로 출현한 언표가 적다는 것을 가리켜서 언표의 '희소성'/'희박성'이라고 부른다. 이 언표에 입각한 담론 분석은 "담론을,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하고 그것들을 생겨나게 하는 심급 속에서, 그것들을 말해지지 않은 것으로부터 분리하는 경계에 있어서 연구하는"[AS, 164] 것이다. 실제로 나타난, 즉 '실정적인' 것이 된 언표의 배후에는 아직 가능성에 머물러 있는 무수한 언표가, 이른바 "가능한 출현"émergence possible"을 밑도는 다른 언표들이 존재한다. 여기서 담론 분석의 목적은 이 희소한/희박한 "실정성"positivité으로 향하고, 어떤 언표가 차지하는 장의 특이성을 분명히 하고, 어떤 작용이 그런 배치를 가능하게 했는가를 묻는 데 있다. 이 실정성으로 향하는 담론 분석은 역설적으로, 그 밖의 다른 언표들을 지시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실정적인 것을 통해 그 이면으로, "가능한 출현을 밑도는 다른 언표들:로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실제로 눈에 보이게 된 희소한 언표와 그 밖의 다른 무수한 가능적인 언표들 사이의 상호작용의 양태를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누적 2.2.3. 말년에 푸코는 루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인터뷰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담론들에 의해, 실제로 발화된 언표들, 말해진 것들에 의해 직조되고 교착된[서로 뒤얽힌] 세계입니다."[Archéologie d'une passion>, no 343, 1984, 1421.] 그런데 이 '말해진 것'은 일단 내뱉어지면, 이후에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으며, "말해진 것으로서의 현실성"을 갖고서 세계 속에서 흔적으로서 계속 존재하며, 그 후에 말해질 수 있는 것의 결정에 관계할 것이다. 푸코는 루셀의 작품도 임의의 글자로부터 이미지를 끌어낸다는 방법에서 잘 나타나듯, '말해진 것'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음을 지적한다. "루셀의 게임은 그의 작품 몇 가지에 대해서 말하면, 이미 말해진 것과 마주칠 가능성만을 자신에게 주며, 거기에서 발견된 언어와 더불어서, 그에게 특유한 규칙을 따라 수많은 것을 구성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항상 이렇게 이미 말해진 것을 참조한다는 조건에서 구성하는 것이었습니다."[푸코, 같은 책, 같은 쪽.] 여기에서 서술된 '말해진 것'의 흔적성은 역시 『지식의 고고학』에서 지적되는 언표의 특징 중 하나에, 푸코가 '누적'cumul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에 부합할 것이다. 언표의 누계는, 그것이 다양한 지지체 덕분에 다양한 유형의 제도에 따라서 다양한 양태와 더불어 잔존한다는 사실에서 유래하고 이 잔존이 구성하는 기초 위에서 기억이나 추억 같은 것의 작동도 전개된다. 2.2.4. 중요한 것은 푸코가 "다양한 사물들은 이것들이 말해진 후에는, 더 이상 똑같은 존재 양식, 그것들을 에워싼 것과의 관계들의 똑같은 시스템, 똑같은 사용 도식, 똑같은 변형 가능성들을갖지 않는다"고 말하는 점이다[AS, 170.] 이러한 의미에서 누적되는 언표들은 서로 늘 변화의 가능성에 열려 있는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모든 언표는 선행하는 요소들의 하나의 장을 포함하고 이런 요소들과의 관계에 의해 자신을 위치시키지만, 그러나 언표는 새로운 관계들을 따라서 그것을 재조직할 수도 있고 재분배할 수도 있다."[AS, 171.] 외재성/외부성 2.2.5. 마지막으로 푸코는 이 루셀에게서의 언표의 누적에 관해, 다른 논고에서 "루셀에게는 [...] 우연하게 발견되는, 혹은 익명적으로 반복되는 담론의 선행성이 있다"[<Sept propos sur le septieme ange>, n 73, 1970, 888.]고 이야기 한다. 여기서 언급되는 담론의 익명성은 푸코가 제시하는 언표의 세 가지 특징 중 남은 하나인 언표의 '외재성'/'외부성'exériorité과 겹쳐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지식의 고고학』에서 푸코는 언표가 어떤 주체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익명의 영역'을 전제하며, 그 분석은 '코기토와 관계없이' 이루어지며, "실제로는 '우리는 말한다' 수준에 위치된다" 말한다[AS, 168.] 이처럼 외재적인 것으로서 존재하는 언표는 특정한 주체에 결정적으로 귀속된다기보다는 귀속의 장소를 다양한 것이 교대로 차지할 수 있는, 즉 "익명적으로 반복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루셀의 방법은 자신도 그런 익명성의 주체 중 하나라는 의식 위에 성립되는 것이다. 2.2.6.  언표와 외재성은 언표가 어떤 주체의 내면으로 환우너되는 것을 거부한다. 루셀의 방법에 입각해서 볼 경우 이것은 작품 제작에 있어서의 저자(그 '내발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의존의 감축이라는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즉, 거기에는 스스로 어떤 규칙을 정하고 그것에 철저히 복종함으로써 작품의 실현 과정에서의 자의적인 개입을 어느 정도까지 제한하고, 그것을 어떤 '논리'에 따르게 할 것이다. [...] 푸코는 『지식의 고고학』에서 이론화한 언표의 세 가지 특징인 '희소성', '누적', '외재성'을(적어도 그 이론화의 소재가 되는 것을) 루셀의 언어 표현, 방법 속에서 인식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언표 이론에 따르면, 담론이란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의 총체로 이루어져 있고, 또한 내뱉어짐으로써 잔존하는 담론은 익명적인 장소에서 서로 관계함으로써 늘 다른 것이 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3. 방법의 수수께끼. 비가시성의 가시성

2.3.1. 루셀의 방법은 그의 작품을 읽는 것만으로는 알아채기 어렵다. 그는 그것을 생전에는 결정적인 형태로 밝히지 않았다. 이 점에 대해서 푸코는 루셀의 『나는 어떻게 어느 종류의 책을 썼는가』가 루셀의 사후에 출판된 것의 의미에 주목한다. 이 책은 그의 방법을 공개하는 한편, 이 방법이 루셀 자신에 의해 밝혀질 때까지는 일반적으로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실에 의해서, 그의 작품군에서 '비밀'의 존재를 부각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루셀은 독자들에게 자신들이 알아채지 못한 비밀을 알게끔 강요하는 것이며, 말하자면 그 포로가 되게끔 강요하는 것이다. 그것이 보다 강하게 의식시키는 것은 "비밀에 의해 김단당하기보다는 비밀이 있다는 의식에 의해 기만당한다"는 위험이다[RR, 10.] 푸코는 루셀의 작품에서의 방법의 양태를, "비가시적으로 가시적인, 지각 가능하지만 독해 불가능한 이미지"[RR. 75.]라고 부르고, 거기서 "비가시적인 가시성"invisible visibilité라고 부른다. 푸코는 <바깥의 사유>에서, "그러므로 픽션의 역할은 비가시적인 것을 보이게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가시적인 것의 비가시성이  얼마나 비가시적인가를 보이게 하는 데 있다."[푸코, 같은 글, 552.] 이러한 의미에서 루셀의 작품은 바로 '픽션'이라고 할 수 있다[푸코는 '철학자의 역할'에 관해, "숨겨진 것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La philosophie analytique de la politique>, 232, 1978, 540.). 즉 그것은 "너무 근접해 있고 우리 자신과 너무 친밀한 형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는 그런 것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같은 글, 540~1.)]. 2.3.2. 그런데 독자가 루셀의 방법을 알았다고 하여도("거의 똑같은 두 개의 문장을 작품의 서두와 말미에 놓아둔다"는 것 외에는) 그의 작품을 읽고 어디에서 그것이 적용되고 있는가를 지적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다른 한편, 이 책의 존재는 '자명한 것'이라고 제시된 방법이 간과되어 왔다는 사실과 더불어 "비밀을 알게끔 강제된다" 그 결과 독자는 이러한 작품과 대결할 때에 도처에서 비밀이 가동되고 있다는 '불안한 의'식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게 된다. 푸코가 적절하게 표현했등시 "이 가시적인 우발성/사건성événtualité에 있어서 비밀은 정점에 도달하는" 것이다[Dire et voir chez Raymond Russel>, n0 10, 1962, 239.] 2.3.3.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불안한 의식'이 루셀이 방법이라는 "형태 발생의 열쇠"를 주지 않았다는 것보다는 오히려 읽을 수 있는 문장 하나하나가 거의 무한한 문구를 숨기고 있다는 데서 유래한다는 점이다. 출발점이 되는 말의 수에 비해서 그로부터 도달하는 말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최종 순간에 이루어진 계시에 의해 각각의 문구들 아래에서 형태학적 사건들의 우발적 장들이 넓혀지고 있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형태학적 사건들은 모두 일어날 수 있지만 어떤 것이 일어날 것이지는 지정할 수는 없다."[같은 글, 같은 쪽.] 루셀의 수수깨끼는 그의 언어의 요소의 하나하나가 무수한 불확정적 배치에 의해 포착되고 있다는 것에서, 이 형태론적 불확정성에 서 유래한다. 루셀의 언어 전체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음에도 "그 모든 가능성의, 그 모든 형태의 숨겨진 총체"[같은 글, 242.]가 되는 것이다. 브리세에 의한 '언어의 기원'의 탐구 2.3.4. 그런데 푸코가 이 "언표의 익명의 웅성거림"에 기초한 문학을 오직 루셀 한 명에게만 국한해서 찾아낸다고는 할 수 없다. 푸코는 루셀의 선구자라고도 해야 할 존재로, 루셀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저자인(루셀과 마찬가지로, 동시대인들에게는 '광기의 인간'이라고만 그 이름이 알려진) 장 피에르 브리세라고 인식한다. 브리세는 '언어들의 기원에 관한 탐구'라며 제시한 무수한 저작에서 말장난의 무한 연쇄와 이로부터 발생하는 관념 연합을 통해서 '언어의 기원'을 개시하려고 한다. 그에게서 언어들의 기원은 "세계의 모든 언어들에 다양한 흔적들이라는 형태로 머물러 있는, 사물 자체에 연결된 소수의 단순 요소"[<Sept propos sur le septieme ange>, n 73, 1970, 882.]가 아니다. 그에게서는 현행 언어들의 다양한 요소들에 대응하는 '시원 언어'나 현행 언어들이 그로부터 파생되는 '언어의 고대 형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게서 언어의 원시성primitivité은 오히려 "언어의 유동적이고 가동적이고 무한하게 침투 가능한 상태이며, 언어 안을 모든 방향에서 순환할 수 있는 가능성이며, 모든 변형, 반전, 마름질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장"이다[같은 글, 882.] 이렇게 기원에 있어서 브리세가 발견하는 것은 오늘날 이야기되고 있는 것 그대로의 프랑스어, 즉 일련의 말장난과 관념 연합에 의해서 '유동화'된 프랑스어이다. 2.3.5. 시원적 언어가 전통적으로 하나의 가난한 코드라고 여겨졌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브리세에게 그것은 제한이 없는 담론이라고 상정된다. 그의 '분석'은 말을 무제한적 요소의 조합으로 분해하는 것이며, 그는 이러한 조합들 하나하나를 말의 '고대적 상태'라고 생각한다. "현행적인 어떤 단위에 대해서, 그것으로 결정화되기에 이른 선행적 상태들이 증식하는 것을 보는 것"이 거기서 문제가 된다[Ibid, 882.] 브리세는 '언어들의 기원에 관한 탐구'란 언어를 압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 자체에 의해 분해하고 다수화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에게 언어의 시원적 상태는 말이라는 형태가 아니라 항상 언표(즉 하나의 글 또는 글의 연쇄)라는 형태로 발견된다. 그에게 언어의 기원에서 발견되는 것은 다양한 언표로 이루어진 '무제한의 덩어리'이며, 다양한 '언급된 것'으로 이루어진 '흐름'이다[Ibid. 885.] 따라서 그에게 언어의 기원의 탐구란 필경, 이러한 '언표의 제한이 없는 다수성'의, "'언급된 것'의 외재성"의 탐구에 다름없다는 것이다. 2.3.6. 이상 루셀을 중심으로 한 '광기'의 언어에 대해서 『지식의 고고학』의 언표 이론을 실마리로 해서 살펴봤다. 『지식의 고고학』 자체는 담론에 대한 논의로서 구성된 것이지만, 거기에서 제시된 언표라는 개념과 그 특징으로 앞 장에서 추적했던 푸코에 의한 예술론, 이른바 '바깥의 예술론'의 본질적인 부분을 간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서 푸코가 중시했던 것은 재현이라는 긍정적인 것을 통해 재현의 외부에 호소하는 것이며, 또한 하나의 익명적인 문서고로부터 출발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푸코가 60년대에 저술한 수많은 예술론은 동시대의 그의 사고에서 분리된 단순한 '비평'이 아닌 그것과 비밀스럽게 연결된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리고 거거에 머물지 않고, 이 시대의 푸코는 이들 예술 속에 하나의 변혁의 힘을 인정했다. 즉 사회의 바깥에서부터 우리의 진리를 밝혀냄으로써, 또는 사회에 대한 '위반'을 행함으로써 어떤 변화를 초래하는 것으로서 파악됐던 것이다.

4. 언어에서 실천으로 광기의 언어

2.4.1. 푸코는 16세기 및 17세기 초반의 연극에서 광인이 "진리를 말한다"는 역할을 담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음을 언급한다. 광인은 '진리의 보유자'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유대-기독교의 전통에서의 예언자가 자신이 진리를 말하고 있음을 알고서 진리를 말하는 자인 반면에, 광인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진리를 말하는 소박한 예언자로서 재현된다. "진리는 광인을 통해 비쳐 보입니다만, 광인은 그로서는 진리를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진리의 말들은 광인 속에서 전개됩니다만, 광인은 그 말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서 그렇게 합니다."[Folie, littérature, société>, no 82, 1970, 979.] 자신이 진리를 말하고 있음을 모른 채 진리를 이야기하는 광인의 말은 진리에 대한 의지를 갖지 못하고 자신 속에서 진리를 소유하고 있지 않은 진리의 담론이다. 푸코에 따르면 이 진리와 광기의 상호 귀속성, 17세기 초까지는 인정받은 광기와 진리의 친밀성은 그 후 1세기 전반기부터 2세기에 걸쳐서 부정되고 은폐되었다고 한다. 이 연결이 재차 문제로 간주되는 것이 19세기이다. 이 시대에는 한편으로 문학에 의해, 다른 한편으로 정신분석에 의해 광기에 대한 물음이 제기된 것은 일종의 진리라는 것, 광인의 몸짓과 행동을 통해 나타나는 것은 진리에 다름없는 무엇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던 것이다[Ibid, 980.] 프로이트가 환자에게 요구한 것은 환자를 통해 진리(환자가 스스로 지배하지 않은 진리)를 나타나게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고, 말라르메 이후의 문장도 '이중 언어'에 의해서 광기의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2.4.2. 19세기 이후 에크리튀르는 그때까지와 마찬가지로, 어떤 사회 내부에서의 유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되며 일체의 소비 및 유용성에서 독립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푸코는 이러한 "에크리튀르의 수직적이고 거의 전달 불가능한 활동"과 광기 사이의 상동성을 지적한다. 광기도 결국에는 "수직으로 세워져 있는 언어, 더 이상 전달 가능한 말이 아닌 언어, 교환화폐의 가치를 모조리 잃어버린 언어"이기 때문이다[Ibid, 982.] 이러한 비유통적인 에크리튀르, 수직으로 우뚝 솟은 에크리튀르를 광기의 등가물로 삼은 푸코는 "필자가 쓰는 순간에 그가 이야기하는 것은, 그가 글쓰기라는 행위 자체에 의해서 산출하는 것은, 틀림없이 광기 이외의 다른 그 무엇도 아니다"라고 말한다[Ibid, 982.] 푸코는 "글을 쓰는 주체가 광기에 의해 사로잡히게 될 위험"이야말로 에크리튀르라는 행위에 특징적인 것이며, 또한 여기에서 우리는 "에크리튀르의 체제 전복성"이라는 테마와 마주치게 된다고 한다. 2.4.3. 다른 한편, 푸코는 정신분석이 다루는 "현실의 광기"와 문학을 구별할 필요성도 역설한다. 현실의 광기란 사회의 외부로의 배제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다. 광인이란 "존재 자체에 의해 항상적으로 위반되는 것"이며, "항상 '바깥'에 위치지어지는 것"이다[Ibid, 987.] 이에 반해 문학은 항상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 시스템의 내부에 있을 수도 있다고 한다. 17세기에는 규범적인것으로서의 사회적 기능에 속했지만, 19세기 이후에는 그 외부로 이행하게 되었다. 이런 '바깥'으로 이행한 문학이야말로, 60년대의 푸코가 주목하고 이것의 위반적힘을 지치지 않고 이야기했던 "수직적이고 비유통적인 에크리튀르"이다. 감옥을 둘러싼 실천으로 2.4.4. 푸코는 70년대에 한 어떤 대담에서 이 "문학의 위반적 힘"의 쇠토라고 불러야 할 사태를 언급한다. 즉 "오늘날 문학은 일종의 타락에 의해, 또는 부르주아지가 소유한 동화라는 강력한 힘에 의해 그 규범적인 사회 기능을 회복한 것 같다."고 말한다[Ibid.] 포코는 여기서 "에크리튀르의 [체제] 전복적인 기능은 아직 존속하는가"라고 묻는다[Ibid, 983.] 이 물음은 분명히 60년대 후반의 세계 정치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이런 시대 상황을 겪으면서 푸코는 여기서, 그 자신도 또한, "사회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쓴다는 행위만으로 충분한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이제는 진정으로 '혁명적'인 행동으로 옮겨가야 할 때가 온 게 아닌가?"라는 질문에 시달리게 됐다고 고백하였다. 부르주아지가, 자본주의 사회가, 쓴다는 행위가 한때 가졌던 혁명적인 힘을 완전히 빼앗아가고, 이것은 이제 부르주아지의 억압적인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 말고는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게 아닌가, 따라서 이제 쓴다는 것을 중단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것이다. 이 대담을 한 70년대 이후, 60년대에는 지속적으로 발표했던 문학론을, 푸코가 거의 쓰지 않게 됐던 것은, 아마도 여기서 드러난 고뇌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66년~8년까지, 파견됐던 튀니지에서 학생운동의 고조를 보면서 그들에게 '구체적인 원조'를 준 푸코였지만,  71년에 감옥 상황을 조사할 목적으로 "감옥정보그룹"을 결성한 이후부터는, 감옥을 둘러싼 운동을 중심으로 각종 정치 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가하게 된다. 푸코는 감옥이라는 테마에 관해 71년에 다음과 같이 상징적인 말을 남겼다. "이 새로운 몰입은 내게 문학적인 사항을 접했을 때 겪게 됐던 권태감에 대한 진정한 출구로서 제공됐다."[Je perçois l'intolérable>, no 94, 1971, 1071.]

5. '신체'라는 관건

2.5.1. 푸코가 '감옥'이라는 '새로운 관심사'를 통해 발견하게된 테마의 핵심은 푸코 내부에서 새롭게 생겨나고 있던 권력 개념과, 그것이 행사되는 대상으로 이루어진 짝이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 에서 신체에 직접 작용하는 미시권력으로서의 '규율' 개념을 제시한다. 고전주의 시대를 통해 신체는 권력의 대상 및 표적으로서 발견됐다[SP, 160.] 신체는 조직과 가공 가능한 어떤 '소재' 같은 것으로서 발견된다. '규율'은 신체에 대해 세부적으로, 즉 그 운동이나 행태나 태도 같은 역학 수준에서 행사되는 권력이다. 즉 그것은 "활동적인 신체에 대한 무한소의 권력"이다. 거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신체의 기호 요소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운동의 에코노미이며, 그 내적인 조직이다.  그것은 "기호보다는 오히려 힘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Ibid] 더 나아가 '규율'은 신체의 활동의 결과보다는 활동의 과정에 항상적으로 작동하는 권력이다. 푸코는 '규율'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신체의 작동에 대한 세세한 통제[관리]를 가능하게 하고, 신체의 힘의 불변적인 예소고하를 보증하고 신체에 유순함-유용성의 관계를 부과하는 방법"이라고 한다[Ibid.] 2.5.2. 푸코가 이 권력의 큰 특징으로 꼽는 것은, 단순한 억압으로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닌 신체 능력의 확대(그것이 '유용성'의 증대를 가능하게 하는 한에서) 목표로 한다는 점이다. [...] 즉 이들 구체적인 개개의 기술이야말로 신체의 미세한 정치적 포위의 양상을, 즉 권력의 '미시물리학'을 규정하는 것이다. 푸코는 "규율이란 세부에 대한 해부정치학이다"고 말한다[Ibid. 163.] 이후 푸코의 사유에 이제 '신체'와 '생물로서의 인간'이라는 테마가 큰 위치를 차지한다.

 

제2부 주체화의 구조

3장 주체와 권력: '통치'라는 테크네

권력과 신체(또는 인간의 생물학적 측면)라는 이러한 논점은 후기 푸코의 주요 관심사였던 '생명정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3장에서는 이 토포스가 동시기 푸코의 권력론 전체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자리매김되었는가, 그리고 이것이 말년의 푸코의 '자기 배려' 같은 테마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등을 검토하고 싶다. 푸코는 만년의 어떤 논문에서 그때까지 자신의 연구 목적인 권력 현상들의 분석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문화에서 인간 존재가 주체화될 때의 상이한 양태들의 역사를 산출하는 것[Le sujet et le pouvoir>, no 306. 1982, 1042.]에 있었다고 회고한다. [...] 실제로 푸코는 동시기에 한 어떤 강연에서 "이제부터 제가 하는 작업은 [...] '개체화하는 권력'이라는 문제와 관련된 정체성의 문제일 것입니다."[<<Omnes et singulatum>: vers une critique de la rasion politique>, no, 291, 1981, 955.] 만년의 푸코는 주체의 대상화라는 관점에서 권력에 접근함으로써, 법과 제도 같은 모델에 기반하지 않고 권력을 생각하려 했다. 이 미시 관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제도나 계급 같은 것보다는 권력의 기술이며 형태이다. 푸코는 현대의 중요한 현상 중 하나로, 그때까지 주변적으로 여겨졌던 '일상적인 것'이 권력에 있어서 본질적인 문제로 부생했다는 것을 꼽았다[<La philosophie  analytique de la politique>, no 232, 1978, 543.] "이 권력 형태는 일상적 삶에 대해 즉각적으로 행사된다. 이것은 개인들을 범주들로 분류하고, 개인들의 고유한 개체성에 의해 가리키고, 정체성에 묶어 매고, 진리의 법을 부과한다."[Le sujet et le pouvoir>, n0, 306, 1982, 1046.] 이러한 모습으로, 어떤 권력 기술에 의해 개인들이 주체로 변형되는 과정을 가리켜 푸코는(타자에의, 그리고 자기의 정체성에의) '예속화'assujetissement라고 부른다. 푸코가 말년에 씨름했던 '자기 배려', 즉 '자기에 대한 자기의 조작[작동걸기]이라는 테마는 이처럼 우리의 일상적 삶, 신체에 중심을 둔 삶에 직접 행사되는 권력에 대한 저항으로서 정교화된 것이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자기에 의한 자기에의 작동[행사]'을 논하기 위한 전 단계로, 논의의 배경이 되는 푸코의 권력관, 즉 '푸코에게서의 권력'을 명확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다. 푸코의 권력관, 즉 "개체의 구체적인 존재방식을 문제 삼는 권력"이라는 관념은 말년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70년대 후반부터 정교화된 권력관의 연장선상에 위치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 전개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사목권력', '통치', '인도' 등 푸코가 이 시기부터 사용하게된 특유의 어법이며, 기독교 및 근대국가에서의 통치기법에 관한 푸코의 일관된 시각이다.

1. 유대-기독교에서의 사목권력

3.1.1. 우선 푸코에 의한 '권력의 계보학'을 재추적하는 것에서 시작하고자 한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 즉각적으로 행사되고 개체화하는 권력 형태, 현대에도 지배적인 이 권력 형태의 원형으로 푸코가 상정하는 것은 바로 '사목권력'pouvoir pastroral이라는 것이다. 양치기가 양의 무리에게 미치는 권력이라는, 종교적 함의가 강한 이 권력은 주로 유대교의 역사와 더불어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모든 상황에서 인간을 인도하고, 더욱이 내세에서의 혼의 구원을 위해 현세에서의 행동을 규제하는 권력이라고 규정된다[<La philosophie  analytique de la politique>, 『말들과 글들』 no 232, 1978, 548.]  그것은 집단 전체에 행사되는 권력이면서도, 그 집단의 개인들, 이른바 무리의 한 마리 한 마리의 양에 책임을 가짐으로서 전체 집단의 구제를 배려하는 권력이다[Ibid, 548~9. 본문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이것은 사목권력pouvoir pastroral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어원학적으로, 그리고 그[들의] 문자 그대로au pied même de la lettre의 단어들을 취한다면/이해한다면, 사목권력은 자신의 양무리들/양떼들에 대해 목자가 행사하는 권력이다. [...] 사목권력은 어떤 종교 권력 또는 정치 권력의 유형처럼 집단 전체에 행사되는 권력이면서도, ] 3.1.2. 개별과 전체를 동시에 배려하는 권력이라는, 근대적인 국가이성으로 계승된 권력의 존재 방식은 초기 기독교에서 그 전형이 드러나는 이 사목권력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그 본질은 '구제'라는 명확한 목표를 갖고, 자신이 관련된 개인들에게 헌신적이고, 그들과 평생 동안 공존하고, 또한 그들의 진리의 생산과 결부된다는 점에 있다[Le sujet et le pouvoir>, no 306. 1982, 1048.] "개인들에게서 향하면서 개인들을 연속적이고 항구적인 방식으로 지도하도록 정해진 권력의 기술들"[<Omnes et singulatum>, 955.] 푸코에 따르면, 이러한 '신=양치기'/'인민=양의 무리'라는 은유와 결부된 사목 권력의 테마는 유대교의 고대 문화에서 볼 수 있지만,그것이 커다른 중요성을 획득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보다 나중의 기독교에서이다. 3.1.2. 기독교는 사목권력에 몇 가지 중요한 변화를 가하면서 이를 계승했다. 1) 기독교에서 목자와 무리의 각 구성원을 연결하는 정신적 유대는 더 강해지고 더 복잡해진다. 그들의 자질구레한 일상적 행동에도 관련되게 된다. 2) 기독교는 목자와 양 사이의 관계를 개별적이고 전면적인 의존관계로 파악한다. 종속은 덕으로 여겨지지만, 그것은 곧 거기서의 종속이 어떤 목적에 이르기 위한 잠정 수단이라기보다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는 것이다. 3) 양심의 검사[점검exam]와 지도direction이라는 두 개의 도구와 묶일 것이다. 양심의 검사란 지도자에게 혼의 심층을 노출시키는 것을, 양심의 지도란 지도자와의 항상적인 연대를 각각 의미한다. 기독교 사목권력은 이 두 개의 실천이 밀접하게 연결된 것이다. 4) 이런 양심의 검사나 지도, 종속 같은 기독교의 기술은 모두 어떤 목적을 위해 행해진 것이다. 현세에서의 자기의 '억제'motifications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일상에서의 죽음"으로서의 자기의 포기이며, 일종의 예속화다. 3.1.3. 개인들의 개별적인 삶에 대해 항상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 기독교에서 목자와 무리 사이의 개별화된 복종관계를 확립하고, 더 미시적이고 지배적인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됐다. 푸코는 사목권력을 생명정치에서의 권력, 즉 우리의 삶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행사되고, 그것을 종속화하려고 하는 미시 권력의 원형으로서 정립되게 된다.

2. 근대국가에서의 권력 비종교화된 사목권력

3.2.1. 푸코에 따르면 18세기 이후의 자본주의적 공업화 사회와 그것에 수반되고 그것을 떠받친 국가라는 근대적인 권력 형태는, 기독교 사목 권력이 이용한 개인화의 절차나 메커니즘을 필요로 했다. 이 사목권력의 기술은 국가 장치라는 비종교적인 틀로 이식되고 번식되며 보급되었다는 것이다[[<La philosophie  analytique de la politique>, 『말들과 글들』 no 232, 1978, 550.]  푸코에 따르면 국가의 다양한 기술은 개인이 어떻게 해도 그 권력, 감시, 관리, 교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도록 배치되고 발전되어 온 것이며, 바로 이것이야말로 국가가 개인들에게 크게 주목했다는 것의 증거에 다름없다는 것이다. 개인을 포위하고, 행동을 파악하고, 배치를 생각하기 위해 막사, 학교, 작업장, 감옥 같은 기구가 태어났고 개인을 알고 분류 하기 위해 인문과학이 태어났다. 통계의 중요성은 개인들의 행동의 집합을 양적으로 측정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 있다. 다양한 사회적 원조나 보험 메터니즘에서도 이런 개체화의 효과를 찾아볼 수 있다[Ibid, 550~1.] 3.2.2.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들의 존재나 행동이, 즉 개개인의 삶이 권력 행사에 필요 불가결한 요소가 되고 있다. 개인이 권력의 본질적인 관건이게 된 것이다. 종교적 형태에서 벗어난 사목권력은 국가를 새로운 지지체로 삼아서 연명하게 된다. 근대에 있어서는 국가이성에 근거한 '내치'police로, 현대에서는 '국가-섭리'로, 즉 복지국가로 계승된다. 푸코는 '국가'라는 말로 문제를 제기할 때 그것이 군주나 군주권, 혹은 법이라는 말에 너무도 바삭 다가서 버리는 위험이 있음을 강조한다. 권력의 현상들을 국가 장치와 관련시켜 기술하는 것은, 자주 그것을 억압적인 기능과 관련시켜 설명할 위험이 있다. 그는 권력관계의 분석이 국가라는 틀을 넘어선 곳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1) 국가는 다양한 장치로서 나타나는 편재하는 것이지만, 현실의 권력관계의 전체 영역을 포괄하기에는 너무 멀다. 2) 국가는 그것에 선행하여 존재하는 '권력관계들'이라는 기반 위에서 비로소 기능한다. 국가란 "신체, 성, 가족, 태도, 지식, 기술: 같은 것을 통해 전해지는 일련의 권력 네트워크의 상부구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Entretien ave Foucault>, no, 192, 1977, 151.] 푸코는 국가를 제도적인 측면이라기보다는 구체적인 권력 행사나 그 기술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하고자 한다. 내치 3.2.3. 여기서 '내치'란 "[국가 통치의 원리인] 국가이성을 기능시키기 위해 배치된 장치'", "테크놀로지의 총체"[STP(『안전, 영토, 인구』, 284] 17세기 이래, "좋은 국가질서를 유지하면서 국가를 증대시킬 수 있는 수단들의 총체"[STP, 321.]가 '내치'라고 부릴게 된다. 이 "국가에 고유한 통치 기술"은 국가를 이끄는 행정조직으로서 나타나며, 그 활동은 인간이 관련된 모든 상황, 인간이 행하는 모든 사항에까지 미치게 된다. 거기서 인간은 항상 상호 관계성이라는 관점에서 파악되고, 그 삶의 방식에 대해 관심이 쏟아지게 된다. 내치의 개입 대상은 법적 인격이라기보다는 생물로서의 인간의 생명 자체이다. 내치는 "고유한 합리성을 지닌 원리들의 이름  아래서, 또한 그러한 원리들에 따라서 행사되고 작용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미리 주어져 있는 사법 규칙들을 본보기로 삼거나 모범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는 의미에서 "항구적인 쿠데타"이다[STP, 347] 그것은 "사람들의 생명에 작은 플러스 알파를 부여하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의 힘을 약간 강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의사소통'을 관리함"으로써, 즉 "개인들이 공동으로 하는 활동(작업, 생산, 교환, 서비스)을 관리함"으로 이뤄진다[."[<<Omnes et singulatum>: vers une critique de la rasion politique>, no, 291, 1981, 975.]  요컨대 근대적인 통치 기법 또는 국가적 합리성이 목표로 해야 할 것은 개인들의 생명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를 발전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의 힘을 강하게 하는 것이다[Ibid., 978.] 내치의 대상으로서의 인구 3.2.4. 국가를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인간 생명의 집합으로 파악하는 이러한 발상은 18세기에 중요성을 더하게 된 어떤 개념에 대응하는데 바로 그것이 '인구'라는 개념이다. 18세기 내내 그리고 특히 독일에서는 이 '인구'(어떤 일정 지역에 거주하는, 살아 있는 개인들로 이루어진 집단)를 내치의 대상으로 간주했다[Ibid, 978.] 내치학이란 '통치의 기법'인 동시에 "어떤 영토에서 살고 있는 인구를 통계 등을 사용해서 분석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고 여겨지게 됐다[Ibid.] 내치의 배려 대상은 "종교, 도덕, 건강, 물자 공급, 도로, 토목, 공공건축, 치안, 자유학예, 상업, 제조업, 하인이나 육체노동자, 빈민" 등이다[Ibid 975~6.] 사회의 모든 국면에서, 또한 복수의 단계에서(생명의 '보호'나 실존의 '유지'라는 단계부터, 생명의 '쾌적함'이나 '즐거움' 같은 단계까지) 사람들을 행복으로 안내하는 것이, 요컨대 사람들이 그저 "살아남는"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보다 잘 살아가는" 것은 돕는 것이 내치의 역할이 된 것인데, 이런 정치권력의 역할은 복지국가로 계승될 것이다. 유의해야 할 것은 생명에 대한 배려가 최종적으로 국가의 힘의 증대를 목적으로 했다는 점이다. 개인들의 생명에 대한 배려는, 그것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이 최종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또한 사람들의 생명에 대한 극진한 배려가 불가피하게 주체의 예속화에 이르게 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3.2.5. 사목권력과 근대적 국가권력을 비교하면, 양자에서의 권력의 형태나 목적의 동형성이 부각된다. 양자는 둘 다, 생물로서의 인간의 생명이나 활동을 배려하는 동시에, 그 관리와 최종적인 예속화를 꾀하는 권력이었다. 이로부터는 서양에서의 정치 합리성이 우선 사목권력이라는 이념에, 이어서 국가이성이라는 이념에 뿌리를 내리게 됐던 경위를 엿볼 수 있다. 사목권련에서 국가로 이행하는 가운데 일어난 것은 특정 종교적 가치관과 결부됐던 권력이 사회 전체로 확산되고 다양한 국면에서 인간의 생명에, 행동에 개입되게 된다는 사태이다. 이로부터는 가족, 의료, 정신의학, 교육, 고용 등의 형태로 다양한 권력이 전개될 것이다[Le sujet et le pouvoir>, no 306. 1982, 1050.] 이러한 권력들은 제도로서보다는 일상적인 삶에 직접 행사되고 개체화하는 기술로서 나타난다. 거기서 일어나는 것은 권력이 개인들의 신체, 몸짓, 태도, 일상 행동에 침투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권력의 '육체화'이다[<Entretien avec Foucault>, n0. 192, 1977, 153.] 거기서 권력은 주체에 의한 재현이라는 중계를 거치지 않고, 신체의 두께 자체 속으로 물질적으로 침투하게 된다. 의식으로의 내면화를 거치지 않고 신체로 침투하는 권력, 즉 '생명권력'이다[Les rapports de pouvoir assent a l'interieur des corps>, n0, 197, 1977, 231.]

3. 생명권력과 생명정치 권력의 새로운 정의

3.3.1. 앞 절의 끝부분에서 언급한 '생명권력'은 푸코가 『감시와 처벌』 에서 논한 규율권력과 다름없다. 푸코는 『앎의 의지』에서 '규율'의 테크놀로지로서의 '해부-정치'와 쌍을 이루는 것이자 '조절'의 테크놀로지로서의 '생명정치'를 논한다. 푸코는 이 책에서 권력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제출한다. 권력이란 기존에 생각되었듯이 단순한 제도도 구조도 아니며 무엇보다 "힘 관계들의 다양성"이라고 한다[VS. 121.] [...] 푸코는 권력의 파악 방식에 있어서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권력이 법과 금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부정적인' 파악방식으로부터, 일종의 새안성을 지닌 하나의 테크놀로지라는 '긍정적인' 파악 방식으로의 변경이다[ Les mailles du pouvoir>, No. 297, 1981, 1002; 1006; 1008.] 이러한 방법론적 원리에서 출발해서 푸코는 서양에서의 권력 테크놀로지의 계보를 그려내고자 한다. 3.3.2. 푸코에 따르면, 이 관점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던 것은 17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서이다. 그 이전의 군주제에서 기능했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권력 메커니즘이 등장했던 시기였다. "죽게 만드느냐 살게 내버려두느냐는 고대의 권리를 살게 만들 것이냐 죽음 속으로 폐기할 것이냐는 권력이 대신했다"[VS. 181.]는 것이다. 군주 권력을 특징짓는 권력이었던 죽음에 대한 권리[생사여탈권]는 생명을 관리하는 권력으로 이행하고, 죽음에 대한 권력은 이제 그 이면 또는 보완물로서만 존재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법적 존재로서의 생명이 아니라 생물학적 차원에서의 생명이라는 것이다. 규율과 조절 3.3.3. 푸코는 이 새로운 권력 테크놀로지는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됐다고 말한다. 그것들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하나의 발전의 두 가지 극이라고도 해야 할 것이다. '규율'의 테크놀로지로서의 해부-정치와 '조절'의 테크놀로지로서의 생명-정치이다(푸코의 1976년 3월 17일 강의 참조. IDLS. 213.] [...] 조절은 개인이 아니라 '인구'라는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테크놀로지이다. '인구'란 단순히 다수의 인간으로 이루어진 집단일 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과정이나 법칙에 의해 관통되고 조작되고 통제되는 생물들"을 가리킨다[Les mailles du pouvoir>, No. 297, 1981, 1012.] 인구를 구성하는 것은 군주의 대칭 개념으로서의 '신민' 같은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일종의 생물학적 실체로서의 개인이다. 이른바 "생물의 메커니즘에 관통되고 다양한 생물학적 과정의 지지체 역할을 맡는 신체"를 지닌 개인이다[VS, 183.] 푸코는 '조절'의 기술을, '인구'라는 생명을 조절한다는 의미에서 '생명-정치'고 부른다. 주거, 공중위생, 출생률과 사망률의 비율 변화 같은 사항이며, 또 이런 문제들에 대응한 인구의 조절이다[마이클 하트와 네그리는 '생명권력'과 '생명정치'에 관해 전자를 "생명에 대해 행사되는 권력", 후자를 "저항하고, 주체성의 대안적인 생산을 결정하는 생명의 권력"이라고 각각 정의하고, 이로부터 '생명정치'를 '생명권력'에 대한 저항력이라고 보는 독자적인 용어법을 제시한다(네그리/하트, 『공통체』, 2014.]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약간 무리가 있다. "주체성의 대안적인 생산을 결정하는 생명의 권력"은 생명정치라기보다는 '실존의 미학'이라는 개념이다.] 3.3.4. 푸코가 "생명은 18세기 이후 권력의 대상이 됐다"고 말했을 때, 염두에 둔 것은 이런 과정 전체이다. 18세기 이후에 권력의 대상은 법적 주체에서 신체와 생명(인구)으로 옮겨겼다. 거기서 권력은 신체나 생명 같은 '실재의 사물'을 개별적이고 전체적으로 다루게 되며, '유물론적'이 됐다. 신체를 대상으로 하는 '규율' 테크놀로지와 생명을 대상으로 하는 '조절' 테크놀로지라는 새로운 권력의 두 가지 측면은 개별적인 것과 전체적인 것에 동시에 관련된다고 하는, 사목권력 이후의 정치적 합리성의 특징을 이어받은 것이다[성이란 이 두 가지 측면의 결절점에 위치되는 것이다[Les mailles du pouvoir>, No. 297, 1981, 1013.] 푸코는 이 '생물로서의 인간'이 정치적 전략의 관건이 되기 시작한 시기를 가리켜서 '생물학적 근대성의 문턱'이라고 부른다. "근대적 인간은 정치에 있어서 살아 있는 [생명을 지닌] 존재로서의 자신의 생명이 문제가 되는 동물인 것이다."[VS. 188.] 3.3.5. 이러한 변화의 결과로서 법 시스템의 퇴행과 규범 작용의 전경화가 진행된다. 그 최종적인 해결이 죽음에 의해 담지되는 '법'의 심급으로부터, 생명의 지속적인 조절과 교정을 취지로 하는 '규범'의 심급으로의 이행이다. '규율화 사회'란 "생명에 중심을 둔 권력 테크놀로지의 역사적 귀결"인 것이다[VS. 190.] 이런 권력에 대한 저항은 도대체 무엇에 근거하게 될까? 그것은 다름 아닌 권력 자체가 자본으로 삼는 것, 즉 생명이며 살아 있는 것으로서의 인간이다. "정치적 대상으로서의 생명은 이른바 말 그대로 취해지며, 이것을 통제하려고 기도한 체계에 역이용 당했다. 이때 정치적 투쟁의 관건이 된 것은 권리보다는 생명인 경우가 훨씬 더 많으며, 그것은 이 투쟁이 권리의 확립을 통해  정식화된다고 해도 그렇다."[VS. 191.]

4. 품행의 인도로서의 '통치'

3.4.1. 푸코가 권력 분석에서 중시하는 물음은 그것이 '어떻게' 행사되는가이다. 그것은 그가 권력 분석에서 어떤 하나의 권력이 아니라 "권력의 다양한 관계[권력관계들]"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다름없다. [...] 푸코에 따르면 권력의 익명화는 그 항상적인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권력에 대한 저항점의 편재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푸코는 권력 장치의 표적이 '평민'이라고 강주한다. 평민이란 어떤 사회학적 실재 같은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체, 계급, 집단, 개인들 속에 있고, "어떤 방식으로 권력관계들을 피해나가는 그 무엇"이다. 무엇인가의 '소재'가 아니라 '원심운동'이며, '반대방향의 에너지'이며, '틈새를 빠져나가는 것'이다[Pouvoir et strategies>, NO, 218, 1977, 421.] 3.4.2. 푸코에 따르면, 권력의 행사란 단순한 개인들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 대한 '행위의 양태'라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권력이란 "행위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Le sujet et le pouvoir>, no 306. 1982, 1055.]이다. 여기서 푸코는 권력관계들의 특성을 파악하는 가장 좋은 수단으로 '인도'Conduite라는 말을 꼽고, 이 말이 지닌 양의적인 의미에 주의하라고 촉구한다. 즉 그것은 자신의 행동[품행]을 의미하는 동시에, 타자를 인도한다는 행위도 의미하는 말이다. 권력의 행사란 "'품행을 인도하고'conduite des conduites, 그 개연성을 조절하는 것"[Ibid. 1056.]에 다름없다. 권력관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적대자들 사이의 대립이 아니라 '통치'gouvernement라는 주제다. 통치라는 말은 정치 구조나 국가 관리에 관계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개인들이나 집단의 품행을 인도하는 방법"이라는 의미에서 사용된다[푸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통치라는 말로 저는 행정에서부터 교육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을 안내하는 제도와 실천의 총체를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서로 안내하는 것을 보증하는 절차, 기술, 방법의 총체 ... "[<Entretien ave Foucault>, no, 281. 1980, 912.] 통치하다란 "타자의 행동의 가능적인 영역을 구조화하는 것"이다. 3.4.3. 통치 일반에 관해 전체적인 문제화가 이루어졌던 것은 16세기다. 통치는 형식의 다양성과 실천의 내재성이라는 점에서 마키아벨리적인 군주의 초월적 단수성과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것이다[STP, 92.] 통치에 있어서는 각각에 특유한 목적이 복수이며, 이 다양한 목적에 이리기 위해 사물의 배치disposition가 행해진다는 것이다. 통치에 있어서 목적에 도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사물의 배치'라는 일종의 에코노미다[STP, 102~3.] 이 '배치'에 관한 지식, 에코노미적 지식도 국력의 분석-인식을 위한 학문['통계학' 같은] 형태로, 통치에 있어서 불가결해질 것이다. 통치라는 주제는 18세기에 통치의 대상으로서의 인구라는 개념이 나타나면서 드디어 명확해진다. 고유한 규칙성을 지닌 인구라는 집단이 개입의 영역으로서, 통치 기술의 목표로서 나타나는 것이다[푸코는 18세기 말에 나타나게 된 통치의 대상으로서 '사회'개념을 언급한다. 통치란 영토나 거기서 거주하는 신민을 상대로할 뿐만 아니라, '고유한 반응 법칙이나 반응 메커니즘, 다양한 규칙, 혼란의 가능성을 가진, 복잡하고 독립된 실재'를 상대로 해야 하지만, 그가 말하는 사회는 이런 복잡하고 돍립된 실재를 가리키며, 더이상 내치에 의해 완전하게 이해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간주된다[ESPACE, SAVOIR ET POUVOIR, NO, 310, 1982, 1092.] 푸코는 이 통치를 중심으로 한 현상들의 전체를 가리켜서 '통치성'이라고 부른다. 이를 사목권력에서 국가이성(내치)까지를 관통하는 정치 합리성의 중심으로 파악하게 된다.

5. '권력의 존재 조건으로서의 자유'와 '대항인도'

3.5.1. 권력의 행사를 타자의 품행[행동]에 대한 인도의 양태로서, 즉 어떤 자로부터 다른 어떤  자에 대한 '통치'로서 정의할 때, 어떤 중요한 요소가 문제가 된다. 그것이 '자유'다. 모든 행동이 이미 결정되어 있고, 이와 다른 행동이나 반응의 가능성이 없어진 곳에서는, 통치는 존재할 수 없고, 따라서 권력관계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는 권력의 존재 조건으로서 나타나게 "된다[Le sujet et le pouvoir>, no 306. 1982, 1057]. 권력관계란 사회적인 집합체에 깊이 뿌리박은 것이지, 결코 그 보조적인 상부구조가 아니다.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뭔가의 방식으로 타자의 행동에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달리 말한다면, 권력관계 없는 사회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유가 권력의 '존재 조건'이라면,거기에는 항상 현행 권력관계를 변용할 가능성이, 그 배치를 '다른 것'으로 재편할 가능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Entretien avec Foucault>, no, 281, 1980, 912.] 푸코의 이론에서 이 가능성을 좌우하는 열쇠가 되는 것이 '통치'라는 기술에 다름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5.2. 푸코는 이런 사태를 권력관계들과 그것에 대립하는 '전략' 사이의 관계로부터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푸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권력관계는 적어도 잠재적이 방식에서는, 투쟁의 전략을 내포합니다. [...] 이것들[권력관계와 투쟁 전략]은 일종의 항구적인 한계를, 가능한 역전의 지점을 구성합니다."[Nom au sexe roi>, no, 200/1977, 267.] 실제로 권력관계와 투쟁 전략 사이에는 '상호 호응관계, 끝없는 연쇄, 영속적인 역전' 같은 것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불안정성, 역전 가능성이 전혀 있을 수 없는 단계에서 권력관계는 '지배'라는 형태의 고정화에 이른다[Le sujet et le pouvoir>, no 306. 1982, 1061]. 3.5.3. '인도'conduite라는 말을 통해서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은 한편으로 인도한다는 행위를, 다른 한편으로 인도되는 방식이나 인도된 결과의 방식으로 의미한다[STP, 196~7.] 푸코는 '품행[행동]의 인도'가 항상 능동수동의 두가지 측면을모두 담고 있다는 점에 주의하라고 한다. '인도'는 항상 그것에 대립하는 '인도'와 쌍을 이룬다. 통치가 "타자의 품행[행동]의 가능한 영역의 구조화"를 의미한다면, 거기에는 항상 그것과 상관되는 저항이나 불복종의 운동이 존재한다. 어떤 '인도'에 대해 "또 다른 인도[품행]"를 요구하는 운동은 "대항인도"Contre-conduite라고 부른다. 이 말에 의해 그가 강조하고자 하는것은 하나의 인도와 다른 인도 사이의 "직접적이고 창설적인 상관관계"[STP, 198.]이며, 양자가 동시에 발생하는 운동의 두 가지 측면에 다름없다는 점이다. 비행자, 광인, 병자에게서 이러한 '대항인도'의 차원이 발견된다. 3.5.4. 푸코의 권력관으로부터는, 말년이 되어 국가의 '제도'가 아니라 '개체화'로부터의 해방을, 즉 국가가 우리에게 부과했던 개체성을 거부하고 새로운 주체성의 형식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을(이른바 예속화가 아니라 주체화Subjectivition) 종용하게 되는 이유가 보이게 될 것이다. 그것은 제도라기 보다는 개별의 기술로서 우리의 신체에 작동하는 '생명권력', 이 사목권력에 유래하는 권력 형태에 재한 저항의 시도이며, 이른바 '대항인도'인 것이다. 푸코에 따르면 '정치'란, 어떤 사회에서의 힘 관계들의 총체의 의해  구성되는 것인 동시에 이 힘 관계들을 조절하고 방향을 부여하고자 하는 포괄적인 '전략'이기도 하다[<[Les rapports de pouvoir assent a l'interieur des corps>, n0, 197, 1977, 233.] 푸코는 이런 힘 관계들을 변용시키는 전략의 창출을 '정치화'라고 부른다[Ibid., 234.] 이런 의미에서 기존의 권력 메커니즘이나 권력 기술에 대항하고, 새로운 주체의 형태를 창출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하나의 생명의 '정치화'의 시도로 간주할 수 있다[푸코는 윤리적 태토를 "가능한 한 일관성을 지닌 하나의 정치적 사실"로 삼는 것이 문제가 된다고 본다[Politique et ethique: une interview>, 341. 1984. 1407.]

6. 주체화와 새로운 관계성의 창출

3.6.1. 기독교적 개체화의 기술에서 출발해서, 16/7세기의 국가이성의 '내치'로, 나아가서 19세기 말의 복지국가로 계승되는 사목권력은 법과 같은 거시적인 심급이 아닌 더 미시적이고 물리적인 힘에 호소한다. 그 대상은 법적 주체가 아니라 생물로서의 주체이며, 그 행위의 수준이다. 생물로서의 주체에 미시적 수준에서, 또 항상적인 방식으로 작동되는 권력. 조감도의 관점에서, 사목권력이 작동되는 것은 다양한 혼 사이에 개재하는 에코노미다. 합리적이고 부동적인 원리가 아니라 다른 개체의 의지 같은 유동적인 것에 전면적으로 의거한다. 3.6.2. 또한 푸코가 서양 역사에서 사목권력의 계보를 추적하는 가운데 강조하는 것은 사목권력에 의한 통치에는 늘 그에 대한 저항이 뒤따랐다는 사실이다. '인도'와 '대항인도'. 이 둘은 시계열적인 전후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동시적으로 발생하는것이다[이 둘의 짝짓기 기원은 고대 그리스에서 찾을 수 있다. 83년 강의인 『자기와 타인의 통치』에서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이온』 의 분석을 통해서 제시된다. [...] 요컨대, 가장 강한 자가 합리적인 통치를 행하려면, 가장 약한 자가 진리의 담론으로 그에게 이야기하고, 도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셈이다. 인간의 통치를 가능하게 하는 합리적인 담론과, 강자의 부정의를 비난하는 약자의 담론 사이의 짝짓기는 그 이후의 모든 정치 담론의 모체가 될 것이다. 그 후 제정기가 되자 강자의 부정의에 관해 말하는 약자의 담론이, 강자의 인간 이성의 담론에 따라 사람들을 통치하기 위해 불가결한 조건이 된다[Ibid, 125~7.] 사목권력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대항인도는 "타자에 의한 자기의 통치"에 "자기에 의한 자기의 통치"를 대립시키는 운동으로서 나타날 것이다. 푸코가 '대항인도'라고 부르는 것에는 저항이라는 부정 운동뿐만 아니라 자기의 형성으로서의 주체화 같은 긍정 운동까지도 포함된다[푸코와의 인터뷰: sexe, pouvoir et la politique de l'identite>, no.358. 1984. 1560; 라자랏토의 Experimentations politique, op. cit., p.83.] 3.6.3. 인도와 대항인도의 양립이나 양자의 가역성은 푸코가 이해하는 권력의 양태에서 유래한다. 푸코는 그것을 불안정하고 가역적이며 가동적인 관계라고 특징짓기 때문이다. 권력의 이러한 불안정하고 가역적인 관계성을 기반으로, 대항인도는 새로운 주체성의 창출로서, 새로운 자기의 형성으로서 나타난다. 정체성의 고착화에, 이 예속화의 양태에 저항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지녀야 할 관계는 정체성의 관계가 아니라 차이화, 창조, 혁신의 관계입니다."[푸코, 같은 글, 1558.]  이러한 불안정한 관계성으로서의 권력(이것을 그는 '전략적 관계들'이라고 지칭한다.)과 주체의 결부는 푸코에게 진리라는 개념의 의미를 변화시키게 될 것이다. 3.6.4. 이 주체와 권력관계의 연결을 전제한 경우, 새로운 주체를 형성한다는 것은 새로운 관계성을 창출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여러 가지 다양성으로 이루어진 권력관계에 있어서 자기의 실천에 의해 주체를 형성하는 행위는, 이 관계의 다양성의 새로운 양태를 개시하는 실천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역으로 주체화에 얽혀 있는 여러 가지 실천은 권력관계의 배치를 재규정하는 행위라고 파악할 수 있다. 권력관계란 다른 것으로부터 일면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실천에 의해 변화시키고 구성해가는 것이기도 하다. 거기서 규정되는 권력관계는 항상 부분적인 것에 머물고, 거기서 행해지는 실천은 권력관계 전체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항상 새로운 관계성을 창출할 여지가 남아 있다. 푸코가 "자유는 권력의 존재 조건으로서 나타난다"고 말한 것의 의미다. 권력이 행사되는 것은 '자유로운 주체'에 대해서일 뿐이며, 주체가 자유로운 한에서일 뿐이다. 여기서 자유롭다고 말하는 것은 다른 행동이나 반응의 여지가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런 의미에서 :결정이 포화상태가 된 곳에서는 권력관계는 없다."[Le sujet et le pouvoir>, no 306. 1982, 1057.] 또한 푸코에 따르면 어떠한 저항의 가능성도 배제하는 절대적인 '억압'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서 항상 불변적인 절대 '해방'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란 본성으로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4장 주체와 진리: '실존의 기법'에 의한 관계성의 재배치

후기 푸코의 권력론에서 문제 됐던 것은 첫째, 개개의 생물로서의 주체에, 행위의 수준에서 작동을 거는 권력이었다. 푸코는 그것은 유대-기독교에서부터 근대 국가에 이르기까지 권력의 특징으로 생각했다. 둘째, 후기 주체론에서 푸코는 하나의 '소재로서 자기'를 바탕으로 한 주체 형성을, 즉 일종의 '자기의 포이에시스'라고도 해야 할 것을 언급한다.  '소재로서 자기'는 그 자체가 힘들의 착종체로서 있으며, 그것은 고정적인 권력관계로, 역으로 대항적 힘으로도 변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감추고 있는 것으로서 구상되었다. 주체화의 소재란, 어떤 의미에서 권력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권력이 "그 자체로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interview with foucault>, no 353. 1984, 1513.]고 분명히 말한다. 그것은 사용 방식에 따라 중대한 부정 귀결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 물질'이기도 하다. "다음 두 가지를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자유로운 개개인들 사이의 전략 게임으로서의 권력관계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전략  게임이란 한쪽이 다른 쪽의 품행을 결정하려 시도하고, 이것에 대해 다른 쪽은 자신의 품행을 결정당하지 않으려고 시도하거나 혹은 반대로 상대의 행동을 결정하려고 함으로써 응하고자 하는 그런 것입니다.그리고 [그것과는 별개로] 다양한 지배의 상태들이 있습니다. 흔히 권력이라고 불리는 것은 이 지배의 상태들입니다. 이 둘 사이에는, 권력의 게임들과 지배의 상태들 사이에는 매우 넓은 의미의 통치의 테크놀로지들이 있습니다. [...] 이런 기술들에 대한 분석이 필수적입니다. 저의 권력 분석에는 이런 세 가지 수준들이 있습니다. 전략적 관계들, 통치의 기술들, 그리고 지배의 상태들입니다."[L'éthique du souci de soi comme pratique de la liberté(<자유의 실천으로서 자기 배려의윤리학>, n0. 356, 1984, 154.] 여기서 푸코는 '권력관계들'이라는 말에 의해, 단순한 지배 상태들과는 다른 것을 상정한다. 그는 우선, 이것들의 기저에 '전략적 관계들'이라는 유동적인 장을 상정하고 있다. 어떤 개인이나 사회집단이든 그런 권력관계들의 장을 가둬버리고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해버리고 운동의 가역성을 모두 정지시켜버리는 데에 성공하면, 이른바 지배의 상태들이 전개된다고 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자유의 실천은 존재하지 않거나, 일방적으로만 존재하거나, 아주 한정된 것이게 된다. 위와 같은 모든 것을 좌우하는 열쇠가 '통치'이며 그 기술들이다[Ibid, 1529~30.] 푸코가 여기서 특히 강조하는 것은 권력관계들의 가동성, 가역성, 불안정성 같은 것이다. 권력관계들이 존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체가 자유인 한에서 뿐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영역 전체를 관통해서 권력관계들이 있는 것은도처에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Ibid. 1539.] 푸코는 "통치성은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를 함의한다."[ibid. 1548] 라고 말한다. 통치성이라는 개념에 의해 그는 사람들이 전략을 구성하고 규정하고 조직하며 도구로 삼기 위한 실천의 총체를 명명하는 것이다.  이 전략은 자유로운 개인들 사이에서 상호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자유로운 개인들이야말로 어떤 때는 타자의 자유를 통제하고 결정하고 한정도 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근본적인 부분에서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나 그것을 통한 타자에의 관계에 근거하고 있고, 푸코가 자유라고 하는 것은 이런 관계의 총체를 가리킨다.  푸코가 말년에 탐구하기에 이르렀던 "자기 배려"도 통치의 한 기술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서 실천되는 '아스케시스'askêsis, 즉 자기에 대한 자기의 작동걸기[작업]'는 신체적 수준에서 권력관계에 가동성이나 가역성을 초래하는 것, 구체적인 수준에서 '대항인도'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느 이런 가변적인 궐력관계에 있어서의 '자기의 포이에시스'를 자체를, 푸코에게서의 미학적 이념의 하나로서 재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기서는 '실존의 미학'이라는 개념이 중심이 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주체와 진리의 관계이며, 진리의 획득과 자기의 실천과의 관계이다.

1. '자기 배려'와 '자기 인식' 자기 배려

4.1.1. 후기 푸코가 '자기의 포이에시스'의 모델을 찾아낸 것은 고대 그리스였다. 푸코는 82년의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주체의 해석학』에서 주체와 진리의 관계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관념을 다루는 것에서 출발한다. '자기 배려'epimeleia heautou이다[HS, 4.] 그는 이 '자기 배려'가 그리스, 헬레니즘, 로마 문화의 거의 전체를 통해, 철학적 태도를 특징짓는 '근본 원리'이기를 계속했다고 말했다. 자기 배려가 '주체와의 진리의 관계'의 고찰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인가? '자기 배려'가 자기의 진리에 이르기 위해 자기의 변형을 필요로 하는 실천, 이른바 '영성'spiritualité의 실천의 총체에 다름없다는 점에 관련된다. 고대에서 '진리'를 획득하려면 자기로 향하는, 자기를 배려할 필요가 있었ㄷ는 셈이다. 푸코는 이 '자기 배려'가 고대 철학부터 그리스교의 시작까지 면면히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 후의 기독교적 금욕주의ascétisme로도 계승되었다고 지적한다. 푸코는 이 '자기 인식'["너 자신을 알라"]에 무게를 두는 정식과는 다른 '자기 배려'라는 관념에서 출발해서, 서양에서의 '자기의 진리'에의 관계의 역사를 재파악하고자 했다. 자기 인식 4.1.2. 푸코는 이 '자기 배려'의 관습-법도가 잊히고 고대 문화에서 천 년에 가까운 동안 그것이 차지했던 지위가 말소돼버린 그 가장 중요한 경계선을 '데카르트적 계기'라고 부른다. 고대 그리스 시대 내내 그 양태는 다양하나 '철학적 문제['어떻게 진리에 도달할 것인가']와 '영성의 실천['진리에의 도달'을 가능하게 하는, 주체의 존재 자체의 변형]이라는 두 개의 케마는 결코 분리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HS. 18.] '자기 배려'란 이 '영성의 조건들의 총체, 진리에의 도달을 위해 필요한 조건인 자기의 변형의 총체'에 다름 아니었다. 반면 '데카르트적 계기'를 경계로 진리에의 도달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저 '인식'으로만 됐다고 한다. "진리의 역사의 근대 시대는 참[진실]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인식 자체이며 오로지 인식뿐이게 된 바로 그때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즉, 철학자가 [...] 다른 그 무엇도 요구되지 않은 채, 주체로서의 그 존재가 수정되거나 변경될 필요가 없고, 자기 자신에 있어서, 그리고 자신의 인식행위에 의해서만 진리를 인식하고 진리에 접근할 수 있게 됐을 때부터 말입니다."[HS., 19.] 4.1.3. 푸코는 여기에서 주체와 진리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변화한 지점을 찾아낸다. 이후 진리는 주체를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인식의 대상이 되며, 진리에의 도달은 "인식의 자율적인 발전"[HS., 27.]이 된다. 푸코는 『주체의 해석학』에서 고대의 '자기 배려'의 세 가지의 주요한 계기를 다루게 된다[HS., 32.] 첫째, 철학적 사색에 있어서 '자기 배려'의 등장으로서 소크라테스-플라톤이라는 계기. 둘째, 기원 후 처음 두 세기가 '자기 배려'의 황금시대로 간주. 셋재, 4세기부터 5세기 동안에 생겨난 기독교적 금욕주의로의 이행. 푸코는 근대 이후 주체와 진리의 관계 속에서, '자기 배려'에 대해 '자기 인식'이 결정적으로 우세해지는 계기를 간파했다. 이런 고대의 세 시기에 이미 양자는 '자기의 진리'에의 관계 속에서 서로 얽히며, 또한 각각의 배분을 변화시켜 왔다는 것이다[HS. 67~8.] 앞서 말한 세 시기 중에서, 푸코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자기 배려'의 황금시대로 평가된 헬리니즘 및 로마 시대다. 거기서 실천은 플라톤에게 아직 그랬듯이, 교육의 보완물(즉, "성년의 삶과 정치적 삶에 들어서려고 하는 순간에 젊은이들에게 부과된 계율")이기를 그치며, "실존의 모든 전개에 적용되는 명령"이 된다. 이를 푸코는 "자기의 실천이 삶의 기법과 동일시된다"고 표현한다.

2. 자기로의 회귀.

4.2.1. 푸코는 '자기 배려' 속에 반복적으로 나타난 하나의 이미지에 주의하라고 한다. "우리를 우리에게서 벗어나게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들을 벗어나게 하여 우리 자신으로 다시 향하게하는 것"[HS., 198.] 즉 "자기 자신으로의 선회"의 이미지다. 푸코는 이런 이미지로부터 자기로의 '회귀'Conversion라는 개념을 추출한다. "자기로의 회귀"se'convertere ad se라는 주제가 특히 중요하고 지속적인 존재감을 보여주게 된 것은 기원 후 1~2세기이다. 이 주제는 플라톤에게서도 에피스트로페epistrophê라는 개념으로서 이미 나타났다. 푸코가 피에르 아도의 연구에 의거하면서 말하는 바에 따르면, 에피스트로페epistrophê란 "혼이 존재의 완성으로 회귀하고, 존재의 영원한 운동 속에 다시 장소를 차지하게 되는"[HS, 207~8.] 운동이다. 메타노이아METANOIA[기독교 문화에서 에피스트로페epistrophê라는 개념이 이 개념으로 계승]는 "그 중심에 자기 자신의 경험과 자기에 대한 자기의 포기의 경험으로서의 죽음과 부활이 있다"는 주체의 재생이다. 헬레니즘 및 로마 시대의 '회귀'는 에피스트로페epistrophê처럼 지상의 세계와 천상의 세계 사이의 대립을 전제로 하는 것과는 반대로 '세계의 내재성 그 자체에 있어서 이루어질 회귀"[HS, 201.]이다.  그것은 메타노이아처럼 자기가 자기와 파열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파열을 일으키는 것은 자기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기 이외의 것, 즉 타자나 세계에 대해서이다. '회귀'에 있어서 인간은 자기를 둘러싼 것으로부터 자기로 시선을 바꿔 돌리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기독교에서처럼 자기의 내면으로, 즉 양심의 비밀의 독해로 향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알아야 할 사항은 언제나 세계이며, 타자이며, 우리를 둘러싼 것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그것이야말로 '자기 배려'에서 획득되어야 할 '지식'[=진리]이다. 4.2.2. 푸코가 퀴니코스파 철학자 데메트리오스를 참조하면서 말하는 바에 따르면, 유용한 지식과 무용한 지식을 나누는 것은 그 '내용'이 아니라 '인식의 양태'이다. 어떤 지식이 무용하게 되는 인식 양태는 "그 지식이 주체의 존재 양태에 효과를 미치지 않는 인식"인 반면,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지식을 명령으로 옮겨 적을 수 있으며 그것이 우리 존재를 수정할 수 있는 인식"이다. 유용한 지식이란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지식인 것이다[HS., 227.] 따라서 중요한 것은 실존 양태를 변화시키는 성질을 지닌 지식, 즉 "에토스 제작적인"étho-poétique 성격을 지닌 인식이다. "지식이나 인식이 어떤 형태를 취하고 있을 때, 에코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방식으로 기능하고 있을 때, 그것은 유용한 것입니다."[HS. 227~8.] 푸코가 헬레니즘 및 로마 시대에서의 자기로의 '회귀'의 주제 속에서 인식하는 것은 이런 주체와 진리 사이의 존재론적 관계의 완전한 전개에 다름없다. 요구되는 것은 "다양한 사물이나 세계, 신들이나 인간과 관련된 지식"이며, 다만 주체의 존재를 변화시키는 기능을 가진 그것이다. 주체에 영향을 미치는 진리이지 않으면 안 된다[HS. 233.] 아스케시스: 진리의 실천 4.2.3. 『주체의 해석학』에서 푸코는 이런 '자기로의 회귀'라는 주제, 혹은 '자기의 윤리와 자기의 미학의 재구성'의 중요성을, 권력과의 관계로부터 말한다. 요점은 "정치권력에 대한 첫째이자 궁극적인 저항의 지점은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밖에는 없다."[HS. 241.] "통치성을 궈력관계들의 전략적 장으로 이해한다면, 즉 가동적이고 변형 가능하고 가역적인 것으로서의 권력이라고 이해한다면, 이 통치성 개념에 대한 성찰은 이론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주체라는 요소를 거치지 않고서는 이뤄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때의 주체는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에 의해 정의될 것입니다. [...] 통치성에 대한 분석(즉, 가역적 관계들의 총체로서의 권력에 대한 분석)은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에 의해 정의되는 주체의 윤리를 참조해야 합니다(HS, 241~2.] 푸코에 따르면 '권력', '자기와 타자들의 통치', '통치성',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라는 네 가지 개념은 연쇄적이고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으며, 또한 이런 개념들을 중심으로 정치와 윤리의 문제가 연결된다고 한다. 그가 '자기로의 회귀'에서 인식['인식의 자유로운 발전']보다 실천['진리에의 도달'을 가능하게 하는 주체의 변형]의 측면에 주목하는 것은 이 '권력관계'를 내다봤던 것에 있다. '자기로의 휘귀의 실천'은 '아스케시스''askêsis라고 불리는 것은? 푸코에 따르면 아스케시스가 확립되고, 그 기술을 전개하는 것은 법이라는 심급에 의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진리의 실천"이며, 그것은 주체를 법에 복종시키는 방법이 아니라 주체와 진리를 결부시키는 방법이다. 즉 고대의 문화와 사고에서 근본 문제는 "법에 대한 종속"과 :주체의 자기 자신에 이 아니라 오히려 "지식의 영성"이며 "진리의 실천과 행사"였다[HS. 305.] 이 말이 의미하는 바도 또한, 기독교에서처럼 자기 포기를 최종 목표로 하는 이른바 '금욕'이 아니라, 반대로 진리와의 관계에서 자기를 구성하기 위한 실천이 된다. 그것의 목표는 완전하고 적절한,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를 구성하는 것에 다름없다. 4.2.4. 이러한 아스케시스에 의해서 인간은 파라스케우에Paraskeuê를, 즉 "진정한 담론이, 이성적인  행동의 모체가 되기 위해 취할 형태"를 구성하게 된다. 그것은 진리를 주체의 행동 원리로 변환하는 요소이다. 즉 아스케시스란 이런 파라스케우에를 형성하고 정착시키고 재활성화하고 강화하기 위한 절차의 총체이다[HS. 312] 그것은 "인간이 진리를 획득하고 흡수하며, 이를 영속적인 행동 원리에 변형할 때의 수단으로서의 일련의 실천"으로 정의할 수 있다. 거기에서는 이른바 "알레테이아가 에토스가 되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주체화'의 과정이다. 그는 이러한 아스케시스의 총체를 가리켜 "실존의 기예"라고 부른다.

3. 실존의 기법 양생의 실천

4.3.1. 고대 그리스의 '실존의 기법'의 체계 중에서 푸코가 『성의 역사』의 3부작에서 주로 관심을 기울인 것은 성적인 관계와 얽혀 있다. '실존의 기법' 자체는 『쾌락의 선용』 2장의 '실존의 기법'에서의 다양한 일상 행위에 대한 배려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거기서 푸코는 고대 그리스에서의 '삶의 기예'의 근본적인범주로서의 '양생/제도'Régime라는 개념을 꼽았다. "양생이란 그것을 통해 우리가 인간의 품행을 생각할 수 있는 근본 범주이다. 양생은 우리가 자신의 실존을 영위하는 방식을 성격짓고, 품행에 규칙들의 전체를 고정할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형태의 문제화 양식으로, 이 양식을 지켜야 하며 순응해야 하는 자연에 따라서 만들어진다. 양생은 바로 삶의 기예이다[UP, 133.] 푸코는 히포크라테스의  『악역론』 6권에 따르면 양생의 영역에는 '"운동, 음식, 수면, 음료, 성적 관계" 등이 포함된다. 즉 인간의 신체적 삶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를 기상에서 추침짜기 하루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포함한 실천의 총체이며, 성적 관게계는 어디까지나 그 일부에 불과하다."[UP. 134.] 시간의 흐름에 걸맞게, 그리고 인간의 활동의 각각에 관해, 양생은 "신체와의 관계를 문제화하고, 살아가기의 방식(그 형식, 선택, 변수가 신체의[에 대한] 배려에 의해 규정되는 바)을 전개하게" 되는 것이다[같은 쪽. 들뢰즈는 고대 그리스에서 양생 모델을 강조하는 자기 관계와 성적 관계 사이에 필연적인 연결은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말한다. 들뢰즈, <미셸 푸코의 몇 가지 개념들에 대해>, 『광기의 두 체제』 , 2003. 241.] 4.3.2. 푸코에 따르면, 양생은 신체와 그 활동에 대한 주목이다. 이는 두 가지 형식을 가진다. 첫째, "계열에 대한 주목, 연속체에 대한 주목"이다. 식사, 운동, 목욕과 같은 다양한 활동은 그 자체로서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며, 그것들의 가치는 선행하는 활동과 후속하는 활동 사의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둘째, 양생의 실천은 '상황에 대한' 배려를, 즉 바깥의 세계에 대한, 그 구성 요소(기후, 계절, 하루의 시간대, 온도, 바람, 지역의 특성, 도시의 성립과 같은 것들)나 그것이 미치는 감각에 대한 배려를 포함한다. 그것은 이러한 변수에 따라서 삶의 영위하는 방식을 조정하는 것이다. 양생은 보편적-획일적인 규칙의 집성이 아닌, 오히려 우리가 놓일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반응하기 위한 '안내' 같은 것이며, 상황에 맞게 행동을 조정하기 위한 '조약'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의 기법으로서의 양생의 실천은 다음과 같다. "살아가기의 기예로서의 양생의 실천은 [...] 자신의 신체에 올바르고 또한 필요 충분한  배려를 가진 주체로서 자기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그것은 일상생활을 관통하는 배려이며, 실존의 주요한 혹은 일상적인 활동을 건강과 도덕의 관건으로 삼는 배려이며, 신체와 이를 에워싼 요소들과의 사이에서 상황적 전략을 정의하는 배려이며, 개인 자신에게 합리적인 품행을 익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배려이다."[UP. 143.] '자기에의 전심'의 방법 4.3.3. 양생은 일상생활 속에서 자기와의 관계를 문제화하기 위한 실천들로써, 자기에게 '전심'함으로써, 즉 자기로 향하며 자기와의 관계를 물음으로써 '자신의 진리'를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자기에의 전심'은 어떤 방식으로 행해질 수 있을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자기 자신의 내부로의 정신적인 퇴각을 찾아냈다. 그것은 이른바 자기 내부로의 '은둔'이다. 그러나 그 은둔은 나중의 기독교에서처럼 자신 속에서 죄 같은 것을 찾아내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이것은 오직 '행동 규범'을 떠올리기 위해서만 행해진다. 그것은 단죄하거나 고발하는 행위로 구성된 '재판'이 아니라 수행-성취된 활동을  평가하고 그것에 얽힌 원리를 재활성화하고 그 장례적인 적용을 조정한다는 행위로 구성된 '행정 관리'에 더 가까운 것이다. 거기서 행해지는 것은 '재판관'의 작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검사관'의 작업이다. 여기에서 법에 의한 '심판'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의 행동을 평가하고 행동 원리를 재활성화하고 그것을 장래의 행동을 위해 조정한다는 '아네코레스스'는 자기에 의한 자기의 인도, 또는 '자기의 진리'에 의한 인도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자기 배려의 주위에서 파롤 및 에크리튀르에 속하는 모든 활동이 전개되며, 거기서는 자기에 대한 자기의 작업과 타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연결됐다."[SS/>, 『자기 배려』 ,72.] 4.3.4. 푸코는 자기에 대한 자기의 작업과 타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이 두가지가 서로 통하는 지점을 가리켜서, "자기 자신에게 바쳐진 이 활동의 가장 중요한 점 중 하나"라고 말한다. 이 활동은 "참된 사회적 실천"이다. "자기로의 진심" 속에서 인간은 타자에 의해서 인도되고 조언을 들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타자를 인도하고 조언을 해주는 쪽이 되기도 한다. 자기 배려는 "타자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져야 할 배려에 대한 배려"와 표리일체다. 친구나 스승과의 대화는 그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거기서 행해지는 '정신의 인도'를 각자가 자신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공동의 경험'으로 바꾸게 된다. 자기 배려는 타자와의 교류나 호혜적인 관계를 초래하는 '혼에 대한 봉사'와 내재적으로 연결된다. '자기로의 전심'은 자기에 의한 자기의 인도와 동시에, 타자와의 쌍방향적 관계도 초래하게 된다. 거기에서는 자기의 안쪽으로 향하면서, 동시에 자기의 바깥으로도 연결되는 운동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에서 '진리'의 탐구는 이런 외부에 열려 있는 '자기에의 전심'을 통해 행해지는 것이다. '자기에 의한 자기의 통치'의 테크네 4.3.5. 후기의 주체론에서 푸코가 탐구한 것은 타자로부터의 통치를 피하고 자기 자신을 통치하는 것(또는 타자로부터 전제적인 인도에 의하지 않고 자기를 인도하는 것)이며, 이를 위한 방법이었다. 거기서 저항은 단순한 반발 운동으로서보다는 오히려 '자기로의 회귀'로서, 그리고 어떤 테크네에 의한 주체의 형성이라는 긍정운동으로서 나타나게 된다. '자기 배려'를 기본 원리로 하는 '실존의 기법'은 '대항-인도'로서의 '자기에 의한 자기의 통치'를 달성하기 위한 테크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 대부분이 일상의 구체적이고 사소한 행동에 대한 배려로 이루어진 '실존의 기법', 이 테크네에 의해 우리는 자기 자신과 새로운, 그리고 특이한 관계를 끊임없이 다시 맺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런 실천들을 통해서, 각각의 '자기의 진리'를 획득한다는 형태로 실현될 것이다. 진리에 대한 관계가 '실존의 기법'의 기층을 이룬다는 것은 이런 뜻이다. 4.3.6. 『쾌락의 선용』의 서문에서 푸코는 '행동의 규범과 그 체계성을 중시하는 도덕'과 '주체화의 형식과 자기 실천을 중시하는 도덕'을 구별하고 있다. "넓은 의미의 모든 '도덕'에는 [...] 행동의 규범이라는 측면과 주체화의 형식이라는 측면, 이 두 가지가 포함되어 있으며, 또한 이 둘을 결코 완전히 분리할 수 없다는 것도 확실하지만, 이것들이 상대적인 자율성 속에서 전개되는 경우가 있다[UP, 41. 마찬가지로 푸코는 말년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행동해야 하는가, 우리에게 알리는 규범으로서의 윤리와 개인이 행동할 때, 자기 자신에 대해 지니는 관계'로서의 윤리가 구별된다."고 말했다(Une interview de Foucault par Stephen Riggins>, 336. 1983, 1355.] 푸코가 말하는 '규범 지향적인' 도덕과 '윤리 지향적인' 도덕 사이의 구별은 결국 '도덕'과 '윤리' 사이의 구별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프레데릭 그로가 말하듯, 윤리는 일반화되는 것에 의해서, 점차 '보편 규범'으로 간주되게 된다. 그것은 "보편화하는 적용에 의해 모두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도덕으로 번역된다는" 것이다[HS. 513.]] 지금까지 봤던 고대 그리스의 '자기 배려'를 푸코는 '도덕'으로서의 측면을 강화하기 전의 '윤리' 차원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또한 '자기 배려'에 있어서의 주체화가 법이 아니라 진리와의 직접 관계에 있다는 푸코의 테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거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법이라는 '보편 규범' 또는 다른 것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주어지고 자신과 본질적으로 무관한 진리가 아니라, 자기에의 작동에 의한 자기의 변형을 통해 획득되는 진리, 즉 '자기의 진리'이다. 이 '윤리'의 차원에서 행해지는 '자기의 포이에시스'는 푸코가 '실존의 미학'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4. 파르레시아 진리를 말하기

4.4.1. '파르레시아'란 보통 "진리를 말하기, 진리진술Véridiction"로서 정의된는 개념이다. 이 개념도 어떤 형태로든 '실존의 기법'에 속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은 이런 실천들의 한 형식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따라서 주체의 형성(포이에시스)와 관련된 것으로 생각된다는 것이다. 푸코에 따르면, 데카르트 이후 근대 철학에 있어서는 어떤 사고가 진리라고 간주되는 것은 사고하는 주체의 정신 속에서, 명증성이라는 경험이 생길 경우인 반면 그리스에서는 사고가 진리가 되는 것은 마음 안쪽의 경험에 의해서가 아니라 파르레시아라는 행동 자체에 의해서라고 한다. 거기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진리를 말하기'와 주체화가 연결된 것이다. 푸코는 83년 강의(『자기와 타자의 통치』)에서 『파이드로스』를 주해하는 형태로 '로고스의 진정한 테크네'에 관해 논의한다. 소크라테스와 파이드로서의 대화에서 '좋은 로고스의 조건'을 화제로 삼는 대목이 다루어진다. 소크라테스는 '인식의 실천'에 대한 선행성을 주창하는 파이드로스에 대해 이를 부정하고 역전시킨다. 푸코가 보기에 소크라테스가 말하고 있는 것은 "어떤 담론이 참된 담론이기 위해서는 진리의 인식이 어떤 사람이 말하기 전에 주어져 있는 게 아니라, 진리가 그 담론의 지속적이고 영속적인 하나의 기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GSA, P. 303.] 푸코에 따르면, 이런 의미에서의 '진정한 담론을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담론의 '진정한 기술'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진리가 담론의 영속적인 기능이 된다"는 것은 어떤 사태를 가리키는 것일까?그것은 앞서 본 주체와 진리 사이의 관계로부터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는 파라스케우에를 구성함으로써 진리를 주체의 행동 원리로 변화하는 것이, 이른바 알레테이아를 에토스로 변환하는 것이 '주체화'라고 불렸다. 이 경우 파르레시아를 통해 진리의 이야기가 주체의 존재 양태로 구성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주체는 이 테크네에 의해서, '소재로서의 자기'에 진리를 받아들임으로써 이를 재편하고, 자기와의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그때, 이런 자신의 변용을 이르키는 테크네야 말로 '로고스이 진정한 테크네라고 간주되는 것이다. 진리인식의 방법 4.4.2. 『파이드로스』에서 소크라테스-플라톤은 진리의 인식에는 '종합과 분할'로 이루어진 '디알렉티케'dialektikê라고 불리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종합'이란 자연을 연접시키는 것을, '분할'이란 자연을 적절하게  세분화하는 것이다. 이 디알렉티케에 의해  혼은 진리를 인식할 수 있게 되지만, 푸코에 따르면 그것은 단순한 객관적 인식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실천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디알렉티케에 있어서 혼은 진리의 획득을 통해 그것을 혼으로 새기게 되며,  그 결과 인식의 앞과 뒤에서 동일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혼이 스스로를 불가피하게 변형시키는 하나의 '경험'이다. 그리고 진리의 인식이 그런 '경험'을 통해 이루어짐으로써 '진리가 담론의 영속적인 기능이다"라는 것이, 즉 어떤 담론이 파르레시아라는 것이 가능해진다. 4.4.3. 푸코는 "혼이 <존재>의 인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은, '혼의 운동'에 의해서라고 말하며, 이런 "진리에의 접근과 혼의 자기 자신과의 관계 사이에 존재하는 유대"를 다음과 같이 정식화한다. "<존재> 그 자체와 관계하는 되는 대화술[디알렉티케]의 길을 따라가고 싶어 하는 자, 이 자는 자신의 고유한 혼과, 혹은 사랑에 의해서 타자의 혼과 어떤 관계를 갖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 관계란 그의 혼이 그것에 의해 수정을 겪고 그리하여 진리에 접근할 수 있게 되는 관계입니다."[GSA., P. 307.] 후기 주체론에서 푸코는 주체를 부정적으로도 긍정적으로도 변환할 수 있는 힘들의 복합체로 파악했고 푸코의 '저항'은 이런 힘의 흐름의 방향 바꿈에 다름 아니었다. 그의 권력론에서 주축이 되는 것은 이런 힘들의 흐름을 인도하는  테크네일 것이다.  이로부터 진리 인식의 방법으로서의 디알리케, 나아가 그것에 기초한 파르레시아라는 테크네는, 이런 주체의 영역 확정이라는 실천이자 경험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거기서 진리는 파르레시아에 의해 도입되고, 주체를 구성하기 위한 요소로 파악되고 있다. 여기서 '진리'는 더 이상 주체에 강제되는 부정적인 힘이라기보다는 주체의 형성과 관련된 긍정적인 힘으로서 작용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5. 진리와 광기 진리의 체제 4.5.1. 푸코는 77년의 인터뷰에서 진리에 대해, 그것이 "권력의 바깥에도, 권력 없이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푸코와의 인터뷰>, no 192(1977), 158.] 진리가 권력 시스템 및 권력 효과와의 순환 연결 위에 성립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푸코에 따르면 모든 사회의 각각에 진리의 체제, 진리를 둘러싼 정치가 존재한다. 모든 사회에는 그 사회가 받아들이고 진리로서 기능시키는 담론이 있으며, 참된 언표와 거짓된 언표를 나누는 메커니즘이나 심급, 그리고 수법이 있으며, 진리의 획득과 얽혀 있는 기술이나 절차가 있으며, 진리를 말하는 데 걸맞는 지위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진리는 다양한 과학 담론에 기초하여, 정치적-경제적 요청을 따라 유통과 소비의 대상이 된다. 4.5.2. '진리의 체제'régime de vérité. 푸코는 『생명정치의 탄생』에서 그것은 일련의 실천과 연결됨으로써, 현실에는 존재하지않는 것(광기, 병, 비행성, 섹슈얼리티)을 현실 속에 표시하고 그것을 참과 거짓의 분할에 복종시키는 것으로서 설명됐다. 그것은 현실의 다양한 실천과 연결됨으로써 이런 지식-권력의 장치를 형성하는 것이다. 진리의 체제는 어디까지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주체를, 즉 "광기에 빠져 있지 않은 주체"를 전제로 하는 것이며, 그래서 광기의 배제는 진리의 체제의 '근본 행위'인 것이다[CV, 『생명체들의 통치에 관해』, 1980, 96.] 또한 과학의 신부넹 관해, 이것 자체가 이 진리의 체제에 속하는 것임을 지적한다. 거기에서는 진리의 권력이 그 강제가 참 자체에 으해 보증되는 형태로 조직되는" 것이며, 또한 진리란 "그것이 참이기 때문에, 그런 한에서 강제하고 구속하는" 것이라고 간주된다[IBID, 97.] 푸코는 과학이란 "진리의 가능한 체제들 중 하나"에 다름 아니다, 과학 외에도 다수의 체제가 거기에 존재한다고 말한다[이 책에서는 과학 이외의 진리의 체제, 특히 '고백'이라는 형태에서의 진리의 표명이었다. '고백'이라는 진리의 체제는 "몇 가지 절차를 따른 진리의 표명과, 그 조작자, 증인, 경우에 따라서는 대상이 되기도 하는 주체를 연결시키는 다양한 관계의 유형"이다[Ibid., 98.] 이러한 진리의 체제,  진리를 둘러싼 정치의 존재는 동시에 '진리를 위한 전쟁', '진리를 둘러싼 투쟁'을 이끌게 된다. 푸코는 진리라는 말로 "언표들의 생산, 법칙, 분배, 유통, 기능을 위하여 규칙화된 절차들의 총체"를 의미한다[<푸코와의 인터뷰>, no 192(1977), 160.] 즉 "참과 거짓을 분별하고, 참[진실]에 특정한 정치 효과를 부여하는" 것이며, 그에 반해 "진리를 위한 투쟁"이란 "진리의 지위와 그것이 맡는 정치적-경제적 역할을 둘러싼 투쟁"을 의미한다[Ibid., 159.] 4.5.3. 진리는 그것을 산출하고 떠받치는 권력 시스템에, 또 진리가 산출하고 진리를 떠받치는 권력 효과에 순환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진리의 체제'. 문제는 진리의 생산에 관여하는 이러한 정치적-경제적-제도적 체제를 바꾸는 것이다. 그것은 진리를 모든 권력 시스템으로부터 해방한다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그 자체가 권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은 눈앞의 그 내부에서 진리가 기능하는 (정치적-경제적-문화적으로) 지배적인 형태로부터 진리의 권력을 갈라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Ibid. 160. 푸코는 지식과 권력, 진리와 권력의 경첩[경계면'을 분명히 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문제라고 명시한다[<pouvoir et savoirs>, no 216, 1977. 404.] 그렇기에 '파르레시아'에서의 진리의 획득이 목표로 하는 것은 바로 이 '진리의 체제'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권력의 관계들이 가동적, 가역적인 것이라면, 그것을 지지하고 있는 진리의 체제도 또한 주체의 구체적인 행동에 의해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는 '파르레시아'라는 '대항-품행'에 의해 주체와 진리의 관계를 바꿈으로써, '진리의 체제'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한계 경험으로서의 광기의 진리 4.5.4. 광기는 60년대의 푸코에 의해 진리와의 상호귀속성을 지적받았다. 하지만 76년의 인터뷰에서 광기에 관해 이것이 '절대적인 외부'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고 발언한다. 그것은 '바깥의 파롤' 따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우리 사회의 내부에, 그 권력의 효과들의 내부에 있다는 것이다. "광인은 권력의 그물망에 사로잡혀 있으며, 권력의 장치들 속에서 형성되고 기능하는 것입니다."[L'extension sociale de la norme, n0. 173, 1976, 77.] '절대적 외부'가 아니라면, 그것은 어떤 것으로 간주될 ㅅ 있는가?앞의 인터뷰에서 푸코는 광기가 권력의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형성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시기의 푸코는 권력이 여태껏 생각됐듯이, 억압이나 금지의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력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력의 내부에서 형성되고 기능하는 광기도 권력의 관계 속에서 산출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권력은 광기의 배제가 아니라 그 형성에, 기능에 관련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광기란 어떤 본성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바로 '절대적인 외부'로서), 어디까지나 권력이 비추는 그림으로서, 그것과의 내재적인 연관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 푸코는 『광기의 역사』를 언급할 때, 거기서 진정으로 문제였던 것은 광기를 둘러싼 지식의 양태라기보다는 광기에 행사되는 권력의 양태였다고 회괴적으로 총괄하고 있다[[<pouvoir et savoirs>, no 216, 1977. 402.] 4.5.5. 푸코는 광기를, 그것을 인식함으로써 인식이 주체가 변형되는 한계 경험이라고 자리매김한다. 인간은 광기라는 한계 경험을 하나의 인식 대상으로 변환함으로써, 그것과 상호적인 형태로 자신을 인식 주체로서 구성하는 것이다. 광기란 "그것의 주위에서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된 대상이 구축되는 일련의 합리적인 집단 경험"[푸코와의 인터뷰, n0 281, 198-, 874.]이다. 여기서 푸코는 '한계 경험에 의한 주체의 변형'과 '지식의 구성에 의한 주체 자기 자신의 변형'을 모종의 방법으로 포개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푸코와의 인터뷰, no 281, 1980, 874.] '지식'savoir이라는 말은 "주체가 인식하는 바로 그 사항에 의해, 또는 더 정확하게는 주체가 인식하기 위해 행하는 작업 당시에, 주체가 어떤 수정을 겪는 과정"[Ibid., 876.]이다. 지식의 운동이란 주체를 수정하는 동시에 대상을 구축할 수 있게 해주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6. 보론: 고백과 복종 세례

4.6.1. 80년의 『생명체들의 통치에 관해』 강의에서는 "자기 배려의" 황금시대로서의 헬레니즘-로마 시대 뒤에 온 기독교의 진리의 절차를 자세하게 검토한다. 거기서 문제되는 것은 진리를 말하는 행위로서의 '고백'고 타자에의 예속으로서의 '복종' 사이의 연결이다. 즉, 거기서 진리는 어디까지나 예속화의 귀결로서 산출되는 것이다. 이 보론에서는 푸코가 높이 평가하는 '자기 배려'를 이면에서 조사한다는 의미에서, 이 시기에 주체와 진리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했는가에 관해서 푸코 자신의 서술에 의거하면서 확인하고자 한다. 4.6.2. 원시 기독교에서의 진리의 절차로서 특히 중요한 것으로, '세례'라는 의례 행위가 있다. 그것은 그 전체가 다양한 단계를 거쳐서 진리에 이리는 길, 즉 '진리의 사이클'이 되는 의례이다[CV, P. 104.] 이 원시 기독교에서의 진리의 절차에 결정적으로 새로운 계기를 마련한 존재는, 2세기부터 3세기에 걸쳐 활동한 신학자 테르툴리아누스이다. 그 전까지 기독교 역사에서는 세례에 있어서의 '정화'와 '진리에의 접속' 사이의 관계가 주로 교리문답에 의한 '교육'이라는 형태를 취한다[CV, 112.] 그런데 테르툴리아누스에게서 이 양자의 관계는 '시련'이라는 형태를 취한다. 그 전까지는 세례라는 의례 자체가 혼의 정화를 보증한다고 생각됐던 반면, 그는 이를 부정한다. 반대로 우리는 오히려 세례 전에 이미 정화되어 있어야 하며, 이 정화에 의해서 진리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세례의 중심의, '의례'에서 '정화 행위 자체'로의 이행, 또 이 정화의 내용의, '교육'에서 '시련'으로의 이행, 이러한 이중의 이행에 의해서, 세례 속에서 주체가 맡는 역할은 현격하게 커지게 된다. 푸코는 알레투르기alèthurgie(진리의 표명)의 절차에 있어서 주체에 속하는 부분을 "진리의 행위"acte de vérité라고 부른다. 이 '진리의 행위'의 "가장 순수하고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형태"를 원시 기독교에서이 '고백'의 실천에서 찾아낸다[Ibid., 80.] 이 진리 표명의 절차 속에서 주체는 진리르 밝히기 위한 대리인 역할을 맡게 된다. 4.6.3. 테르툴리아누스에게서 죄와 타락은 악의 요소에 빠져든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혼의 내부에 악이 요소가, 즉 악마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있다. 푸코에 따르면, 그에게서 처음으로 "세례 때란 위기의 때이자 재앙의 때이"라는 사고방식이 나타난다고 한다[CV. 122.] 이로부터 테르툴리아누스는 세례에 있어서의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 있어서 근본적인 것으로서, 메투스, 즉 두려움의 감정을 꼽는다. 그것은 자기의 순수성을 확신하지않는 것이며, 또 자기의 구제를 확신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불확실성, 불안은 신앙의 감정의 근원이 될 것이다. 푸코는 이 메투스의 의미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이 두려움이 2세기와 3세기의 전환점 이후의 기독교에 뿌리를 둔 것이며, 또한 그것이 주체성이라 불리는 것(즉,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 자기에 대한 자기의 실천, 개인이 자기 자신의 근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진리 같은 것)의 전체 역사에 있어서, 이보다 더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CV. 124.] 테르툴리아누스는 세례 준비를 '파에니텐티아에 디시플리나'Paenitenitiae disciplina, 즉 '회개의 규율'이라고 지칭한다. 그는 다음과 같은 발상을 한다. "만약 세례를 준비할 때가 디시플리나 파에니텐티아에, 즉 회개의 규율이라면, 기독교의 삶 전체도 회개임에 틀림없다."[CV.128.] 이 발상은 푸코가 특히 주목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회개는 어떤 목적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며, 기독교도의 삶은 이 즉자적인 회개에 바쳐지는 것이다. 지도와 복종의 역설 관계 4.6.4. 푸코는 테르툴리아누스는 『생명체들의 통치에 관해』 강의 종반부에서, 4세기부터 5세기의 기독교 수도사 요하네스 카시아누스의 저작을 참고하면서 주로 4세기 이후 기독교의 내부에서 자기의 실천이 어떠한 변화를 이루게 되었는지를 말한다. 거기서 특히 강조되는 것은 수도원에서의 '지도'라는 행위이다. 이 '지도'는 고대 철학의 그것과는 성질을 크게 달리하는데, 왜냐하면 거기에서 무엇보다 '복종'이 중시되기 때문이다. 수도원이란 이 태도를 양성하기 위한 기관이나 다름없었고 또 이 목적을 위한 방법으로서 이용되는 것이 바로 고백의 실천이다. 푸코는 기독교의 지도가 '완전히 복종하다'와 '아무것도 숨기지 않다'라는 두 개의 의무로 성립된다고 정리한다. "복종하는 것과 말하는 것, 철저하게 복종하는 것과 자신에 대해 철저하게 말하는 것, 타자의 의지 아래에 있는 것과 자신의 혼의 모든 비밀을 담론에 의해 뒤쫓게 하는 것, 자신의 혼의 비밀이 빛에 비춰지는 것과 이 조사 속에서 타자에의 복종이 전면적이고 철저하고 완전한 것이 되는 것, 여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근본 장치가 주체, 타자, 의지, 언표화 사이에 매우 특별한 관계가 있습니다."[CV, 260~1.] 4.6.5. 고대 철학과 기독교에서 지도가 지닌 성질상의 차이. 푸코는 세 가지 성질을 대조한다. 1) 고대의 지도의 세 가지 성질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것은 '한정적이고 도구적'인 것이었다. 거기서의 복종은 명확히 정해진 목적을 위해서 행해지는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복종이란 어디까지나 거기에 이루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둘째, 그것은 경우에 따라 경험이거나 지혜이거나 신적인 힘이기도 하지만, 지도하는 자와 지도되는 자 사이에는 본성상의 차이가 없으면 안 되었다. 셋째, 그것은 '잠정적인 것'이었다. 지도에서의 최종 목표는 더 이상 지도자를 필요로 하지 않고 자신이 자신의 지도자가 되는 그런 단계에 이르는 데 있으며, 지도란 이를 위한 한 걸음에 불과했다[CV, 261.] 2) 기독교에서의 지도. 우선 그것은 '잠정적인 것'이다. 기독교의 세계에서는 신도들은 적어도 이승에서는 결정적으로 구제되는 것은 결코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서는 절대적인 불확실성이 존하며, 사람들은 평생 악마의 위협에, 즉 타락의 가능성에 계속 노출된다. 그래서 지도하는 것과 지도를 받는 것을 양립시키는 것이 항상 요구된다. 지도에는 원칙적으로 끝이 없다. 여기에서 푸코는 기독교에 있어서 "복종은 인생의 한 가지 통로가 아니다"라고 간주한다. 그것은 통로가 아니라 하나의 상태. "누구나 인생의 마지막 때까지 거기서 자신을 발견하는 상태"이다[CV, 263]. 기독교의 지도는 고대의 그것처럼 '한정적이고 도구적인' 것이 아니다. 거기서 복종은 어떤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행해진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자체가 목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회개의 삶, 즉 삶 전체로 연장된 회개의 즉자성과의 유사점. 또한 기독교의 지도는 고대의 그것과 달리, 지도자의 능력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푸코가 읽는 카시아누스에 따르면, 복종의 관계는 지도자가 지닌 어떤 장점에 의해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지도자가 아무리 무능하거나 또는 인격적으로 뒤떨어져 있다고 해도, 그런 사실이 복종의 의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기본적으로 없다. "지도 관계에 있어서 유용한 것은 복종관계라는 형식 자체입니다."[CV. 264.]라고 푸코는 말한다. 복종이란 '타자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며, 그래서 "복종 상태는 이른바 타인과의 다양한 관계에 선행하는 것"이다. 복종이 "지도의 목표인 동시에 지도가 가능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Ibid., 265.]는 것은 이런 뜻이다. 여기에는 복종과 지도의 상호의존, 또는 순환 관계를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에 있어 근본적인 것이 된다. 시험과 고백 4.6.6. 그런데  『생명체들의 통치에 관해』 강의 에서 기독교의 근본 조건으로서 복종 이외에 두 가지 중요한 요소를 꼽는다. 그것은 바로 시험과 고백이다. '복종'(타자가 말하는 것을 듣는 것), '시험'(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 '고백'(자기 자신을 타자에게 말하는 것). 기독교의 지도에서 이 세 가지 원리는 근본 요소로 서로 연결됨으로써 하나의 '장치'를 빚어낸다고 한다[ibid., 284.] 1) 시험:  고대 철학의 시험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다양한 사물의 가치이며, 그런 주체들에 대한 관계였던 반면, 기독교의 시험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기의 내면이며, 의식과 사고이다. "사물들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비밀을 독해하는 것"이 된다[ibid. 294.] 2) 고백: 고백은 시험에 임할 때 사고의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만약 내가 내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입 밖에 내어 말할 수 없다면, 그것은 내 생각이 좋은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 된다[ibid, 299.] 푸코는 이를 '수치의 기준'이라고 부른다. 고백이라는 '행위 자체'는 사고의 선악의 판단기준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고백의 주체의 행위, 즉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만이 문제가 된다. 이 점은 타자의 존재나 타자와의 관계에 의거하지 않는 복종의 성질과도 공통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이 목적은 '디스크레티오'discretio, 즉 일종의 절제라는 '덕'에 의해서 실현된다고 여겨졌다. 푸코에 따르면, '모든 것을 말하는 것', 즉 자신의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빠짐없이 모조리 언어화하는 고백이라는 행위도 이러한 디스크레티오를 확립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한다[ibid., 301.] 이렇게 해서 '자기의 진리의 생산'(고백)은 '자기의 단념'(복종)과 결합된다. 이렇듯 기독교에서 요구되는 것은 복종을 위한 고백, 즉 "예속화를 위한 진리'였다. 거기서 진리는 주체를 예속화하기 위한 힘으로서 기능한다.반면 '자기 배려'에서 요구되는 것은 '주체화를 위한 진리'라고도 말해야 할 것이다.

 

제3부 바깥의 미학

이제부터는 지금까지의 고찰을 바탕으로, 후기 푸코의 주체론 및 예술론이 전기의 예술론에로 통하는 '바깥'의 양태를 탐색한다. 이 작업의 실마리가 되는 것은 '실존의 미학' 개념이다. 이 개념은 '생명정치' 개념과 표리일체이며, 이에 대한 응답으로도 제기되었다. 즉, 2부에서 본 주체와 권력의 관계에서도 짐작가능하듯, 그것은 '생명정치'에 있어서 어떤 주체의 양태가 가능한가에 대한 푸코의 구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말년의 작업은 우선, 고대 그리스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대상으로 한, 이른바 '윤리의 계보학'이라고 총괄할 수 있다[A propose de la généalogie de l'étique, n0. 314. 1984.] 이 고대 그리스의 윤리에서 추구되는 '본질적 목표'는 미학적 차원에 속했다는 푸코의 말에도 불구하고, 이 '미학'이라는 말의 사정거리에 관해서는 충분히 검토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5장에서는 '윤리적인 것'과 '미적-감성적인 것'의 교차 지점을 '실존의 미학'이라는 개념 속에서 상정함으로써, 그의 주체론을 미학의 관점에서 재파악하고자 한다. "자신의 삶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한다"는 푸코의 주체론에는 바로 '윤리적인 것'과 '미적-감성적인 것' 사이에서 생성하는 주체를, 주체화의 계기를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 '실존의 미학'

5.1.1. 푸코는 말년에 행한 인터뷰에서 오늘날의 인터뷰에 대해 다음과 같은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저를 놀라게 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예술이 대상들과 더 많이 관계를 맺으며, 개인이나 삶과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술은 하나의 전문화된 영역이며, 예술가들이라는 전문가들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개인의 삶이 예술 작품일 수 없을까요? 왜 타블로나 집은 예술의 대상인데도 우리의 삶은 그렇지 않은 걸까요?"[[A propose de la généalogie de l'étique, n0. 314. 1984, 1346.] 그는 고대 그리스의 '자기 배려'의 체계 속에서 '실존의 미학'을 탐색하게 된다. 먼저 얘기되는 것은 자신의 삶을 소재로 삼아 작품으로서의 자기를 만들어 나가는 삶의 방식이다[ibid., 1448~9.] 5.1.2. 자기의 작품화, 그것은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실존의 기법'이 주요한 역할을 맡는다. 푸코는 '실존의 미학'과 관련된 모든 실천을 '실존의 미학의 기법'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반성되고 자발적인 실천들을 의미하며,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서, 품행의 다양한 규칙들에 의해 스스로를 정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스스로 변형하고 특이 존재로 스스로 변경하고, 그리고 자신들의 삶을 어떤 미적 가치를 띤 양식적 기준에 부응하는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려고 앴는 것이다."[푸코,  『쾌락의 선용』, 18; Le souci de la vérite>, 350, 1984, 1490.] 5.1.3. 또한, 여기에서 말하는 '실존의 기예', 즉 자신에 의한 자기에의 작업[작동걸기], 또 그것을 통한 자기의 변형이라는 실천은 푸코에게 진리라는 문제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주체는 그 자체로는, 즉 자신에게 주어져 있는 것으로는 진리에 이를 수 없는 것, 이것은 일반적 특질이며 근본 원리이다. 주체를 진리에 이를 수 있게 만드는 몇 가지 조작을, 몇 가지 변형과 수정을 자기 자신에게 대해 작동시키지 않는다면, 실행하지 않는다면 주체는 진리에 이를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근본 테마라고 생각한다."[푸코, 『주체의 해석학』, 182~3.] 여기에서는 진리의 인식과 자기에의 작동을 통한 자기의 변형이라는 주제 사이의 연결을 인식할 수 있다. 진리에의 도달과 자기에 의한 자기의 정립 작업 사이의 연결은 "고대 사상 및 그 미학적 사고에 있어서 본질적"이다[A propose de la généalogie de l'étique, n0. 314. 1984, 1449.] 또는 푸코는 이 강의의 다른 대목에서는 고대에 중시된 지식이 '에토스 제작적인'éthospoétique 성격을 가졌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것은 에토스를, 즉 삶의 양태를 변형하고 다른 식으로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여기서도 또한 삶의 양태를 변화시키는 것으로서의 진리라는 인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존의 미학'에서 진리가 중요한 문제인 것은 바로 이러한 진리와 삶 사이의 내재적-본질적인 연결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5.1.4. 푸코는 '파르레시아'라고 분리는 언어 실천을 논하는 가운데, 주체와 진리 사이의 관계를 재고하게 된다. 그것은 '진리진술'이라는 언어 행위다. 푸코가 고대 그리스에서의 진리의 인식과 자기의 실천 사이에 밀접한 관계를 상정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언어 행위에 머물지 않고, 더 넓게 진리와 주체 사이의, 또는 진리와 삶 사이의 결절점으로 파악할 수 잇으며, 또 이러한 의미에서 그것은 그가 말하는 '실존의 미학' 에서도 중요한 개념이 된다고 짐작할 수 있다.

2. 진리와 삶.

5.2.1. 푸코는 파르레시아를 『진리의 용기』라는 강의에서 다룬다[콜레주드프랑스, 1984.] 푸코는 『자기와 타자들의 통치』 후반부에서부터, 특히 플라톤의 여러 저작을 집중적으로 검토하면서 파르레시아에 대한 고찰을 진적시킨다. 이 해의 강의에서는 중반 이후 『라케스』를 다루고, 파르레시아, 즉 "진실 말하기'dire-vrai와 삶 사이의 관계를 고찰한다.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는 대화자에게 '자기 자신을 설명하기'를 요구한다. 거기서 설명되어야 할 것, 즉 소크라테스의 파르레시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삶의 양태'mode de vie이다. 거기서의 '진실 말하기'의 역할은 삶에 어떤 형태를 부여하는 데 있다고 간주된다. 푸코는 라케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거기서 이 담론의 진정성을 보증하는 것이 담론과 극서을 내뱉는 인간의 삶의 조화라고 간주됨을 보여준다. 이렇게 '자기의 설명'은 삶의 양태 수준에서의 '자기의 창설'로 실현된다. 여기에는 '자기의 설명'이 비오스bios로, 나아가 우리가 이 삶을 다스리기 위한 방법으로 이르게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푸코는 『진리의 용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가 여러분께 보여드리려고 한 것은 소크라테스적 파르레시아의 출현과 확립에 의해 어떻게 실존bios이 그리스의 사유 속에서 미학적인 대상으로서, 미학적 정교화의 대상으로서 그리고 미학적 지각의 대상으로서(즉 아름다운 작품으로서 비오스로서) 구성되었는가입니다[CV, 149.] 5.2.2. 푸코가 소크라테스의 파르레시아에 주목하는 것은, 거기에 '실존의 기에와 참된[진실의] 담론, 아름다운 실존과 참된 삶(진리에 있어서의 삶, 진리를 위한 삶)사이의 관계가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소크라테스 안에서 '진실 말하기의 요구와 실존의 미의 원리가, 자기에의 배려 속에서 연결되는 순간/계기'[CV, 151.]를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푸코에게 소크라테스의 파르레시아는 '참된 삶'과 '아름다운 삶'의 양자를 이른바 미분화된 상태에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푸코는 이어서, 이런 '진실 말하기'와 삶의 양태 사이의 관계라는 테마를 둘러싸고 퀴니코스파의 실천을 다루게 된다.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퀴니코스파에게서도 그 진실 말하기를 담보하는 것은 삶의 양태이다. 하지만 퀴니코스파는 '인간성'의 전선을 넘어서 내달리며, 그 피안을 관찰한 후에 돌아와서 거기에서 알게 된 진리를 두려움 없이 사람들에게 알리는 자들이다. 5.2.3. 진실 말하기와 삶의 양태 사이의 긴장 관계. 푸코는 전자에 대한 후자의 기능을 세 가지 꼽고 있다. 첫째 '도구적 기능'. 즉, 이런 삶의 양태는 진실 말하기에 대한 '가능성의 조건'이라는 역할을 닽고 있다. 둘째 '감축의 기능'. 그것은 합리적인 근거 없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쓸모없는 의무나 관습, 그런 진리의 출현을 막는 것을 감축하는 것. 셋째 '시험의 기능'. 그것은 필요 최저한의 것으로 구성된 삶 속에서 인간 삶의 기초가 무엇인지를, 즉 삶의 본질을 나타내는 데 도움이 된다. 푸코는 '삶의 삶 자체로의 환원'이라고 부른다IBID. 159.] "퀴니코스파는 삶을, 실존을, 비오스를 우리가 알레투르기, 진리의 표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삼는 것입니다."[Ibid.] 퀴니코스파적 삶은 소크라테스적 미덕과는 정반대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삶의 형태를 취하지만 둘은 진리와 삶 사이의 연결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여기서 푸코는 퀴니코스파적인 삶에 진리의 보다 직접적이고 급진적인 표명을 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퀴니코스파의 '진리의 스캔들'이라는 표현. 푸코는 퀴니코스파적인 '진리의 표명으로서의 삶'의, 즉 그 '참된 삶'의 본질을 '삶 속에서, 삶에 의해 진리의 스캔들을 행하는 것'[ibid. 161.] 속에서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3. '참된 삶'과 예술

5.3.1. 푸코는 삶의 퀴니코스파적인 양태를 계승하는 후계자들에 관해 주로 세가지로 나눠서 논하고 있다. 첫째, 종교적인 운동(기독교의 금욕주의)과 정치적 실천(실존의 스타일로서의 혁명)라는 두 가지 매체다. 중세의 종교 운동과 19세기 이후의 정치 실천이라는 퀴니코스파의 두 흐름에 대하여 논의한 후, 진리의 스캔들로서의 삶의 양태라는 테마를 계승한 세 번째의 커다란 매체로 푸코가 제시하는 것이 바로 예술, 특히 근대 예술이다. 고대에도 중세에서도 퀴니코스파적인 예술이 존재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여기서 푸코가 특히 근대 예술에 주목하는 것은 거기에 퀴니코스파적인 삶의 매체, 즉 삶과 진리를 연결하는 원리의 매체로서의 현저한 특징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5.3.2. 푸코는 그 특징을 주로 두 가지로 꼽는다. 첫째, 18세기 마루터 19세기에 걸친 '예술가의 삶'이라는 개념의 출현과 관련. 이 '예술가의 삶'이라는 개념은 조르조 바자리의 『예술가 열전기』과 벤누토 첼리니의 『자서전』에서 볼 수 있는, 그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특이한 삶을 사는 예술가"라는 생각과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예술가의 삶이, 그것이 취한 형태에 있어서 '진리의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명백하게 증명한다는 사고방식이다. "예술가의 삶이 작품을 창조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하게 특이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의 삶이, 이른바 그 진리 속에서 예술 그 자체의 표명이어야 하는 것입니다."[ibid., p. 173.] 5.3.3. '예술가의 삶'이라는 이 테마는 두 가지 원리에 의거한다. 첫째, 예술은 존재에 대해 다른 것과는 상이한 어떤 특이한 형태를, 즉 참된 삶이라는 형태를 줄 수 있다는 원리이다. 둘째, 이 참된 삶의 형태를 부여받은 존재는 이번에는 자신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모든 작품이 예술의 계보 및 영역에 속하도록 담보한다는 원리이다. 둘째, 이 참된 삶의 형태를 부여받은 존재는 이번에는 자신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모든 작품이 예술의 계보 및 영역에 속하도록 담보한다는 원리이다. 푸코에 따르면 이 예술작품의 조건, 예술작품의 진정성의 증거로서의 예술가의 삶이라는 사고방식이야말로 진리의 스캔들로서의 삶이라는 퀴니코스파의 원리를 계승한 것이라고 한다. 5.3.4. 푸코에 따르면 근대 예술이 퀴니코스파의 매체라고 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근대에서 예술은 그 표현을 통해 존재의 요소적인 환원, 즉 그 '벌거벗음'이라고도 할 수 있는 차원에 급속하게 접근하게 된다.  여기에는 퀴니코스파의 삶의 양태 그 '삶의 삶 자체로의 환원"이라는 말에 단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삶의 미니멀한 본질에 대한 지향과 상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19세기가 되자 이런 경향을 더욱 강화하게 된 예술은 그때까지 표현될 수 없었던, 이른바 '표현의 권리'를 갖지 못했던 '차원 낮은 것'의 침입의 장이 된다. 푸코는 근대 이후의 예술에 특히 이런 성질이 있음을 인정하고, "존재의 벌거벗은 요소의 침입의 장으로서의 예술"이라고 부른다[ibid., 174.] 푸코는 이런 성질을 지닌 근대 예술을 '문화에 있어서의 퀴니코스주의'라고 부른다[ibid., 174.] 그것은 이른바 '문화적인 합의'에 대해서, 거기로 환원될 수 없는 진리를 대립시키는 진실 말하기의 형태이다. 푸코는 근대 예술에 진리의 표명과 연결된 삶의 양태로서의 퀴니코스주의의 역사가 있다고 인식한다.

4. 개별적이고 전체적인 변화

5.4.1. 퀴니코스파 실천의 핵심은 진리와의 관계에 있어서 자기의 삶을 배려하는, 즉 '자기 배려'를 행하는 데 있었는데 여기서 푸코가 한 가지 더 주목하는 것은 퀴니코스파의 배려가 이렇게 자기로, 그리고 자기 자신의 삶으로 향하는 것만은 아니라 동시에 타자의 삶으로도, 그 진리와의 관계로도 향한다는 것이다. "타자를 배려함으로써 실제로 퀴니코스파는 그 타자들 속에서, 인류 일반에 속하는 것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 그들이 동시에 자기 자신을 배려하는 것은 그들 또한 그 인류에 속하기 때문입니다."[ibid. p.286.] 요컨대 퀴니코스파가 배려하는 것은 각각의 타자의 개별적 삶이라기보다는 그 자신도 그 일부인 '인간성 전체'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타자 배려는 자기 배려와 완전히 일치하게 된다. 자기 배려는 자기에의 작동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변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에토스 제작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었다. 거기서는 어떤 '변화'가 목적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이런 '변화'라는 관점에서 볼 경우 여기에서 발견되는 자기 배려인 동시에 타자 배려이기도 한 행위, 즉 "인간성 전체'에 대한 배려가 목적으로 하는 변화는 더 넓은 의미를 갖게 된다. 그것은 우선 개별적인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지만, 그것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세계의 일반적인 짜임새에 있어서의 변화'에도 이르는 것이다. 이렇듯 퀴니코스파는 개개인의 삶에 대해서, 참된 삶인 다른 삶으로의 변화를 목표로 한다. 퀴니코스파는 참된 삶이란 평범한 삶과는 다르다는 원리를 공유하고 있다. 5.4.2. 이렇게 퀴니코스파는 개별적인 삶의 변화를 목표하지만 이 변화에의 의지는 그저 개개인으로 향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이른바 '전체 인간'으로 향하며, 이런 의미에서 최종적으로 '세계전체의 변화'에까지 이른다고 푸코는 본다[ibid., 288.] 그는 퀴니코스파의 삶을 특징짓는 진리의 실천의 최종 목적은 개체와 전체를 동시에 변형하는 데 있다고 결론짓는다. "세계가 자신의 진리에  합류할 수 있다는 것, 세계가 자신의 진리 속에 있는 것과 합류하기 위해 스스로를 변형하고 다른 것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은 [개별적인 삶의] 어떤 변화, 어떤 완전한 변질, 우리가 자기에 대해 맺는 관계에 있어서의 변화와 변질을 대가로 합낟. 그리고 자기의 자기로의 회귀 속에, 자기 배려 속에 퀴니코스파가 약속한 이 다른 세계로의 이행의 원리가 발견되는 것입니다."[ibid., p. 28.]

5. '실존의 미학'의 사정거리 '실존의 미학'의 개요

5.5.1. 푸코가 고대 철학에서 찾아낸 '실존의 미학' 개념에 으해 제시되는 것은 우선 자기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삶의 방식이다. 그것은 자기에의 작동에 의한 자기 자신의 변형, 즉 '자기의 포이에시스'로 향하는 삶이다. 거기에는 자기의 실천에만 머물지 않는, 더 큰 대상에 대한 작동을 통한 변화도 내포되어 있다. 그것은 자타의 구별을 넘어선 곳에 있는 변화이며, '세계의 일반적인 짜임새에 있어서의 변화'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위해 요청되는 것이 진리라는 계기였다. 거기서 삶의 변용이 요구되는 것은 진리에의 도달이라는 목적 때문인 것이다. 여기에서는 삶과 진리 사이의 관계를 둘러싸고 이루어진 어떤 미학적인 실천을 인식할 수 있다. 푸코는 진리를 아는 것에 의한 자기의 변형을 '미학주의'의 한 형태라고 부른다[Une interview de Foucault par Stephen Riggins>, 336. 1983, 1351.] "자신의 고유한 지식에 의한 자기의 이런 변형은 미학적 경험과 매우 가까운 어떤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신의 그림에 의해 변형되지 않는다면, 왜 화가는 작업을 하겠습니까?"[ibib., p.1355.] 5.5.2. 이런 의미에서 푸코에게 '자기의 통치'로서의 '실존의 미학'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이런 '개벌적이고 전체적인' 통치의 문제, 특히 생명정치 문제와의 밀접한 연결 속에서 짜여 온 것이다. '실존의 미학'으로 상징되는 그의 말년의 주체론이, 가령 그의 '작품으로서의 삶'이라는 말에서 연상되는 '개인으로서의 자기'로의 회귀와는 근본적으로 이질적인, 더 넓은 사정거리를 갖춘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들뢰즈는  푸코에게서의 '자https://www.iloom.com/upload/product/20170928/S200_58dc3216-e45f-4feb-84d1-81d06285b1e4.jpg기'를 다양한 집단 및 개인과 관련된 개체화의 과정"으로 규정하고, 이 과정이 힘들의 고착적인 관계로부터, 이미 만들어진 지식으로부터도 벗어나는 것임을 지적했다[들뢰즈, <장치란 무엇인가?>, 『광기의 두 체제』 , 2003. 318.] 푸코는 예술에 대해서도 이 삶과 진리의 연관에 끌어들이는 형태로 말했다. 그곳에서는 예술을 통해 삶이 진리와 연결된다. 즉 '참된 삶'이 되며, 또 이 참된 삶이 이번에는 예술의 참됨을 담보하게 된다는, 이른바 예술과 참된 삶의 구조에 대해 언급됐다. 거기에서는 참된 삶의 매체로서의 예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규범의 재활성화라는 관점에서부터 말하기도 했다. 즉, 참된 삶의 표현인 예술은 현실을 다른 것으로 변환하는 힘에 의해서 문화 및 규범의 고착화를 막고 그것을 영속적으로 재활성화하는 효과를 지니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역사적 존재론'으로서의 자기의 포이에시스 5.5.3.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논문에서 푸코는 계몽을 둘러싼 칸트의 논의를 출발점으로 삼아서 자기의 포이에시스를 "우리 자신의 역사 존재론"이라고 규정한다[푸코, 같은 글, n0 339, 1984, 1393.] 이 논문에서는, 그의 논의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단순한 추상 형태로서의 주체가 아니라 시간성이라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른바 역사적 주체에 다름없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핵심은 '현재'라는 시제다. 또 이 '현재'와의 관계 방식으로서의 '현대성의 태도'라고 불리는 것이다. 푸코는 그곳에서 자기에의 작동을 통해 문제가 되는 것은 "현재란 무엇인가?", 그리고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현대성'은 '하나의 태도'를 의미한다[1387.]  즉 그것은 '현재성'actualité에 대한 관계 맺기의 양태이며, '사고방식이나 느기는 방식, 또한 행동거지나 행동방식'이며, 요컨대 하나의 '에토스'라고도 말해야 할 것이다. 5.5.4. 보들레르에게서 '현대성'이란 우선 시간의 흐름을 뒤다라갈 뿐인 '유행'mode와는 구별된다. 반대로 그것은 "현재의 순간 속에서 '영웅적'인 것을 포착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태도"[Ibid, 1388.]이다. '현대성의 태도'에 있어서는, '현재'가 가진 높은 가치는 '현재'를 지금과는 다른 형태로 상상하며 이를 변형하려는 열정과 떼어놓을 수 없을 것이다. "보들레르적인 현대성이란 현실적인 것le réel에 대한 극도의 주목이 이 현실적인 것을 존중하며 동시에 이를 위반하는 자유의 실체에 대면하는 그련 수련이다. 5.5.5. 여기서 분명해지는 것은 현재를 끊임없이 변형함으로써 현재의 영웅화가 수행될 수 있다고 하는 '현대성의 태도'에서 보이는 모종의 양가적인 성질이다. 푸코가 주목을 촉구하는 것은 보들레르에게 현대성이 '현재'라는 '때'와의 관계에 머물지 않고, 거기에서 살아가는 자기 자신에 대한 관계도 내포한다는 점이다. 이때부터 현대적이란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복잡하고 어려운 다듬기의 대상으로 삼는 것과 다름없다는 테제가 도출된다. '현대적 인간'은 "자기를 스스로 창출하려는 인간"이다[ibid.1390.]  이렇게 현재라는 시제에 대한 관계 방식은 '현재의 자기'에 대한 관계 방식으로서 초점화된다. '현재의 영웅화', '자유와의 놀이에 의한 현실적인 것의 변형', '자기의 다듬기', 위와 같은 것들이 보들레르적인 '현대성의 태도'의 구성요소이다. 푸코는 그 근저에 "하나의 태도의, 즉 하나의 철학적 에토스의 항상적인 재활성화"를 찾아내고, 그것을 "우리의 역사적 존재의 항상적인 비판"이라고 부른다[ibid., p. 1390.] 그것은 "우리 자신의 역사적 존재론을 통한, 우리가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행하는 것에 대한 비판"[1392.]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현대적'이기 위해서는 우리가 '현재의 우리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그것을 만들고 바꿔나갈 필요가 있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현재의 우리의 영웅화'에 다름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포이에시스가 동시에 하나의 역사적 존재론이기도 하다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이다. 현재성의 문제화로서의 철학 5.5.6. '현재성의 문제화로서의 철학'[Polémique, politique et problématisations>, no 342, 1984, 1412.] 거기서 철학자는 스스로 거기에 속하고 그것과의 관계에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는 현재성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문재화'는 "정치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실들, 실천들, 사고들로 이루어진 영역의 정교화"이며, 이리하여 물음으로 정교화함으로써 실현해야 할 것은 우리의 장래적인 형성이다. 현재에 대한 질문이 미래를 형성한다는 시간적인 관점이 도입된다는 것에도 주목할 수 있다. "'우리'가 질문에 선결되어야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용어들 속에서 제기되는 것으로서의 질문의 결과(필연적으로 잠정적인 결과)에 다름 없습니다."[1413.] 즉, 현재의 '우리'에 대한 질문 던지기가 미래의 '우리'를 형성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셈이지만, 이 미래의 '우리도' 결코 확정적인 것이 아니며, 더 미래의 '우리'의 형성에 이바지하기 위한 '잠정적인 결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현재의 우리'를 끊임없이 변형함으로써 '현재의 우리의 영웅화'가 성취될 수 있다고 하는 '현대성의 태도'와 통한는 것이 있다. 푸코의 주체론은 그 역사론과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 현재의 우리는 과거의 우리가 던진 질문의 결과인 동시에 미래의 우리를 낳는 다너가 된다. 이런 시간 연쇄로서 주체를 바라보는 관점, 주체의 생성에 시간성을 도입한 것은 푸코의 주체론이 시간으로부터 분리된 보편 주체가 아니라  그것과 하나가 된 역사 주체를 다루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실존의 미학'에서 만들어진 주체 역시 이와 같은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6. 파르레시아로서의 예술

 예술을 통한 삶의 변용 5.6.1. 푸코는 '실존의 미학'을 고찰하는 가운데 삶에 있어서의 진리의 현전을 다양한 일상 행위 안에서 찾고 있는데, 그 안에는 예술의 제작 행위도 포함된다. 푸코가 말하는 '실존의 미학'에서 출발해서, 삶의 포이에시스뿐만 아니라 이런 예술, 또는 더 넓은 '미적-감성적인 것'을 통한 상호관계로 이루어진 변형의 총체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푸코의 말년의 예술론에는 제작자뿐만 아니라 수용자의 '예술과 삶의 연결'에 관한 언급도 보인다. 푸코는 피에를 두레이즈와의 대담에서 이른바 '학계적인' 음악과는 다른 록 음악의 가능성에 대해 말하는데, 거기서 그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이 음악과 우리의 삶 사이의 깊은 연결이다. 그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의 생활의 일부가 되었으며, 록을 애호하는 것, 또 어떤 장르의 록을 애호하느냐는 것은 하나의 '삶의 방식'의 문제, 또는 '저항'의 방식이 된다고 한다. 푸코는 록이, 그 자체로는 '가난한' 음악이라고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통해 청중이 자기를 명시하는 것인 한에서, 그것이 '취미와 태도의 하나의 총체'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Foucault/Pierre Doulez. La musique contemporaine et le public>, no 333, 1983, 1309.] 푸코와 가타리 5.6.2. 가타리는 푸코의 '실존의 미학'을 그 이후에 독자 계승한 존재이다[가타리에게서의 주체화의 '미적 패러다임'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Nicolas Bourriaud, Esthétique relationnelle, op. cit., pp. 90~198; Maurizio Lazzarato, Expérimentations politiques, Paris, éditions Amsterda 2009, pp. 186~197.] 가타리는 라 보르도 정신병원을 '집합적 주체화'의 장소로 자리매김한다[가타리, 『카오스모제』, Paris. Galilée, 1992, 18.] 가타리에 따르면 거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환자의 주체성의 단순한 재모델화(정신적 위기를 경험하기 이전의 그것의 재건)가 아니라 그 '독특한 생산'이다. 5.6.3. 가타리는 거기서 행해지는 '주체화'의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개인=집단=기계=다양한 교환'을 통해서 주체성의 복합체를 만들어가는 것이며, 이 복합체는 각자에게 "실존적인 신체성을 재구성하고 [...] 스스로를 재특이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가능성"[ibid. 19.]을 부여한다. 그것은 또한 주체성 속의 '이미 있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의 창조에서 출발해서 진행하는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모종의 '미적 패러다임'에 속한다. "우리는 조형예술가가 팔레트를 자유로이 구사해 새로운 형태를 창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체화의 새로운 양상을 창조한다."[IBID.] 가타리는 '실존의 영역'이 "미적 질서를 갖춘 자율성의 차원"에 속하는 것임을 지적하는 동시에, 주체성을 "과정적인 창조의 차원"으로 파악할 필요성을 호소한다[같은 책, 28.] 가타리에게 '예술'은 이른바 예술가의 활동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성의 창조의 전체'가 관련된 것이다[128.] 그가 말하는 '미적 패러다임'에서 참조되는 것은 '제도호된 예술'이나 '사회 영역 속에서 명시되는 작품'이 아니라 '그 직전에 여원히 생겨나고 있는 창조의 차원, 출현의 힘'이다[142.] "내가 하나의 작품을 '수행'할 때, [...] 내가 하는 것은 복잡한 존재론적 결정화Cristallisation이며, 현존의 이타화이다. 나는 존재에 다르게 실존하도록 명하고, 존재로부터 새로운 강도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IBID. 143.] 5.6.4. 이리하여 '예술에 의한 지도작성법'cartographie artistique은 개별적-집합적 주체성의 결정화에 있어서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그것은 예술의 제작자와 수신자 쌍방의 주체성을 개편하고 주체를 자신의 재창조-재발명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5.6.5. 푸코는 말년의 주체론에서 진리의 삶의 깊은 연결에 주목하고, 예술을 이 연결의 표현이라고, 또는 경첩이라고 논했다. 푸코가 말하는 파르레시아는 일차적인 의미에서는 진리=말이라는 언어 행위를 가리키지만, 이것이 더 넓게는 이런 진리와 삶의 연결을 구현하는 것임을 감안한다면, 예술 역시 일종의 파르레시아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위와 같은 것을 토대로 푸코에게서의 '미학'의 의미로 돌아간다면, 이런 파르레시아로서 예술을 놓고 펼쳐지는 다양한 삶의 관련성 자체를 하나의 미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6장 생명을 적어두기/생명을 고쳐 쓰기: 기록과 진리

1. 휘폼네마타와 서한 휘폼네마타: 단편적인 로고스에 의한 주체화

6.1.1. 푸코는 후기의 다양한 텍스트에서 '실존의 기예'에 있어서의 에크리튀르(자기 및 타자를 위해 쓴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푸코 말년의 에크리튀르론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Bernard Stiegler, Prendre soin. De la jeunesse et des générations, Paris, Flammarion, <la bibliogthéque des savoirs:, 2008.] 스티글레르는 자신이 제창한 '마음권력/정신권력psychopouvoir'론의 입장에서 푸코가 70년대에 전개한 생명권력론의 현대적 한계를 지적하면서, 오히려 말년의 에크리튀르론에서 가능성을 찾고 있다.] "자기의 훈련의 요소로서의 쓰기는 에토스 제작적인 기능을 갖고 있다. 그것은 진리를 에토스로 변형하기 위한 조작자이다."[<L'écriture de soi>, no 329, 1983, 1238; 이 점에 대해서는 <주체의 해석학>, no 323, 1982, 1180; <A propose de la généalogie de l'étique, n0. 314. 1984, 1443~7; Le retour de la morale>, no. 354, 1984, 1519.] 6.1.2. 이러한 자기의 실천으로서의 '쓰기'의 중요성 때문에 그는 고대부터 이어지는 이른바 '자아의 문학'의 전통도 자기의 실천의 틀에서 재파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체가 어떤 상징 체계들 속에서 구성된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그것은 다양한 현실의 실천들(역사적으로 분석 가능한 실천들) 속에서 구성된다[<A propose de la généalogie de l'étique, n0. 314. 1984, 1443~7.] 6.1.3. 이런 에토스 제작적인 에크리튀르로서, 푸코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휘폼네마타와 서한이라는 두 가지 형태이다. 휘폼네마타는 장부나 비망록을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거기서 중요한 것은 적어둔 담론이 단순히 '추억의 옷장'에 넣어질 뿐만 아니라, 혼의 심층에 자리잡고, 진정으로 우리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혼을 그런 담론들을 단순히 그 자신의 것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만들어야 한다."[<L'écriture de soi>, no 329, 1983, 1238.] 이로부터 이런 담론들은 '로고스 비오에티코스'logos bioethikos라고 불렸다. 휘폼네마타라는 에크리튀르는 이 담론의 주체화(더 말하자면, '혈육화')에 있어서의 중요 중개자였던 셈이다[ibid.] 6.1.4. 푸코는 그것이 기독교적 '고백'의 전통에 속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거기서 중요한 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나, '감춰져 있는 것'을 밝히는 것이나, '말해지지 않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이미 말해진 것'을 사로잡는 것, 즉 듣거나 읽거나 한 것을 한데 끌어 모으는 것이다. 휘폼네마타의 목적은 교육, 청취, 독서에 의해 전해진 '단편적인 로고스의 끌어 모음'récollection을 최대한 완전한,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를 수립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휘폼네마타를 만드는 것이, 분산된 로고스를 통한 자기의 형성에 도움을 주는 것은 다음에 이유에서다. 우선 휘폼네마타에 의해 자신이 얻은 담론을 문서고화하고, 필요한 때에 곧바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이질적인 담론을 끌어 모으고, 그것들을 그때마다의 '국지 진리'와 '사용 상황에서의 가치'에 의해 통제할 수 있게 한다. 푸코는 그것을 "'이미 말해진 것'의 전통적 권위를, 거기서 뚜렷이 나타나게 되는 진리의 특이성과, 그리고 그 사용을 결정하는 상황의 특수성과 조합시킨다는 숙고된 방식"이라고 표현한다[<L'écriture de soi>, no 329, 1983, 1240.] 거기서는 두 개의 과정이 구별된다. 우선 휘폼네마타라는 행위를 통해 이질적인 단편을 주체화하는, 즉 자신의 신체에 담아둔다는 과정이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 '말해진 것'을 끌어 모음으로써 주체가 자기 자신의 동일성을 만들어낸다는 과정이 있다. 다만 거기서 끌어 모아진 이질적인 요소로부터 만들어진 '읽기'와 그것을 동화 흡수하는 '쓰기'의 작동에 의해 형성되는 것은 그것을 통해 '어떤 정신의 계보의 전체'를 통해 독파해낼 수 있는 동일성에 다름 아니다."[1242.] 이처럼 휘폼네마타라는 것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취사선택된 단편적인 '이미 말해진 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 통합하고 주체화함으로써 자기를 이성적 행위의 주체로 형성하는 것이며, 이리하여 진리는 행동의 원리가 될 수 있다[1249.] 서한: 자기와 타자가 '대면하는' 장 6.1.6. 푸코는 에크리튀르가 자기와 타자에 대해 지닌 이중 기능에 관해서, 서한과 휘폼네마타의 유사성을 지적한다. 또한 세네카를 참조하면서, 자기형성에 있어서의 타자의 역할의 중요성을 지적한다. 즉 자기 배려와 타자 배려의 역할은 상호적인 것이며, 거기서는 바로 "가르치는 자가 배운다"는 것이다. 서한이라는 에크리튀르는 그것은 받는 자의 '자기 배려'를 돕는 동시에, 필자의 '자기 배려'를(그리고 경우에 따라서 그것을 읽는 제3자의 그것을) 돕는 것이기도 했다. 푸코는 편지란 쓰는 자가 받는 자에게 던지는 시선(편지가 수신자를 바라보는)인 동시에, 작성자가 수신자의 시선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수신자가 편지를 바라본다) 방식이기도 한다고 본다. 편지는 양자가 '대면'하는 장소가 되는것이다. 6.1.7. 푸코는 서한이 '자기에 의한 자기의 독해'[또는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의 응시' 및 '타자의 시선의 내면화']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의 '타자에게로의 개방성'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조되는 것은 말하자면, "바깥에서 안으로"라는 방향성에 대한 "안에서 바깥으로"라는 방향성이다. 이리하여 서한에서 타자와의 대면은 상호 감시라는 닫힌 형식이 아니라 상호 열린 협동을 형성하게 된다. 6.1.8 '실존의 기예'로서의 에크리튀르의 두 가지 형태인 서한과 휘폼네마타의 . 푸코가 이 자기의 실천에 대해 거듭 지적하는 것은, 그것이 "외적인 진리의 흡수"를 목적으로 행해진다는 점이다. 거기서 교육, 독서, 조언 등을 통해 얻어진 다양한 진리는 "자기의 일부가 될 때까지, 항상 불변하게 활동하는 내적 행동 원리가 될 때까지"[<주체의 해석학>, n0 323, 1982, 1180.] 동화된다. 자기는 진리 획득 때마다 자기를 변용시키게 될 것이다. '실존의 기예'란 "진리와 주체를 연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술의 총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주체의 해석학'이 아니라 주체가 '자신이 모르는, 자신 속에 존재하지 않는 진리를 익히는 것'이며, '진리를 습득하고 기억하고 점차 실천에 옮김으로써 그것을 우리 속에 절대적인 통치를 행하는 준-주체로 삼는 것'이다[ibid. 1181.] 6.1.9. 정리하면 실존의 기예란 자신의 외부에 있는 진리를 자신의 내부에 기입하고, 그것을 신체화함으로서 '행동의 원리'로 삼는 것과 더불어 자기를 변용시키기 위한 기술이며, 이 과정 전체를 '주체화'라고 부를 수 있다. 서한과 휘폼네마타라는 두 개의 실천은 푸코에게서 이 주체화의 기술의 요체로 자리매김된다. 70년대 이후의 푸콘코는 한번은 에크리튀르의 실천으로서의 힘에 의문을 품고 더 구체적인 행동으로 경도되어 있었지만, 여기에서 에크리튀르는 그 자체로 진정으로 혁명적인 힘을 지닌 실천으로서 재차 자리매김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푸코의 사유 전체와 관련시켜 볼 때 중요한 것은 진리가 '인식의 대상' 이 아니라 '행동의 원리'로서 파악된다는 점이다. 인식의 대상으로서의 진리는 다양한 행동의 '효과'로서만 표출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진리의 '지위' 변화는 푸코의 사상적 변화(그의 권력관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2. '바깥의 경험'으로서의 에크리튀르

6.2.1.푸코 후기의 에크리튀르에서는 단편적인 로고스의 끌어 모음을 바탕으로 그로부터 어떤 실천에 의해 주체를 형성하는 과정이 제시됐다. 그 중에서도 주목되는 것은 이런 논의들 속에서 상정되고 있는 진리가 '말할 수도 없는 것'도, '감춰져 있는 것'도, '말해지지 않은 것'도 아니며, 어디까지나 '이미 말해진 것'에 다름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절에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이미 말해진 것'으로서의 진리와 『지식의 고고학』에서 정의된 '언표' 사이의 공통성이다. 푸코가 휘폼네마타의 소재로 간주한 '교육, 청취, 독서에 의해 전달된 단편적 로소스의 끌어 모음'에는 '누적'이나 '외면성/외부성' 같은 『지식의 고고학』에서 제시된 언표의 특징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6.2.2. 『지식의 고고학』에 따르면 '언표'란 "다양한 지지체에 의해, 다양한 유형의 제도를 따라, 다양한 규약적 양태와 더불어' 잔존하는 것인 동시에, 특정한 주체로 회수되지 않고 '익명적으로 반복되는' 거시었다. 이것들은 그대로 휘폼네마타에 의해 끌어모이진 '이미 말해진 것'의 성질에 합치할 것이다. 푸코는 이런 '이미 말해진 것'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주체의 동일성을, "개별적인 어떤 목소리도 식별할 수 없는" 합창에 빗대고 있다. 블랑쇼가 과거에 썼던 작품에 호소하는 것은, 그런 작품들을 자신 속에 기입하고, 이른바 '내면화'하기 위해서가아니라, 역으로 그런 작품들이 철저하게 우리의 '바깥에' 있다는 것을, 즉 우리와 작품 사이의 '외면성[외부성]'을 제시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블랑쇼는 이미 쓰인 다양한 작품들을 자기 자신 속에, 자신의 주관성 속에서 회복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스스로 망각함으로써, 망각에서 출발해서 이 [과거의] 작품들을 다시 표면에 떠오르게 하는 그런 존재입니다."[Foile, litérature, société>, n0 82, 1970, 993.] 6.2.3. 휘폼네마타에 있어서도, '이미 말해진 것'과 주체 사이에는 이런 외재적인 관계가 있는 것 가다. 물론 그것은 단편적인 로고스를 신체화하고 자기의 행동 원리로 삼기 위한 행위가 있는데, 거기서 선택된 로고스는 결코 주체에 의해 '사유화'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주체에 대해 일정한 외재성/외부성을 유지하고 또한 로고스들끼리도 상호 이질성을 보존하게 될 것이다. 회폼네마타란 끌어 모으기 위해 이질적인 담론을 문서고화하고, 필요에 따라 활용하기 위한 기술이며, 이런 담론들을 상황에 맞게 적용하기 위한 기술이기 때문이다[들뢰즈는 이 '절대적 기억' 또는 '바깥의 기억' 속에서, 바깥은 공간으로서뿐만 아니라 시간으로서도 생각할 가능성을 찾아내고 있다. 들뢰즈, 『푸코』, 2004, 114~5.] 주체는 확고한 통일체라기보다는 오히려 문서고로부터 상황에 따라 인출되는 로고스로, 그때마다 형태를 변화시키는 존재라고 상정된다. 6.2.4. 후기 에크리튀르론에서 푸코는 '언표'와 비슷한 단편적 로고스로부터 형성되는 주체에, 근원적 익명성, 비인칭성을 인정하고 있는 듯이 생각된다. 푸코가 말하는 에크리튀르란 "주체가 더 이상, 그 구성적 관계들에 있어서 주어지는 경험", "주체가 해체하고 자기에 대한 관계를 부수고, 자신의 동일성을 잃는 경험"이라고 말할 수 없을까?

3. '대항-인도'로서의 문학 사건으로서의 담론

6.3.1. 후기의 푸코는 '아카이브'나 '고고학'이라는 『지식의 고고학』에서 제출된 개념을 우리의 삶에 직접 연결되는 것으로서 다시 이야기하고 있다. "제가 담론의 문제에 있어서 흥미를 갖는 것은 누군가가 어떤 주어진 순간에 뭔가를 말했다는 사실입니다."[<Dialogue sur le pourvoir>, no 221, 1978. 468.] 여기서 그는 자신이 밝히려고 하는 것은 "이것이 저 순간에 말해졌다"는 사실에 할당할 수 있는 기능이며, 이를 그는 '사건'événement이라고 명명한다. 푸코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담론을 일련의 '사건'으로 파악한 다음, 이 사건(담론적 사건)이 담론 이외의 사건(정치, 경제와 그 여러 제도 등)과 맺는 관계를 밝히는 일이다. 푸코는 그것을 "다양한 사건을 분간하고 그것이 속한 곳의 네트워크와 수준을 구별하고 이런 사건들을 연결시키고 상호생성을 일으키는 연결을 재구성하는 것"[Entretien avec Foucault>, no 1992, 1977, 145.]이라고 표현하는다. 그는 이 연결을 '장치'dispositif라는 이름으로 바꿔 부르기로 한다[Le jeu de Foucault>, no 206, 1977, 299.] 증요한 것은 담론이 다른 사건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사건에 다름없다는 인식이다. 이런 인식은 하나의 담론을 단순한 추상적인 언어 문제로서가 아니라 그것이 내뱉어진 상황이나 형태와 결부된, 현실적인 존재 양태의 수준에서 다룰 수 있게 해준다. 6.3.2. 푸코에 따르면, 고고학의 사명이란 우선 담론적 사건을 이것이 기록되어 있는 문서고에서 추출함으로써 재구성하는 데 있다. 다른 한편 담론적 사건에 한정되지 않고, '역사적 영역'을 그 전체성에 있어서, 즉 정치, 경제, 성과 같은 모든 차원에서 재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기도 하다. 고고학은 담론적 사건과 다른 사건 사이의 관계를, 또는 담론적 사건들 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것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는 고고학의 최종 목표를 "오늘날의 우리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에 있다고 말했다. 문서고에 똬리를 틀고 있는 사건을 재구성하는 것이 '오늘날의 우리'를 아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런 종류의 사건들이야말로, 또한 그 총체인 문서고야말로 우리의 삶을 성립시킬 수 있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불가피하게 담론적 사건의 문서고와 결부된 존재이며,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존재란 "몇 세기 전, 몇 개월 전, 몇 주 전에 말해졌던 것에 다름 아닌"[Dialogue sur le pouvoir>,no 221. 1987, 469.]것이다. "우리의 사회와 우리의 존재에는 심대한 역사적 차원이 있다"는 그의 역사 인식도 여기에서 유래할 것이다. 순수하게 언어적인 실존 6.3.3. 푸코는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언어적'인 것으로서 파악했다. 그때의 '언어'란 '사건으로서의 담론'을 가리킨다. 이 관점에서 주목받는 것은 <악명 높은 자들의 삶>이라는 78년의 논문이다. 푸코는 70년대에 일반시료원과 바스티유 감옥에 남겨진 수감 고문서로 이루어진 문집을 계획했다. <악명 높은 자들의 삶>은 이 문집을 위한 서문으로 작성된 것이다. 이 문집은 18세기를 살았던 무명이자 악랄한 삶들에 대한 고소장, 고발장, 집행명령서, 보고서 등의 상당수를 수록한 것이며, 그 자체가 하나의 문서고를 형성한다. 푸코가 촉구하는 것은, 이런 삶들이 여러 가지 익명적인 어표로 이루어진 문서고 속에서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그들이 어떤 자인지, 또는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몇 줄의 글 외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 그들은 이런 말들이라는 짧은 거처 이외의 어디에도 존재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것이다."[<La vie des hommes infame>, no. 198, 1977, 242.] 여기에서는 바로 '사건으로서의 담론'만으로 이루어진 삶의 존재를, 그 양태를 인식할 수 있을 것이고 이런 삶들은 또한 푸코가 논하는 '언표'의 성질을 띠는 것이기도 하다. 『지식의 고고학』의 언표 이론을 사용하낟면, 이런 언표들=삶들은 '희소'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긍정적인[실정적인]' 것이 된 언표의 배후에는, 아직 가능성에 머물러 있는 무수한 언표가, 따라서 무수한 삶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6.3.4. 그런데 이런 언표들=삶들은 권력에 의해 남겨진 것이며, 그것이 우리와 마주친 것은 권력의 '변덕[일시성]'을 비롯한 수많은 우연의 결과일 따름이다. "만일 이러한 삶들이 어떤 순간에 권력과 교차하고 그 힘들을 부추길 수 없었다면, 폭력이나 특이한 불행에 있어서 이런 삶들로부터 무엇이 우리에게 남겨질까?"[ibid. p. 241.] 이리하여 '순수하게 언어적실존'이라는 존재 양태에 의해 거의 허구적인 존재가 된 이런 삶들은 권력과의 관계 맺음이 일으키는 '우연'에 의해서 우리에게 전해지게 됐다. 삶이 가장 강렬한 지점, 그 에너지가 집중되는 지점, 이것은 삶이 권력과 충돌하고 그것과 싸우는 지점이며, 그 힘을 이용하려고 하거나 그 올가미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는 지점이다. 권력과 가장 변변찮은 실존 사이를 오가는 짧고 강렬한 날카로운 말들, 필경 거기에야말로 이 변변찮은 실존에 있어서의 유일한 기념물이 있는 것이다. 이런 언표-생명에 대한 푸코의 관심은 분명 고고학적인 것이 된다.고고학의 최종적인  목표를 "오늘날의 우리 자신에 관해 아는 것"에 있다고 푸코는 말한다. 그리고 이런 18세기의 무명이자 악랄한 삶들을, 현대의 우리와("그들보다 더 한 중요성을 갖고 있지는 않은 우리) 무관한 존재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요컨대, 푸코에게 고고학이란 궁극적으로는, "우리 자신의 역사 존재론"에 다름 없다는 것이다 6.3.5. 푸코는 이 무명의 삶이 권력에 의해 담론화된 시기와, 문학 속에서 이런 삶들이 나타나게 된 시기의 공통성을 언급한다. "18세기부터 18세기로의 전환점에서 담론, 권력, 일상적인 삶, 진리 등의 관계가 새로운 양식 위에서 묶이며, 거기에서 문학도 또한 관계를 맺었던 것이다."[ibid. 251. 푸코는 이미 73~4년의 『정신의학의 권력』에서 규율권력이 에크리튀르에 호소하고, 그것을 도구로 한다고 지적한다. "규율권력이 전반적이고 연속적이기 위해서는 에크리튀르의 활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같다. 17~8세기부터 군대, 학교, 직업훈련소에서, 마찬가지로 경찰체계나 사법체계 등에서 사람들의 신체들, 행동들, 담론들이 에크리튀르의 조직에 의해, 도표화된 플라스마plasma graphique에 의해 조금씩 투자되는그런 방식을 연구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에크리튀르의 조직과 도표화된 플라스마는 사람들의 신체들, 행동들, 담론들을 등록하고 코드화하고, 위계적 단계를 따라 전달하고, 마지막으로 중앙에 모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신체에 대한 에크리튀르의 새로운 관계, 직접적이고 연속적인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같은 책, 50~1.] 6.3.6. 푸코가 주목하는 것은 권력에 대한 문학의 '이중 관계'이다. 푸코는 『지식의 고고학』에서 "담론의 전술적 다기능성'[VS. 132]을 언급했다. 그것에 따르면 , 어떠한 담론도 권력에 복종이냐 저항이냐, 둘 중 하나만의 자세를 취하는 일은 없다. 반대로 푸코는 담론이 권력이 도구가 되는 동시에 그 장애물이 되기도 하는, 그런 복합적이고 불안정한 작용을 상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 이것은 한쪽에 권력의 담론이 있고 다른 한쪽에 권력에 반대하는 또 다른 담론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담론이란 "힘의 관계들의 영역에서의 전술의 총체"[같은 책, 135.]이다. 동일한 전략 안에 상이한 담론도 있다면, 반대로 대립하는 전략 사이에 모습을 바꾸지 않고 순환하는 담론도 있듯이, 담론의 전술적인 기능은 결고 똑같은 것도 아니고 일정한 것도 아니다. 6.3.7. 푸코의 <악명 높은 자들의 삶>의 푸코가 문학에서 찾안아내느 것은 바로 이러한 '담론의 전술적 다기능성'이다. 문학은 한편으로 일상적인 것의 담론화라는 시스템의 일부를 담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시스템에 대한 저항을 맡게 되는 것이다. "가장 나쁜 것, 가장 비밀스러운 것, 가장 견디기 힘든 것, 가장 부끄러운 것"[푸코, 같은 글, 1977, 253.] 등과 같은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하는 담론이라는 의미에서 '오욕의 담론'이기를 계속할 것이다. '대항-인도'로서의 문학이 부상하는 것은 익명적인 언표, 그저 권려고가 불가피하게 결부된 것으로 이루어진 '문서고' 속에서다. 푸코는 우리의 삶이 단편화된 과정이ㅡ 집적에 다름 아님을, 더 나아가 이 존재 양태 자체를 통해서, 권력과 양가 관계에 있다는 것을 드런러낸다.

4. 루셀이라는 결절점 경험으로서의 책

6.4.1. 푸코는 80년의 어떤 인터뷰에서 저작의 집필이 자신에게는 하나의 '경험'이라고 말했다. 경험은 "그곳을 통과한 후에는 자기 자신이 변형되는 어떤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더욱이 푸코는 책 속에서 경험과의 관계가 가능하게 하는 변형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타자에게도 일정한 가치가 있으며, 접근 가능한 성격을 가진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동일한 경험은 "타자에 의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것이어야만 한다. [...] 또한 그는 이런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책을, 즉 자신의 경험보다 훨씨 넓은 경험이 표현하고 있는 책을, '진리로서의 책'이나 '논증으로서의 책'에 대해 '경험으로서의 책'이라고 부른다.

루셀에게서 삶의 변형

6.4.2. 푸코가 이런 에크리튀르라는 '바깥이 경험'을 평생 인정했던 것이, 아마도 루셀이라는 작가일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자신과 다른 것이기 위해 [글을] 씁니다. 거기에는 자신의 존재 양식의 수정이 있고, 우리는 쓴다는 사실을 통해 이런 수정을 목표로 합니다. 루셀이 관찰하고 탐색한 것은 이 존재 야식의 수정입니다."[<Archéologie d'une passion>, no 343, 1984, 1424.] 여기에서는 에크리튀르에 있어서의 근본적인 자기 변형의 가능성이 시사되고 있다. 푸코는 루셀 자신을 방법의 '기계 자체'로 간주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즉, 자신의 삶을 방법으로 만들어버릴 정도까지 방법에 대한 완전한 복종은, 루셀 식의'아스케시스'[자기에 의한 자기에의 작동걸기]의 실천이었던 것이다. [...] 그리고 여기서 루셀에게서의 쓰기와 삶의 변형 사의 연결을 상기한다면, 그것은 언어 표현 수준에서 동일한 것으로부터 차이로 열려가는 동시에, 삶에 있어서도 동일한 자기로부터 다른 식의 자기로 열려가는 '경험'이라고 파악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방법에 의해 산출된 이러한 일련의 경이의 이미지들은 그 자신의 변신의 과정, 변신의 양태들이라고도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6.4.3. 이렇듯 후기 푸코에게 루셀은 우선 에크리튀르에 의한 자기 변형의 실천자로서 나타난다. 루셀에 대한 푸코의 평생에 걸친 시선 안에서 그의 '바깥의 예술론'과 '바깥의 주체론'의 연결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리는 "권력의 바깥에도, 권력 없이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푸코가 이야기하는 '실존의 미학'은 이 권력과 불가분한 진리로 이루어진 문서고에 하나의 '인도'를 통해 접속함으로써 신체 수준에서 권력의 배치를 재편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우리의 삶은 이러한 단편적인 진리의 끌어 모음에 다름없으며, 그것은 또한 일상의 행위를 통해 부단하게 갱신되는 것이기도 하다. '실존의 미학'은 하나의 '바깥의 미학'으로서 자리매김된다. 거기서는 '자기의 형성'에 항상 이미 '다른 것이' 기입됨으로써 내재화의 과정은 동시에 외재화의 과정으로 통하게 되는 것이다.

제7장 힘으로서의 신체: 후기 예술론에서

1. 형태와 힘의 상호작용

피카소의 어릿광대

7.1.1. 66년에 발표된 『말과 사물』에 수록된 1장에서 푸코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서 "고전주의 시대의 재현의 재현"을 간파해냈다. 그런데 4년 후인 1970년에 푸코는 의뢰를 받아서, 벨라스케스의 것이 아닌 피카소의 <시녀들>을 논한다. 거기서 논의되는 것은 피카소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모티프로 삼아서 그린 58장의 연작이다. 그런데 이 소론에서 푸코가 우선 주목하는 것은 피카소의 <시녀들>에서의 '화가의 소멸'이라는 사태이다. 연작의 첫 번째 작품에는 캔버스에 비해 상당히 큰 크키로 재현된 왼쪽 끝의 화가는 그 후 서서히 화면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화가의 소멸'이라는 사태가 의미하는 바는? 푸코에 따르면, 연작의 첫 번째 작품에서, 이 그림 전체가 그로부터 비롯되는 질서와 규범으로서 기능했던 화가의 형상은 이후 타블로의 바깥으로 점차 이행함으로써, 최종적으로는 타블로의 배후로부터 장면 전체를 '감시하는' 편재적 시선으로 변화한다[<Les Menines de Picasso>,  in Cahier Foucault, Frederic Gros 외, <Les Cahiers de l'Herne>, 2011. 14~32.] 다른 한편, '화가의 소멸'에 대응한다고 지적되는 것이 '광대의 커짐'이라는 사태다. 벨라스케스의 그림에서 화편의 오른쪽 끝에 그려져 있는 어릿광대는, 피카소 연작에서는(화가와는 대조적으로) 점점 더 커진다. 그것은 이윽고 그림 안이 등장인물들을 조명으로 비춰주는 빛으로서 나타나게 되며, 그리고 마지막에는 화가를 대신해서 그들을 또한 그들의 산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미우르고스', 즉 조물주의 지위에까지 이른다[ibid. 21.] 에세이 후반에서 푸코는 광대의 존재를 묻는다. 그는 '부동성'과 '어둠'에 의해 특징지어진 화가와는 달리 '운동성'과 '밝음'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존재이다. 광대란 '빛'이며 '색'이며 '움직임'이며 그리고 또한 '변화의 원리'인 것이다. 또한 화가 벨라스케스와 피카소의 대조. "벨라스케스는 모든 장면을 왼쪽으로, 그늘 쪽으로, 즉 회화 쪽으로, 그리고 회화를 그리는 회화 쪽으로 미끄러뜨렸다. 반면 피카소는 그 모든 변이를 오른쪽으로, 빛 쪽으로, 즉 음악 쪽으로, 그리고 회화를 변형하는 음악 쪽으로 미끄러뜨린다[IBID. 30.] 등장인물들을 감시하고 심지어 감상자인 우리 자신을 감시하는 '시선으로서의 화가'라는 발상은 하나의 참조항을 상기시킨다. 바로 『감시와 처벌』로 알려진 판옵티콘 모델이다. 푸코는 그 모델을 선취하는 것인 양, 시선에 의한 일원적 지배에 대해 끊임없는 운동으로서의, 변화의 원리로서의 광대를 대치시키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르베롤의 개들

7.1.2. 푸코는 73년 3월에 폴르베롤의 개인전 카달로그에 <달아나는 힘:이라는 제목의 소론을 덧붙인다. 이 개인전은 '감시'를 테마로 한, <죄수들>Les Prisonniers이라는 연작이 발표된 기회였다. 이 연작(10장의 타블로로 구성)은 창과 몽둥이와 철망이라는 세 요소에 의해 둘러싸인 공간으로부터의 개의 도주, 바로 '바깥'으로서의 도주를 그린다. 푸코는 이 연작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감옥 일반'이라고 지적한다[<La force de fuir>, no 118, 1973, 1269.] 푸코에 따르면, 감옥이란 오늘날 다양한 힘이 생기고 역사가 형성되는 '정치적 장'이다. 7.1.3. <죄수들>은 하나의 '비가역적인 연작', '통제될 수 없는 범람'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의 병치가 어떤 이야기의 양상을 띠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거기에서 하나의 '운동'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연작은 "일어난 일을 말하는 대신 하나의 힘을 통과시키는" 것이라고 한다[ibid., 1269.] 그는 "역사를 창조하는 힘을 통과시킬 때, 회화는 정치적이다"라고 덧붙인다. 푸코는 여기서 한편으로는 창, 몽둥이, 철망이라는 세 가지 요소의 뒤얽힘에서 '권력'pouvoir의 양태를, 다른 한편으로 개들이 조직하는 운동에서 '힘'force을 각각 찾아낸다음, 이 연작을 "힘과 권력 사이의 투쟁"[1270](여기서 그는 그것을 '정치'라고 부른다.)라는 관점에서 독해한다. 연작이 진행됨에 따라서 힘은 점차 권력의 '바깥'으로 도주할 것이다[여기서 '권력'과 '힘'으로 지목되는 것은 나중의 권력론에서 각각 '지배 상태'와 '전략적 투쟁'에 대체로 상응한다(L'éthique de souci de soi comme pratique de la liberté>, no 356, 1984, 154. 푸코가 아직 권력의 '바깥'을 상정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

7.1.4. 이 '힘'의 모습을 잘 나타내는 것이 르베롤의 개들의 형상이다. 그 형상의 가장자리를 꾸미고 있는 것은 신체를 빙 둘러싼 하나의 '윤곽선'ligne이 아니라 무수한 '점선'trait이기 때문이다. 푸코에 따르면 이런 개들은 "하나의 형태라기보다는 에너지가, 현전이라기보다는 강도가, 운동과 태도라기보다는 걷잡을 수 없는 동요와 진동이" 된다[푸코, 같은 글, 1272.] 푸코는 르베롤이 했던 것은 형태와 힘을 하나의 것으로서, 이른바 '형태=힘'과 같은 것으로서 출현시키는 것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형태를 그리는 것과 힘을 분출시키는 것은 서로 합류된다. 르베롤은 회화의 진동 속에서 그린다는 힘을 단 하나의 몸짓으로 통과시키는 방법을 찾아냈다. 형태는 다양한 일그러짐 속에서 힘을 재현하는 임무를 더 이상 지고 있지 않으며, 힘도 스스로 백일하에 드러나도록 형태를 떼밀 필요가 더 이상 없다. 똑같은 힘이 화가에서 캔버스로, 그리고 하나의 캔버스에서 다음 캔버스로 직접 나아간다."[1272.] 이로부터 분명해지는 것은 개들이 '끝없는 도주'를 계속하는 것은 이런 '형태=힘'으로서라는 것이다.

비잔티오스의 데생

7.1.5. 이와 같은  '윤곽선'과 '점선', '형태'와 '힘'이라는 대립관계의 싹은 이미 1970년대의 피카소론에서도 인식될 수 있다. 거기서 푸코는 '선'을 관장하는 화가와 '색'을 관장하는 광대라는 구도를 제시했다[MP. 22.] 이러한 대립 관계는 르베롤론의 이듬해에 발표된 콘스탄틴 비잔티오스론으로도 계승된다. 그리스 출신의 이 화가의 데생은 우선 윤곽선을 통해 다양한 형상을 정교화하고 치밀하게 본 딴 후에, 거기서 무수한 점선이 가필됨으로써 타블로가 형성된다. 푸코는 이 윤곽선과 점선의 변증법적 관계성을, (윤곽선이 나타나는) '형태'와 (점선이 나타내는) '힘'의 투쟁이라고 부른다(덧붙이면 르베롤론에서는 "힘과 권력 사이의 투쟁"이 '정치'라고 불렸다. 7.1.6. 비잔티오스의 데생에서 푸코가 읽어내는 '윤곽선과 점선의 변증법'은, 후기 푸코의 주체론에 대한 훌륭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푸코의 '실존의 미학'이란 '실존의 기예'를 통해 자기 자신을 변형하고, 특이한 존재로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스스로의 삶을, "특정한 미적 가치를 띠는 특정한 스타일 기준에 대응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UP, 『성의 역사 2: 쾌락의 선용』, 18.] 요컨대, 데생에서 스스로의 존재 조건이 되고 있는 주어진 윤곽선에 대해, 일종의 '적절함'을 목표로 하여 점선이 가해지는 모습은 '실존의 미학'에 있어서 소재로서의 신체에 작동됨으로써 자기를 형성하는 과정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2. 이미지의 파사주로서의 회화

사건-사진과 사건-타블로

7.2.1. 푸코는 75년에 발표한 <포토제닉한 회화>에서는 제라르 프로망제의 그림에서 "'사건'으로서의 이미지의 순환류"라고도 해야 할 사태를 찾아내서 제시한다.푸코는 우선 19세기 후반의 사진 기술의 발달에 뒤따라 널리 행해진 것은 회화와 사진의 장르 횡단적인 '놀이'를 돌이켜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장르 횡단적인 '놀이'에 의해, 어떻게 새로운 이미지를 산출하는가라는 문제였다. 푸코는 이런 실천들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거기서 일어났던 것은 회화나 사진 같은 '지지체'에 붙들어 매어질 수 없는 이미지의 자유로운 비약이자 순환에 다름없다고 말한다. 그런 실천들은 20세기가 되자 "예술에 관한 청교도적 규범'에 의해 부정된다.

7.2.2. 푸코에 따르면, 팝아트와 하이퍼리얼리즘은 같은 20세기 후반의 예술 조류 속에서 예술가들이 행한 것은 '지난날의 놀이'의 재발견, 즉 '이미지들의 무한정한 순환에의 접속'이었다고 말한다. "그들이 자신의 작업 끝에서 산출한 것은, 사진에서 출발해 만들어진 타블로도, 타블로로 분장된 사진도 아니며, 사진에서 타블로로 옮겨가는 궤도 속에서 파악된 이미지이다."[<La peinture photogénique>, no 150, 1975, 1579.] 그런 경향의 하나의 극점을 찾아내는 것이, 프로망제의 회화이다. [...] 그것은 "이미지의 그것인 독특한 사건"이며, "이미지를 절대적으로 독특한 것으로(즉 복제할 수 잇고 대체될 수 없으며 우발적인 것으로) 만드는 사건"이다[ibid. p, 1580.] 프로망제가 실존케 하려는 것은 사진의 발단이 된 원초적 사건이 아니라, 이미지의 내부에 있고 실제로 거기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다. 프로망제는 이렇게 비춰진 사진을 다양하게 채색한다. 데생이나 형태 같은 중계를 경유하지 않고 사진 위에 놓인 다양한 색채. 푸코는 이 색채의 역할을 '사건-사진' 위에서 사건-타블로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ibid.] 그것은 사건-진실을 전하는 사건-타블로를, 사건-사진과 조합되어 무한한 새로운 통과를 일으키는 사건-타블로를 산출하는 것이다. "사진-색체라는 단락court-circuit에 의해 [...] 무수한 이미지들이 용솟음치는 진원지를 창조하는 것"[ibid]이다.

이미지의 무한 순환

7.2.3. [...] 이런 프로망제론에서 '포토제닉한 회화' 사이를 통과하는 '이미지'는 르베르론속에서 캔버스 사이를 통과한다고 간주되는 '힘'과 같은 것으로서 파악될 것이다. 그리고 또한 '힘'이란, 항상 '형태'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바깥'의 요소이기도 하다. 후기 푸코의 예술론에서는 이 '힘'이 특권적인 '작가'를 발견하지 않고, '자율적인 이목'을 펼쳐가는 모양새가 전경화된다고 말할 수 있다. 거기서 이 유동적인 '힘'의 운동은, 하나의 주체의 기저에 존재하는 동시에, 복수의 주체들을 연결시키는 것으로서 파악된다.

3. 비유기적 신체: 사드 평가의 변화를 둘러싸고

7.3.1. 60년대 푸코는 사드를 '바깥의 사유'의 시조로 자리매김했지만, 70년대 가 되면 이런 사드 평가는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이 변화에는 "욕망의 모든 가능성을 노정시킨다"는 사드 작품에 특유한 성질(60년대에 푸코를 매려시킨 것)이 관련되어 있다. [...] 여기서 푸코가 사드를 '세심한 해부학자'[ibid., p. 1688.]라고 부르는 것에서 드러나듯, 이 시기의 푸코는 사드 안에는 신체에 대한 규율 양태가 있음을 강력하게 알아차렸다. "결국 나는 사드가 규율 사회에 특유한 에로티시즘을 만들어냈다고 인정해도 좋습니다. 즉, 규칙적이고, 해부학적이고, 위계질서화된 사회, 주의 깊게 배정된 시간, 바둑판 모양으로 구획된 공간, 복종, 감시 같은 것을 동반한 사회에 특유한 에로티시즘을 말이죠."[ibid., 1689.] 7.3.2. 이에 대해 푸코는 이제 이런 사드의 에로티시즘, '규율적 유형의 에로티시즘'에서 바깥으로 나가고, 신체의 두께와 볼륨을 동반한 '규율적이지 않은 에로티시즘', 즉 '우연한 마주침과 게산 없는 쾌락과 더불어, 휘발적이고 흐트러진 상태의 신체의 에로티시즘'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ibid. 1690.] 푸코에게 사드는 우리가 그 내부에 사로잡혀 있는 섹슈얼리티의 장치에서 출발해서, 이를 "한계에 이르기까지 기능시키는 운동"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이 섹슈얼리티의 장치에 대해 자리를 바꾸고, 그로부터 벗어나고, 이를 넘어서는"[<Non au sexe noi>, No 200, 1977, 260.]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4. 쾌락-반짝거림-정열 신체와 쾌락

7.4.1. 반대로 후기 푸코가  그의 신체성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 슈뢰터이다[푸코는 74년 7월 무렵에 이미 슈뢰더를 포함한 뉴저먼 시네마(슈뢰더, 한스 위르겐 지바 브레크, 마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등의)에 푹 빠져 있었다고 한다.] 슈뢰더의 영화에서는 다양한 신체이며 얼굴이며 입술이며 눈이며, 그는 이런 신체들의 구성요소에 '열정적인 명백함';<conversation ave Werner Schroeter>, no 308, 1982, 1075.]을 연기하게 함으로써 사건의 설명으로서의 심리학에 맞서는 것이다.

7.4.2. 이런 '명백함'은 분류화와 정체성의 부여에서 벗어난다. 거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다양한 관념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을, 그것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 불가능한 방식으로 창조하는 것"[ibid.]이며, 그것이 무엇인지 결코 말하지 않는 색상, 형태, 강도를, 거기서 발생하는 것에 주는 것이다. 푸코는 이런 몸짓을 가리켜 '삶의 기예'라고 부른다. 그것은 '심리학을 죽이는 것'이며, 또한 "자기 자신과 더불어 그리고 타자와 더불어 이름 없는 개체성들, 존재들, 관계들, 성질들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한다[ibid.]

7.4.3. 푸코는 "중요한 것은 몸짓을 하는[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게 존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라는 슈뢰터의 말을 받아들인다. "20세기 이후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배웠습니다. 이에 비해서 우리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일고조차 하지 않는 사회도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우리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중요한 것은 우리가 행하는 것을 행하기 위해, 우리가 우리이기 위해 [실존을] 실행하는 기예란 어떤 것이냐라는 질문입니다. 이러한 자기 자신의 기예는 자기 자신과 상반된 것일 수 있겠지만,  자신의 존재를 하나의 예술품/기예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것입니다[ibid., 1076~7.] 푸코에 따르면, 슈뢰터 영화의 신체 표면에서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위계질서, 위치결정, 명칭, 유기체성 같은 것이 해체되고 있는 신체의 무질서화"이다[<sade, sergent du sexe>, no. 161, 1975, 1687.]

7.4.4. 이러한 '신체의 유기체성의 해체'는 신체를 모든 욕마으이 프로그램의 바깥에 있는 "명명할 수 없는: 것, "슬모없는 것"으로 만든다. 푸코는 신체를 가소적인 것으로 만드는 이 운동을 '쾌락'이라고 부른다. 푸코는 욕망과 쾌락이라는, 신체를 둘러싼 두 개의 에로티시즘을 대비시키는 형태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슈뢰터의 영화에서 카메라가 하는 것은 욕망을 위해 신체를 낱개로 파는 것이 아니라, 신체를 빵 반죽처럼 부풀어 오르게 하는 것이며, 그로부터 쾌락의 이미지이자 또한 쾌락을 위한 이미지인 이미지를 태어나게 하는 것입니다."[ibid. p, 1688.]

7.4.5. 푸코에 따르면, SM의 행위자들은 행자신의 신체의 '기묘한 부분'을 이용해서, 즉 신체를 '에로스'화함으로써, 쾌락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쾌락의 탈섹슈얼화'라고 부르는 것을 원리로 하는 모종의 창조 행위이다. "육체적 쾌락이 항상 성적 쾌락에서 유래한다는 관념, 성적인 쾌락이 모든 가능한 쾌락의 토대라는 관념은 정말로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푸코와의 인터뷰: sex pouvoir et la politique de l'identité>, no 358. 1984, 1558.] SM의 실천이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성적인 관계에 속박되어 잇지 않고도 쾌락을 산출할 수 있다는 사실이며, '비성적인 쾌락'의 가능성이다. 신체적 쾌락은 언제나 성이나 음식에만 연결하여 생각하는 것은, 신체나 쾌락에 관한 이해를 한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신체를 쾌락의 다수성의 가능적인 원천으로 활용하는 것"이며, '욕망의 해방'이 아닌 '새로운 쾌락의 창조'이다. 여기서 푸코는 성에 연결된 것으로서의 욕망에 비성적인 것으로서의, 이른바 '에로스'적인 것으로서의 쾌락을 대치시킨다. 거기에는 또 모종의 억압구조를 전제로 하는 욕망의 부정성과 그런 전제를 갖지 않는 쾌락의 긍정성 같은 대비도 내포디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부상하는 것은, 유기적 통일성으로 정리되지 않은 신체와 이런 탈-유기체적 신체들의 근저에서 기능하는 '쾌락'이라는 운동이다. 양자는 서로 힘을 합치는 형태로 '사디즘'이나 '심리학' 같은, 신체의 분류화-정체성화-규율화를 추진하는 장치에 맞서게 될 것이다.

반짝거림과 정렬

7.4.6. 마그리트 뒤라스를 둘러싼 대담에서 푸코가 뒤라스의 소설과 영화를 비교하면서 주목하는 것은 뒤라스의 작품의 등장 인물이 명확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 안에서는 하나의 현전으로서의 어떤 것이 윤곽이 잡히기 시작하는 어떤 영속적인 무화가 있습니다. 그 현전은 자신의 고유한 몸짓, 자신의 고유한 시선 뒤에 숨으며, 용해되어 버립니다. 일종의 반짝거림 만이, 도 다른 반짝거림을 가리키는 반짝거림만이 남습니다. [...] 반대로 영화에서는 갑작스런 출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그 어떤 현전도 존재하지 않는 돌발이지만, 하나의 몸짓의 돌발, 하나의 눈의 돌발입니다. 그것은 안개 속에서 떠오르는 인물들입니다. 뒤라스의 소설이 블랑쇼와 비슷하다면, 영화는 프랜시스 베이컨과 비슷한 것 같스비다. 즉, 한쪽은 무화로, 다른 쪽은 갑작스런 출현이라는 점에서 말입니다[A propos de Marguerite Duras>, no 159, 1975, 1632~3.] 무화와 돌발이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소설과 영화에서는 그 방향성이 다르지만, 둘에 공통되는 것은 거기서 보이는 페르소나가 결코 정해진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들은 모조리 "형태 없는 안개 같은 두께와 존재감"[ibid, 1634.]을 갖고, 그 안개의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게, 목소리나 몸짓이 갑작스럽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어떤 페르소나와 다른 페르소나는 그 사이를 뛰어다니는 '반짝거림'에 의해 연결된다. 이 '반짝거림'은 어떤 자율성을 갖고 페르소나 사이를 순환하며, 그것이 바로 수면의 반짝거림처럼 텍스트나 몸짓에 빛을 부여하는 동시에, 이런 부정형의 페르소나들을 결부시키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뒤라스에게서의 '반짝거림'은 슈뢰터와의 대담에서는, '사랑'과 대비되는 '정열/정념passion'에 해당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덮치고 우리를 엄습하고 [...] 쉬지 않고, 기원을 갖지 않는 것"[conversation ave Werner Schroeter>, no 308, 1982, 1075.]이며, 그런 상태라고 한다.

7.4.7. 그래서 푸코는 "열정이라는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라는 것에 더 이상 의미가 없다."[ibid.]라고 말한다. 사랑에 있어서는 이른바 그 사랑의 보유자가 있는 반면, 열정에 있어서 그것은 파트너 사이를 계속 순환한다고 한다. 그 때문에 열정의 상태는 '파트너들이 뒤섞인 상태'로서, 강력한 커뮤니케이션의 힘을 내포하게 된다. 푸코는 슈뢰터 영화의 신체가 이런 열정에 의해 관철된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슈뢰터와 뒤라스의 작품에 관해서, 푸코는 두 가지 공통된 특징에 주목한다. 그것은 등장인물의 신체의 부정형성과 이런 부정형적 신체들을 연결하는 운동, 즉 하나의 '힘'의 존재이다. 푸코는 『성의 역사 1: 앎의 의지』의 끝부분에서, "섹슈얼리티의 장치에 대한 거점은 [...] 신체와 쾌락이 될 것이다."[VS. 208.]라고 말한다.  푸코적인 신체의 특징은 바로 신체=쾌락에 근거하는, 이른바 비유기체적인 '힘으로서의 신체'에 근거하는, 섹슈얼리티 장치에 대한, 그 분류화-정체성화-규율화에 대한 저항의 구체적인 표현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서 푸코는 '삶의 기예'의 역할이란, 이런 신체의 탈유기체화를 추진하고 미지의, 명명할 수 없는 개체성이나 관계성을 창조하는 데에 있다고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상의 것에서 푸코가 '실존의 미학'의 기준으로서, 이 '힘으로서의 신체'를 상정했음을 엿볼 수 있다.

5. 사유-이모션

7.5.1. 푸코는 말년에 미국 사진가 듀안 마이클의 사진을 논하는데 거기서 푸코는 마이클이 자신의 작품에 이러저러한 형태를 '비가시적인 것'을 부각시킴으로써, 혹은 '가시적인 것'의 덧없음을 암시함으로써, 사진을 시선의 은유로부터 해방시키고, 그 분류화와 정체성 부여의 기능을 무효화하려는 자세에 주목한다. 그것은 가령 프랜시스 베이컨적인 현전Présence과 형태forme의 분리, 이로부터 산추될 수 있는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의 뒤얽힘의 효과로서 현전한다. [...] 즉, 가시적인 것으로서의 '형태'가 후퇴함으로써, 비가시적인 것으로서의 '현존'이 부상하게 되는 것이다.

7.5.2. 마이클의 텍스트에 대해 푸코는 이를 "이미지를 고정하는 것도 아니며, 매어두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비가시적인 숨결[방식]에 노출시키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텍스트는 이미지를 사유 속에서 순환시켜야 한다. 그[작가]의 사유 속에서, 그리고 그의 사유로부터 다른 사람들의 사유로."[ibid. 1066~7. 여기서 들뢰즈가 텍스트와 이미지의, 사유에 있어서의 역설적인 마주침을 지적했다는 것을 떠올려도 좋을 것이다(들뢰즈, 『푸코』, 2004, 93.]

7.5.3. 푸코에 따르면, 이렇게 사슬에서 해방된 '비가시적인 것'으로서의 이미지가 떠도는 대양이야말로 저자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사유'이다. "듀안 마이클이 자신의 사진을 보고 있는 사람에게 제시하는 것은 이런 혼합된 사유, 어렴풋하게 공유된 사유, 그 막연한 순환이다. 그는 그를 독자-관람자의 불분명한 역할로 초대하며, 그에게 사유-이모션을 제기하는 것이다(이모션은 혼을 움직이고 혼에서 혼으로 저절로 커져가는 운동이기 때문이다."[ibid., 1067~9.] 이런 이미지의 순환과 더불어 공유되는 '사유-이모션'의 성질은, 뒤라스에게서는 '번쩍거림'과, 그리 슈뢰터에게서는 '정열'이라고 말해질 수 있는 것과 겹칠 것이다. 여기서 그것은 더 이상 작중 등장인물들 뿐만 아니라 그것을 보는 자들, 이른바 '작품의 외부'도 포함한 '연결'을 형성하게 된다.

7.5.4. 푸코는 마이클의 사진을 하나의 '경험'으로서 말한다. 그것은 "내가 이미 느낀 적이 있거나 언제나 느낄 게 틀림없다고 생각할 만한 감각, 그것이 그[마이클]의 것인지 나의 것인지 항상 알지 못하는 감각"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이야기된다. 이러한 '사유-이모션'의 공유는 이미지의 순환과 더불어, 특히 순환하는 이미지의 '비가시성'에 의해 야기된다고 말할 수 있다. 마이클의 연작은 종종 사건의 요점을 훼손하며, 곧바로 나아가는 대신 몇 가지의 비약을 반복한다. 또한 사건의 전체를 제시하지 아낳고, 단편만 끌어 모아둔다. 게다가 사건의 '적절한' 시간대역을 잘라내지 않고, 때로는 너무 짧거나 너무 길게 한다. 이 모든 것이 이로부터 생기는 이미지를 '비가시적인 것'으로 할 것이다. 슈뢰터의 영화가 '무매개적인 명백함'에 의해 사건의 설명으로서의 심리학에 맞섰듯이, 마이클의 사진은 취급하는 사건을 설명하는 대신에 그 '비가시성의 주름'을 제시한다.

주체화 힘

7.5.5. 후기 푸코의 예술론에는 다양한 주체의 밑바닥에 흐르는 '힘'에 대한 시선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앞 장에서 봤듯이, '실존의 미학'의 기초로서의 '바깥의 문서고'로 통하는 것이다. '힘'은 '주체화'의 기초이면서도, 늘 거기로 회수되어 끝나버리지 않는 잉여를 갖고 있다. '바깥의 문서고'도 근원적으로 근원적으로 익명적인 것으로서 있으며, 우리의 주체화의 소재이면서도, 결국에는 누구의 소유물도 되지 않는 그런 것이다. 푸코가 양자에게서 주체화의 기초와 동시에 주체들을 연결시키는 효과도 찾아내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로부터 거꾸로 생각하면, 푸코적인 주체는 영원히 완성되지 않고 항상 하나의 '준-주체'에 머무는 존재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푸코가 말하는 '실존의 기예'[삶의 기법]이란 힘이 하나의 형태로 고착되는 것을 막고 그것을 영속적으로 재활성화함으로써 힘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테크네였다. 거기서 주체는 자기나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항상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6장에서는 '실존의 미학'에 있어서의 로고스의 중요성을 확인했는데, 7장에서 다룬 예술론으로부터는 푸코가 그것과 동일한 정도로 '신체'를 중시했다는 것이, 또한 '실존의 미학'에서의 신체성을 어떤 것으로서 이미지화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존의 미학'에서는 진리와 신체 사이의 '바깥'에서의 직접적인 연결이야마로 끊임없이 새로운 주체를 창조할 것이다.

 

결론

이 책에서는, 푸코의 60년대부터 80년대에 이른느 사유의 궤적을 '바깥' 개념을 축으로재파악하였다. 그로부터 분명해진 것은 푸코의 전기와 후기의 사상 속에서 이 바깥을 각각의 형태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기이 예술론에서는 재현 공간으로 회수되지 않고 언제나 그것을 위반하는 것으로서, 후기의 주체론에서는 주체화의 소재이면서도 역시 거기로 회수되어 소진되지 않는 것으로서 각각의 전개를 볼 수 있었다. 이로부터 바깥이라는 관점에서 봄으로써 푸코의 사상 자체를 '감성적인 것'가 '윤리적인 것'의 결절점에 위치시키는 것의 가능성도 부상하게 될 것이다. 다만 이 바깥 개념은 푸코의 전기 사상과 후기 사상 사이에서 약간 의미가 바뀌고 있는 듯 보인다. 전기의 예술론에서 바깥이 재현 공간의 외부, 즉 절대적인 외부로서 상정된 반면, 후기의 주체론에서 바깥은 어디까지나 주체라는 안과의 관계를 전제로 한 이른바 상대적인 외부로 변화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여기에는 70년대에 벼리지고 다듬어진 푸코의 권력관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전기의 푸코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권력의 바깥에 서는가라는 문제였던 반면, 후기가 되면 그는 권력의 외부에 위치하는 것의 불가능성을 인식하게 된다. 푸코에게 진리와 광기의 지위 변화는 여기에서 유래할 것이다. 『광기의 역사』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나듯, 전기의 푸코에게 광인은 절대적인 외부로부터 어떤 진리를 이야기하는 존재로서 상정됐던 반면, 70년대의 푸코가 진리와 광기에 대해 공통적으로 직적하는 것은 그것이 "권력의 바깥에도, 권력 없이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전기의 푸코가 권력의 바깥에 선 주체를 이상으로 삼은 반면, 후기의 푸코에게 주체화는 어디까지나 권력의 내부에서 행해지는 것으로서 생각됐던 것이다. 거기서 주체화는 권력관계의 배치를 새롭게 재규정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또 이런 의미에서 주체는 권력관계 속에서만 성립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후기 푸코에게 바깥이란 단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렸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거기서 바깥은 안과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 그것과 이른바 '외연을 함께 하는' 것으로서 나타난다. 거기서는 '자기의 형성'에 항상 이미 '다른 것'이 집어넣어짐으로써, 내재화의 과정은 동시에 외재화의 과정으로 통하는 것이다. 바깥은 소멸한 것이 아니라, 의미가 바뀌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거기서 권력이란  주체라는 '안'을 구성하는 '바깥'으로 상정되기 때문이다. 들뢰즈는 이 안과 바깥의 관계를 '주름'pli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설명했다. 그것에 따르면 바깥은 자신의 위로 말려들어감으로써 안을 구성한다. 이처럼 바깥의 습곡 작용으로서 구성된 안은, 필연적으로 바깥과 공통 외연을 갖게 된다. 이리하여 주체는 안인 동시에 바깥이기도 한 것으로서 구성될 것이다. "안dedans은 바깥dehors의 어떤 작동이며, 하나의 주체화이다. 만일 바깥이 하나의 관계이며 관계의 절대적인 것이라면, 안도 하나의 관계이며 주체로 변화한 관계이다[푸코, <미셸 푸코의 몇 가지 개념에 대하여>, 2003. 239.] 이로부터 '자기와의 관계'도 '끊임없이 바깥에서 파생하는 안'에 다름 아니라고 간주된다. "만일 안이 바깥의 습곡plissement에 의해 구성된다면, 안과 바깥 사이에는 하나의 위상학적 관계가 있다. 자기에의 관계는 바깥과의 관계와 상동적이며, 또한 양자는 다양한 지층들[그것은 상대적으로 외부적인(따라서 상대적으로 내부적인) 다양한 환경들이다.]에 의해 접촉한다[들뢰즈, 『푸코』, 2004, p. 127.] 들뢰즈에 따르면 자기는 외부에서 자기와 마주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서 타자를 찾아내는 것이다[ibid. p, 105.]

1. 권력과 프락시스

8.1.1. '감성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 중 어떤 측면에서 푸코의 사상을 파악하든 불가피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는 요소, 그것이 '권력'이다. 그는 평생 동안 지식과 권력의 결합에 대해, 그리고 이것들이 주체 형성에 미치는 힘에 관해 계속 고찰했다. 푸코에게서의 권력은 그 자체가 바깥이다. 그것은 바깥과 마찬가지로 '감성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 이 둘 다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이 문제의식은 랑시에르가 있다. 그에 따르면, '감성적인 것'의 영역은 항상 권력과 상관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또 권력이 관계를 맺고, 동일화의 대상으로 하는 것이 '감성적인 것'이라고 한다며, 물어야 할 것은 그 재배치이다. 어떻게 항상 이미 행해지는 '감성적인 것'의 동일화를 비켜놓을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랑시에르는 '감성적인 것'의 탈동일화를 '주체화'subjectivation라고 부르게 된다. 랑시에르, 『불화』, 1995, 60~1.]

8.1.2. 권력과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본 경우, 전기의 예술론이 모종의 예술 속에서, 사회 내부에서의 유통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일체의 소비와 유용성에서 독립한 자율적인 존재를 봤다. 반면, 후기의 주체론은 그런 권력의 외부에 있어서의 자율적인 존재를 설정하지 않는 곳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권력의 외부에서 권력의 주름으로, 이러한 변천을 거치면서도 푸코는 일관되게 권력과의 관계에 있어서 주체성을 구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공통적인 것은 바깥의 비인칭성이다. 그것은 개별 주체에 선행하는 문서고를, 그 익명성을 전제한다. 이런 비인칭성, 익명성은 권력에도 공통된다. 그것은 특정 개인에 의해 행사되는 것이라기보다 모든 개인 사이를 관통해서 작용하는 하나의 유동적인 힘으로 상정되기 때문이다. 푸코에게서는 이 힘을 인동하여 하나의 주체를 만들어내는 테크네야말로 신체적 실천이라고 간주됐다. 그에 따르면 일상적 실천에 의해 자신의 신체에 작동을 거는 것, 그리고 그것에 의해 신체의 수준에서 권력관계에 가동성이나 가역성을 초래하는 것(즉, 신체 수준에서 '대항-품행'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야말로 주체화의 일차적 뜻이다. 여기에서는 '실존의 미학'에 있어서 신체와 실천이 맡는 역할의 중요성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비잔티오스의 데생에서의 '몸짓'geste을 '실존의 기예'에 비했는데, 이하에서는 마지막으로 이 신체와 실천의 관게에 관해 '실존의 미학'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전망을 제시하고 싶다.

2. 주체화의 구조와 몸짓

주체 형성의 타율성 몸짓으로서의 저자

8.2.1. 아감벤의 <몸짓으로서의 저자>라는 논문이다. 아감벤은 이 논문에서 푸코의 <저자란 무엇인가?>라는 논문에서 제시된 '기능으로서의 저자'라는 발상을 실마리 삼는다. 그러면서 저자와 작품의 관계로부터 '몸짓'의 특성을 밝히고 있다. 이 강연에서 푸코는 현대의 저자란 담론의 외부에 있으며, 그것을 산출하는 현실의 개인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기능'으로서 작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만일 우리가 각각의 표현 행위에 있어서 표현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것을 '몸짓'이라고 부른다면, 저자는 그 표현 속 한가운데에 빈 공간[공백]을 수립함으로써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몸짓으로서만 텍스트에서 현존한다고 말할 수 있다."[아감벤, <몸짓으로서의 저자>, 『세속화 예찬』, 김상운 역, 난장, 2010, 97쪽.] 어떤 작품 속에서 저자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작품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거기에는 표현되지 않는 그런 공간[공백]으로서이다. 아감벤은 이 공백을 '몸짓'이라고 명명한다. 몸짓이란 "모든 표현 행위에 있어서 표현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것[말해지지 않은 채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독해를 가능하게 하는 읽을 수 없는 누군가이며, 에크리튀르와 담론이 이로부터 생겨나는 전설적인 공허[공백]"이다[아감벤, 『목적 없는 수단』, 김상운 외 역, 난장, 2009, 90쪽.]  독자도 작품과 마주함으로써, "저자가 남긴 시의 텅 빈 자리[공허한 장소]'를 차지하며, 또한 '저자가 작품에서 자신의 부재를 입증하기 위해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비표현적 몸짓'을 반복한다고 한다[ibid. 79.[국역본 103쪽.] 여기서 아감벤은 푸코를 좇는 형태로, 작품의 기원을 실체적 현실로서의 저자가 아니라 하나의 몸짓에서, 이른바 '몸짓으로서의 저자'에서 찾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8.2.2. 피에르 아도는 푸코의 '실존의 미학'에 대해서 "고대에서 자기 배려는 삶의 예술작품으로서의 구축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자기의 모종의 상실을 의미했다"는 취지의 비판을 한다. [...] 그런데 푸코의 '예술작품의로서의 삶'을 하나의 '저자 없는 예술작품'으로 재파악하고자 하는 아감벤은 의도는 '헤테로-어펙션'인 주체화의 과정 및 '몸짓으로서의 저자'라는 테제를 감안한다면 분명해질 것이다. 즉, 거기서 작품으로서의 삶은 실체적 현실로서의 저자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몸짓으로서의 저자'에 의해, 그 이른바 귀속의 애매한 작용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몸짓에 의해, 자기라는 형상을 구성하는 모양과 힘의 경제가 재편될 때마다 이 덧없는 형상은 끊임없이 모습을 바꿔 갈 것이다.

3. 몸짓의 근원적 3인칭성

몸짓과 언표

8.3.1. 푸코는 『지식의 고고학』에서 임의의 '나'가 발화하기 전의, 언어의 익명적인 존재에 뿌리를 둔 '언표'라는 개념을 주제화했다. 언표는 문장이나 문구와 달리, 어떤 주체가 아니라 언표의 영역에 고유한 규칙을 가리킨다. 언표의 분석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코기토가 아니라 '누가'on의 수준에 위치하는 비인칭적인 기반이다.

8.3.2. 그런데 언표와 마찬가지로 몸짓도 자명한 개체가 아니라, 인칭에 선행하며 '누가'의 수준에 위치하는 신체를 가리킨다. 몸짓의 성질은 푸코가 말한 언표의 그것과 겹친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둘 모두, 주체에 선행하는 비인칭적인 기반을 지니면서, 그것 자체로서 주체와 관계를 맺는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6장에서 본 푸코의 '휘폼네마타'론 등에서는 이런 '언표로서의 몸짓'에 기반한 주체론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을 것 같다. 푸코가 자기의 실처네 관해 거듭 지적했던 것은 주체가 "자신이 모르는, 자신 속에 존재하지 않는 진리'를 익힌다는 것이었다[<L'hermeneutique du sujet>, n0. 323. 1982, 1181.] '실존의 기예'로서의 휘폼네마타란 자기에 속하는 것이 아닌, 이른바 '외적인 지리로서의 언표'를 끌어 모아 이것을 신체화하고 '몸짓을 산출하기 위한 원리'로 삼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8.3.3. 이 책에서는 '실존의 미학'에는 일반적인 일상적 행위의 누적에 의해 자기를 형성해가는 측면이 있다는 것은 봤다. 이것은 흔히 생각되듯이 개체로서의 자기에의 집착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 이외의 요소와 관계로부터 하나의 주체가 생성되는 과정이었다. '작품으로서의 삶'의 저자는 어떤 페르소나라기보다는 푸코가 말한 언표와도 비슷한, 근원적인 비인칭적인 성질을 지닌 단위로서의 몸짓이다. 즉, 거기서 일어나는 것은 '나의 것이 아닌 것과의 대화로부터 내가 형성되는' 감성적인 경험이다.

'바깥의 예술로서의 삶'

8.4.4. '미학'이 관련되는 것은 흔히 '감성적인 것'이라고 불리는 영역이지만, 우리는 그것에 '윤리적인 것'의 영역을 포함시킨 다음, 푸코 안에서 이 테마를 탐구하고자 했다. 이로부터 우리는 전기 푸코에게서의 '감성적인 것'을 분명히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고, 후기 푸코에게서의 '윤리적인 것'의 윤곽을 드러냈다. 하여 전기에서는 푸코가 정력적으로 저술한 수많은 예술론을 '바깥의 예술론'으로 총괄하고자 했고, 후기에서는 그의 주체론의 중심에 '가소적인 주체'라고도 해야 할 형상이 있다는 것이 각각 분명해졌다. 그 다음, 우리는 푸코의 '미학'을, 즉 그의 사상에서의 '감성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의 교차점을 '실존의 미학'이라는 개념 안에서 확인하고 살펴보고자 했다. '실존의 미학'이 감성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의 교차점이라는 것은, 거기에 담겨 있는 "자신의 삶을 한 개인의 에술작품으로 한다"는 이념에서 두드러질 것이다.

8.4.5. 푸코의 '미학'은 우선, 재현이나 이를 통제하는 주체로 회수되지 않는 '바깥'을 중심으로 하는 '바깥의 예술론'으로 볼 수 있다. 전기 예술론에서 푸코는 이런 '바깥'의 예술에서, 안정된 재현 공간이나, 그 내부에서의 주체의 존립을 뒤흔드는 특이한 힘을 인식했다. '바깥의 힘'은 '비인칭적인 문서고'를 근거로 한다. 그것은 주체의 배후에서 펼쳐진 '3인칭'의 영역에서, 이 광대한 사막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바깥의 예술론'에서 볼 수 있던 '3인칭성'이라는 특징은 가소적인 주체를  축으로 하는 후기 주체론으로도 이어지게 된다. 그의 에크리튀르론에서 엿볼 수 있듯이 푸코의 '실존의 미학'에서 주체 형성을 추진하는 신체 행위란, 그 자체로 비인칭성의 각인을 명확하게 띠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이 책에서는, 그의 후기의 주체론을 하나의 포이에시스로서, 다만 어디까지나 비인칭적인 작용을 원리로 하는 그것으로서, 말하자면 '바깥의 미학'으로 재파악했다. 푸코가 '실존의 미학'을 삶의 작품화'라고 규정할 때, 이때 언급되는 '작품'은 '바깥'적인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실존의 미학'에서 목표가 되는 것은 '바깥의 예술'로서의 삶이다. '푸코의 미학'은 이런 '바깥의 예술'로서의 삶이라는 발상에서 출발해 삶과 예술을 독자적인 방식으로 결부시킨 사유라고 할 수 있다.